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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ra Seed Sep 28. 2023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이주

1. 


2022년 8월의 어느 날. 연일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유럽대륙이 몸살을 앓고 있을 때, 나와 남편은 부다페스트 시내에 위치한 통신업체 T-Mobile 매장의 한 창구에서 인터넷 신청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 같았으면, 전화 한 통으로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이사 인터넷 설치가 뭐 대수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인프라가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는 부다페스트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주하는 건물이 사용하고 있는 통신업체를 찾아가서 직접 인터넷 설치를 신청하고 예약 날짜를 잡는 방법이 유일하다. 두어 시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순번이 왔다. 


“인터넷 신청하러 왔는데요.” 

“주소가 뭐 에요?”

“네, 부다페스트 6구의 언드라시 대로 40번지 5층 4호입니다.” 


영어가 서툰 직원을 위해 나는 최대한 천천히 정확하게 영어로 집 주소를 말했다. 담당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짜증이 섞인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 되었다. 눈빛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또 다른 담당자가 나타나서 재차 주소를 물어봤다. 주소를 다시 말했고, 대답이 돌아왔다. 


“그 주소 인터넷 설치 못해요.”

“네? 인터넷 설치를 못한다 구요? 왜요?”

“그 주소에 이미 인터넷 설치가 되어 있고 사용자가 있어요.” 

“네? 이 집 지난 6개월 동안 아무도 안 살았는데요. 인터넷 사용하는 사람 없어요. 빈집에 누가 인터넷 비용을 내고 있겠어요?” 

“내가 말했잖아요. 누가 그 주소로 이미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고 돈을 내고 있다고. 그래서 설치 안돼요. 다음 분~~!.” 


나와 남편은 그럴 리가 없다며 주소 확인을 재차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을 동일했다. 차갑고 무관심한 얼굴의 통신사 상담원은 그렇게 우리를 쫓아냈다. 폭염을 뚫고 집에 돌아온 우리는 이곳 유럽사회에서 또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하는 수 없이, 이사할 때 도움을 받았던 헝가리인 부동산 중개인 아틸라에게 또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수도, 전기, 가스 신청을 할 때 도움을 받았던 터라, 영어가 통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인터넷 설치만큼은 혼자서 해결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거구의 아틸라는 한걸음에 달려와 주었고 다시 동일한 매장에 방문했다. 순번이 왔고, 혹시나 이사한 집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안고 상담원을 마주했다. 아틸라와 상담원은 당연히 그들의 모국어인 헝가리어로 대화를 했고 남편과 나는 문맹의 서러움을 경험하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상담원과 짧은 대화를 나눈 후 아틸라는 우리에게 인터넷 플랜을 설명했고 우리는 주저 없이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신청했다. 그렇게 순조롭게 일이 마무리되자, 이방인으로서 타지에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아틸라, 또 고마워. 근데 너에게는 우리 집 인터넷 설치 불가능하다는 말 안 했어?”

“응, 그런 얘기는 없었어.” 

“우리한테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어서 우리 집은 인터넷 설치가 불가능하고 했거든.”

“아, 그건 아마도 상담원들이 영어로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커. 상담원들 영어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을뿐더러, 영어로 상담을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알잖아, 다들 쉬운 일만 처리하고 싶어 하니까.” 


2. 

2021년 8월 초, 부다페스트로 이주한 이후 근 이 년 동안 합리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일들이 계속 발생했다. 어렵사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고 찾아간 이민국은 예약 따위는 받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며 줄을 서게 했다. 우리는 땡 볕에서 7시간을 넘게 줄을 선 후에야 간신히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현지 은행 계좌 개설을 할 땐 담당자가 몰래 건강보험 가입서를 끼워 넣어 보험에 가입하는 사기를 당했으며, 추가 비용을 지불하며 지정 배송을 신청했던 이케아는 해당 일에 가구를 배송하지 않았다. 전기 수리를 위해 부른 전기공이 약속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시간이 늦어도 와 주기만 하면 엎드려 절을 하는 신세였다. 물론 바가지요금은 기본이다.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일은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여, 집을 비운 사이 경찰이 창문을 부수고 들어왔던 일이다. 제2의 인생을 살겠 노라며 이주한 이후, 인간의 삶에 기본이 되는 ‘의식주’에서 ‘주’와 관련되는 모든 것들이 삐걱거리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모국이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으며 처음에는 헝가리 사람들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과 시스템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관공서 업무에 이성을 잃고 분노하고 좌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의외로 승부욕이 타올랐다. 남편과 나는 이주 이후 발생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쌓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불시에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나날들이었고, 우리의 마음은 흡사 전쟁터에 참여한 군인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우리에게는 싸워서 이기는 방법밖에 없었다. 

출처:https://www.etsy.com/listing/449512560/dorothys-red-shoes-wizard-of-oz-print


그런데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기 위해 이주한 타지에서 순조롭게 산다는 것이 가당 키나 한 이야기일까? 물론 이주를 계획하는 이들은 모두 가능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다. 우리 역시 그랬다. 재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으며, 공부를 할 3년 동안의 비용을 계산하여 저축했으며 미리 언어를 배우고, 현지의 문화를 익히기 위해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다. 모국을 등지고 떠나 새로운 곳에 되도록이면 빨리 안착하기 위해서. 하지만,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든 간에, 이주는 불시착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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