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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요나 Oct 05. 2018

공포영화가 안 무섭다고? ****가 없으니까

서스펜스의 제왕 알프레드 히치콕

웃기는 귀신 만득이 시리즈


1990년대에는 여러 가지 ‘개그 시리즈’가 대유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참새 시리즈’, ‘최불암 시리즈’, ‘허무개그 시리즈’ 등은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지금은 ‘아재 개그’라고 천대받는 이 시리즈 중에서 유독 공포물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만득이와 귀신’ 시리즈였다.
만득이에게는 어느 날부터인가 귀신이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는 캄캄한 밤에 만득이가 변소에 갔다. 볼일을 보고 있는 만득이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득아~만득아~뭐하니~” 만득이가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귀신이 변소 천정에 붙어서 만득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득이는 귀신에게 말했다. “똥 싸.”

냄새가 날것 같은 변소귀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자지라지게 웃었다. 오죽하면 X알까지 자지라진다고 해서 ‘알 자지라’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은 농담이고, 이번에는 그보다 옛날에 유행했던 1980년대의 ‘요코하마’ 시리즈를 들어보자.


한 바닷가 마을에 여자 머리가 떠내려 왔다. 기이한 것은 이 머리가 말을 한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머리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지만 여자 머리는 좌우로 삐걱, 삐걱 고개를 돌리고 눈알을 굴리면서 “요코하마, 요코하마.”라고 말을 할 뿐이었다. 마을 사람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머리에게 물어보았다. “넌 누가 죽였니?” 그러자 머리통은 움직임을 딱 멈추더니 “그건...그건...”하더니 눈알을 뒤로 스르르 넘기면서 아주 천.천.히. “바로 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눈을 감고 한번 숨을 쉬고 청중이 가장 조용할 때를 노려서 벼락치는 소리로 “너다!”를 외쳤다. 그러면 겁 많은 동네 계집아이들과 꼬맹이들은 기겁을 하면서 울고 소리를 지르고 한바탕 난리가 났다.


같은 공포 시리즈인데 왜 만득이 시리즈는 헛웃음을 낳고, 요코하마 시리즈는 비명소리를 낳았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서스펜스’이다.


맥거핀(Macguffin) 효과:

‘맥거핀’이란, 히치콕 감독이 자신의 영화 '해외특파원(Foreign Correspondent)'(1940)에서 사용한 단어로, 영국에서 흔한 성(姓)이었으나 영화 속에서는 미스터리한 상황 속에서 의문을 생기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자, 히치콕 영화 에서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단어나 상황, 인물, 소품 등을 총칭하는 대명사로 쓰였다.

감독은 맥거핀으로 쓰이는 소재를 관객에게 미리 알려주고 관객의 일방적인 추리를 유도하며 서스펜스를 배가시킨다. (주; 요코하마 시리즈에서는 ‘요코하마’라는 의미 없는 단어가 맥거핀이다.)


관음증: Voyeurism. 觀淫症.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훔쳐보기를 통해서 쾌락을 느끼는 증상을 말한다. 히치콕은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살인범이 여성을 몰래 엿보는 ‘사이코’나 대상을 줄곧 훔쳐보는 ‘현기증’, 망원경으로 이웃을 훔쳐보면서 살인범을 잡게 되는 ‘이창’등 노골적으로 관객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훔쳐보기의 특성 때문에 히치콕의 영화는 페미니즘(Feminism) 영화이론가들로부터 여성성의 비하라는 총공격을 받기도했다.


