장맛비가 우렁차게 쏟아지는 그날도 지금처럼 내 마음은 적적하기 그지없었다. 꾸역꾸역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잎의 모양새가 달라진 후에도, 손의 온기를 매몰차게 뿌리치던 이월의 저녁도, 유일함이 특별하게만 여겨지던 그날도 지금처럼 꽤 오랫동안 적적했고, 잠시의 한산함에 안도했고, 그때와 같은 불안을 또 들여올까 싶어, 또다시 도려내지 못할까 싶어 두려워했다.
우리가 이겨내지 못한 건 우리가 나약해서가 아니었어. 사랑을 사랑이라 부를 용기가 없어서, 용기가 없다는 걸 들키는 게 비참해서, 사실을 인정하는 게 그 무엇보다 무서워서였겠지. 모든 걸 알아도 다시 해보고 싶은 게 사랑이란 걸 알잖니. 모든 게 끝났어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는 게 사랑인 걸 알잖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럼에도 다시 한번 말해. 우린 모든 걸 알고도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말이야. 그건, 분명 알지만,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속력 같은 것 때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