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2주간의 여행을 위해 매일 하루의 일부를 떼어내 준비과정에 쏟은 게 2달이 넘었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여행서를 읽던 시간, 일에 치이고 집에 돌아와 기차표를 알아보며 눈이 빠질 것 같았던 시간, 붉게 물든 미켈란젤로 광장을 노트북으로 찾아보며 감동에 젖던 그 시간들 또한 여행하는 마음이었다.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어야 할지는 생각해 놨어도 가방을 싸는 일만은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 출국 전날 퇴근을 하고 나서야 시작했다. 일 년 내내 여름인 곳에 살면서 늦가을에 접어든 나라에 여행 가는 것은 가져갈만한 옷이 아주 한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0도쯤 되는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갖고 있는 긴팔이랑 긴 바지는 거의 모두 챙겨 넣는 것으로 짐 싸기도 완료.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향의 바디로션을 바르고 침대에 누웠다. 다음날 이 시간에는 상공 위를 날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여행의 시작을 머릿속으로 따라가 보았다. 집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한다. 싱가폴에서의 출국수속은 언제나처럼 스무스하다. 면세점 구경을 조금 하다 커피를 한잔 사마시는 상상을 할 때쯤 잠이 든 것 같다.
드디어 대망의 출국일.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지만 평소보다 너그러워진 마음 덕에 만원 지하철도, 와이셔츠까지 땀에 젖신 등을 코 앞까지 들이미는 아저씨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나는 곧 있으면 이태리의 가을 공기를 마시며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있을 테니까.
그날따라 근무태만인게 분명했던 사무실의 시계는 결국에는 퇴근 시간을 가리켰고, 그와 동시에 집으로 튀어가 샤워를 빠르게 하고 짐가방을 챙겨 택시를 탔다. 서둘러 수속을 밟고 게이트에 도착하니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항 밖이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아시안들의 멜팅팟이었다면 이곳 게이트 앞에서는 백인들이 주류가 되어 어느 나라의 것인 줄도 모르겠는 말을 주고받으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조금은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며, 설렘과 긴장, 기대 같은 감정을 마스크 뒤로 숨긴 채 얼마쯤 있으니 마침내 보딩 시간이 되었다. 내 첫 유럽여행의 시작이었다. 비행기에서부터 피자 냄새가 나는 게 기분 탓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