그림자 효과:
히치콕 감독의 영화 ‘사이코(Psycho)’에서 카메라는 줄곧 샤워하는 여자와 물줄기와 칼을 든 그림자만을 보여준다. 관객에게는 비명 지르는 여자의 모습과 샤워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만을 보여줄 뿐, 살인자의 모습도 살해하는 행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단순한 그림자 효과와 귀를 찌르는 듯한 현악기의 효과음악만으로 관객들은 극도의 공포를 느꼈으며 영화 ‘사이코’의 샤워 씬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히치콕에게 영향을 미친 예술가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히치콕의 예술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미술가로는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를 들 수 있다. 그리스에서 출생한 키리코는 아테네의 미술학교에 다닌 후, 뮌헨에서 A.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인예술을 지향하였다. 그는 1910년부터 독자적인 회화정신을 형성하여 사물의 순간적인 형상에서부터 깊이있는 가치를 나타내는 형이상적 회화를 추구했다.
그의 작품 ‘어느 가을날 오후의 수수께끼’, ‘아침의 명상’, ‘거리의 우울과 신비’ 등의 작품은 그리스로마 시대를 연상시키는 고전적인 대리석상의 음영이 짙은 건물들 속에 얼키고 설킨 근대도시의 단편적 정경을 기계적인 형식으로 끼워맞춘 몽환적인 작품들이다.
이러한 키리코의 작품세계는 히치콕의 영화 기법에서 나타나는 길게 뻗어나가는 검은 그림자, 모호한 거리감, 모든 선들이 하나로 모아지는 원근법적 공간 구성에 탁월한 영향을 미쳤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키리코와 함께 히치콕의 연출에 큰 영향을 미친 화가는 세기의 천재 살바도르 달리였다. 히치콕의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드(Spellbound)'(1945)는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미술 디자인에 참여를 했다.
스펠바운드는 프로이드의 꿈 해석이론에 기반하는 본격적인 심리분석 영화로,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꿈을 통해 모든 단서를 찾게 된다는 내용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최면상태에서 그레고리 펙이 보는 유명한 꿈 장면들을 디자인했는데 지금까지도 이 장면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칭송 받고 있다.


소리의 마법사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


히치콕은 영화의 서스펜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예술적 요소를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소리의 효과로, 히치콕의 영화는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 ’이라는 명 음악가로부터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며 영화음악가인 버나드 허먼은 히치콕의 주요 작품들에서 명콤비로 호흡을 맞추었다. 영화 '사이코'에서 샤워를 하던 여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범인에게 살해당하는 씬을 관객들의 상상만으로 결코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으로 만든 것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버나드 허먼의 음악의 공이었다.
히치콕은 원래 이 샤워 신을 음악 없이 촬영 하려고 했으나, 버나드 허먼은 현악기로만 구성 된 음악을 삽입하여 히스테리 일보직전의 털끝이 모두 곤두서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을 만들어냈다.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새’ 등 히치콕의 주요 작품에서 명콤비로 호흡을 맞추었던 버나드 허먼은 히치콕의 영화 ‘나는 비밀을 안다(I Know the Secret)’(1956)에서 지휘자로 직접 출연까지 했지만, 1966년 작품 ‘찢겨진 커튼(Torn Curtain)’을 찍으며 히치콕과 결별했다.

버나드 허먼


로이 불팅(Roy Boulting) 감독의 1968년 작 ‘트위스티드 너브(Twisted Nerve)’는 이중인격을 앓는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 상태에 의한 살인과 자살을 그린 작품으로, 버나드 허먼이 작곡한 주제가 ‘Twisted Nerve’는 휘파람 소리만으로 소름 돋는 공포심을 안겨주는 음악으로 유명하다. 트위스트 너브는 200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Kill Bill)’에 쓰이면서 새롭게 대중에게 알려졌고, 2017년 모 국산 자동차 광고 음악으로 쓰이면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킬빌에서 데릴 한나가 휘파람을 부는 유명한 장면

버나드 허먼은 1976년 아카데미 음악상에 빛나는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1975)의 음악을 완성 시킨 사흘 뒤 마치 영화처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히치콕 감독이 영화계에 미친 혁신과 창조의 기술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혁신적인 카메라 구도와 정교하고 강박적인 영화편집, 공포를 극대화하는 사운드트랙을 이용하여 두려움을 조성하고 관객의 심리를 공포로 이끄는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동시에 인간심리를 고도로 파악한 정신의학의 과학적 조우와 그 사실성을 카메라에 담는 기법으로 제작하는 영화마다 커다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배우와 상의중인 히치콕 감독


‘백색의 공포(Spellbound)’(1945), ‘나는 고백한다(I Confess)’(1953), ‘다이얼 M을 돌려라(Murder for dial M)’(1954), ‘이창(裏窓. Rear Window)’(1955), ‘현기증(Vertigo)’(1958),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1959), ‘사이코(Psycho)’(1960), ‘새(The Birds)’(1963), ‘토파즈(Topaz)’(1969) 외에도 수많은 히치콕 감독의 작품들은 지금도 영화학의 교과서로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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