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프로도는 누구인가?
(원문:“I feel thin, sort of stretched, like butter scraped over too much bread.
I need a holiday, a very long holiday. And I don't expect that I shall return. In fact, I mean not to.” )
이 대사는 영화 <반지의 제왕> 중 빌보가 간달프에게 절대반지를 얻었을 때의 상황과 이를 지키기 위해 느낀 오랜 피로감을 표현하며 새로운 모험을 떠날 것을 결심하는 부분이다. 그는 모두가 원하는 절대반지를 수호하기 위해 담보 잡혔던 자신의 영혼을 버터에 비유하며 아무리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도 이를 위해 더 이상 버틸 자신의 영혼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고 떠난다.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한때는 내 신체의 일부라고 착각할 정도로 없으면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았던 ‘절대 반지’와 같은 소중한 존재가 나를 옥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순간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절대 반지’가 주었던 과거의 영광에 기댄 채 고통을 감내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인지, 혹은 빌보처럼 ‘절대 반지’를 벗어나면 펼쳐질 더 나은 미래에 베팅을 하며 모험을 떠날 것인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미술계에서 전시를 공동 기획하며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고, 우리는 곧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저축을 해도 둘의 월급으로는 서울에 전세방 하나 마련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대기업 문화재단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남편보다는 비영리공간에서 간헐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일하던 내 쪽에서 일을 그만두었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대학원 시절 용돈벌이를 위해 했던 영어과외는 박봉의 미술계에서 일할 때까지 이어졌었다. 그리고 나는 강남의 학부모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과외선생이었다. 큐레이터로의 수입보다 항상 영어 과외 쪽의 수입이 더 많았고 이를 경험 삼아 나는 영어학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30대 중반, 나는 모든 열정을 바쳐 학원을 성장시켰다. 학원은 나의 일부분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반지의 제왕의 빌보처럼, 그것을 계속 지켜내기엔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시점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물론 이주와 함께 시작되는 대장정의 고생길을 조금이라도 예측했다면, 나는 떠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과하게 소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국에서 나는 불편함 없이 살았다. 결혼 십 년 차에 이루어낸 재정적 안정과 깊어지는 남편과의 유대감으로 40년을 살아온 모국의 사회에서의 삶은 겉보이기에는 단조로울 정도로 평온했다. 일인 기업이었던 학원은 몇 년 사이 나름 선생 10명 이상을 거느린 나름 큰 규모의 어학원으로 성장했고 남편 역시 회사에서 승진을 거듭하며 차장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속이 비어 가고 있었다.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고 안정화가 될 때까지, 나는 내 안의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돈을 버는 일에 올인했다. 주 7일 근무는 기본이었고(모든 1인 사업체가 그러하듯), 하루 10시간의 강의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김밥과 컵라면을 돌려 먹으면서 식사 시간까지 아꼈다. 그 결과 예상보다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일단 사업이 흑자로 전환되자 사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분기별로 매출과 순수익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이제 사업은 나의 노동력을 넘어 타인의 노동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엄연한 기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문제는 사업의 규모와 비례하여 진상고객도 늘었다는 것이었다. 돈을 앞세워 갑질을 하는 학부모에서 직장인까지. 소수였지만 이들의 횡포는 나의 영혼을 끝까지 갉아먹었다. 이러한 진상들의 기본값은 이러하다.
(1) 나는 수강료를 낼 돈이 있다.
(2) 이 사회에서 돈은 신이다.
(3) 그러므로 나는 신이다.
(4) 그러니 나를 신처럼 떠 받들라!
이런 몰상식한 인간들을 매일 마주하는 것이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얄팍한 수법들을 총 동원하여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내 영혼을 더럽혔다. 매일 밤, 나는 내 영혼의 청소기를 쥐어짜 내 이들이 더럽히고 간 곳들을 청소했다.
그런데 청소를 하면 할수록, 자아가 비명을 질렀다. ‘언제까지 이렇고 살 거야? 이게 정말 네가 원하던 삶이야?’ 숨이 턱턱 막혔다. 하루 종일 들볶이다 강변북로를 타고 일산에 위치한 집에 오는 길이면, 아득하게 펼쳐지는 고속도로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가끔 호흡이 힘들었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절대반지를 내려놓는 일을 꿈꾸었다. ‘일정 액수의 돈이 모이면, 남편과 함께 아무도 모르는 먼 타국으로 떠나 못다 한 공부를 해야지.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글을 써야지. 철저히 나를 위해 살아야지.’
아니 사업을 그만둘 핑계를 찾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충분한 캐시 카우 역할을 하는 멀쩡한 사업체를 몇몇의 진상들이 싫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매우 정상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사이에 꼭 필요한 ‘예의’와 ‘상식’을 머리와 가슴에 탑재하고 있었고 그런 그들과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러나 99명의 선한 사람이 모여있는 집단도 단 1명의 악인으로 인해 파괴된다. 진상고객의 말에는 독성(toxic)이 있다. 입을 여는 순간, 이들은 어김없이 독침을 날렸다. 그리고 이러한 독침을 정면으로 맞으면 사지가 마비되고 정신을 잃기 마련이다.
이들 중에 ‘수강료 먹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 (제발 영어공부를 이렇게 했으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세 달 치 수강료를 한 번에 결제한 후에, 3달 동안 매주 결제 취소를 하고 다른 카드로 재결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재결재를 하는 카드는 한도부족으로 승인이 안 난다. 그들은 그렇게 유유히 다음 주에 와서 재 결제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진다.
가장 악랄한 경우는 어린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몇 달치 수강료를 연체하고 사라지는 경우이다. 등원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너는 수강료를 내지 않아 친구들과 수업에 참여할 수 없으니 집에 가렴.’이라는 말을 못 할 학원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짓이다. 가끔 나타나서 밀린 수강료를 결제하는데,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그때마다 온갖 명품으로 휘감고 나타나 새로 산 외제차를 거들먹대며 으스대는 꼴불견을 떠는 것도 잊지 않는다. TV드라마에서 보는 학부모의 갑질은 빙산의 일각이다. 어쩌면 너무 과장되지 않아서 현실감이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횡포는 정말이지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진상들의 뒤치다꺼리를 온갖 힘을 짜내서 하고 있을 때 즈음, 코로나가 창궐했다.
전 세계가 멈추었고, 당연히 내 사업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잘 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마이너스로 전환하자 처음에는 당황했고 나중에는 자포자기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멈춘 것이다. 코로나는 쉽게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나는 절대반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