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요나 Oct 10. 2018

향수 미학

영화를 통해 그려본 향수의 세계

1985년 출판되어 세간에 충격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파트리크 쥐슨킨트의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치명적인 향기의 마력에 빠져 인간의 향기를 수집하려고 한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된 18세기의 프랑스는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향수의 이용과 제조가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그라스(Grasse)지방은 가죽산업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으로, 가죽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막고자 사용하던 향수제조 기술도 함께 발달했다.


태양 왕 루이 14세는 ‘향수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향수 애호가로 유명했는데 화려한 궁정문화와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사치스러운 향락은 이때 정점에 달했다. 루이 15세 때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은 귀족중심의 예술과 문화가 시민사회로까지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집권 황제 나폴레옹 1세와 황후 조세핀은 매달 몇 십 병의 향수를 사용할 만큼 향수와 향료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후로도 프랑스의 향수 산업은 끊임없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다.

혁명과 향락, 코를 찌르는 향기와 분노의 체취가 뒤엉켜 있었던 18세기말 프랑스 사회의 숨 막히는 갈등을 가장 잘 나타낸 대표적인 문학작품이 바로 빅토르 위고(1802-1885. Victor-Marie Hugo)의 소설 <레 미제라블(Le Miserable)>이다.

1862년 출간된 <레 미제라블>은 나폴레옹 1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의 20년을 배경으로, 개혁의 격동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원죄와 희생, 순수와 타락을 상징하며 죄와 벌의 두려움 속에서 신에게 용서를 갈구하는 태초의 정죄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민중의 저항과 숭고한 바람이 담긴 영화 <레 미제라블>


2012년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로는 드물게 국내 관객 500만이 넘는 대 흥행을 기록했다.

이는 뮤지컬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라이브로 녹음한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배우였던 휴 잭맨(Hugh Jackman)의 열연과 중후한 음색은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그가 불렀던 ‘Who Am I’는 흡사 고독한 수도사가 만들어내는 태초의 이끼내음 가득한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까르뚜지아 코랄리움(Carthusia-Corallium)’의 향기를 연상시킨다.

앤 헤서웨이(Anne Hathaway)의 처연한 절규 ‘I Dream A Dream’은 숙녀에서 창녀로 변해가는 오묘한 향을 품고 있는 프레드릭 말의 ’뮤스크 라바줴(Frederic Malle-Musc Ravageur)‘의 향기를, 아만다 사이프리드(Amanda Seyfried)가 청아한 음색으로 요정처럼 노래하는 ‘In My Life’에서는 아닉 구딸의 ‘쁘띠 쉐리(Annick Goutal-Petite Cherie)’의 향이 풍기는 듯 하다.

지디의 애장품 무스크 라바줴 광고
아닉 구딸 매장

그리고 역시 뮤지컬 배우인 사만다 바크스(Samantha Barks)가 부른 가슴 아픈 사랑 노래 ‘On My Own’는 아틀리에 코롱의 ‘수드 마그놀리아 압솔뤼(Atelier Cologne-Sud Magnolia Cologne Absolu)’ 향이 눈물처럼 방울져 내리는 듯 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감동의 합창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수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No.1 임페리얼 마제스티(Clive Christian-No.1 Imperial Majesty)’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수드 마그놀리아 압솔위
No. 1 임페리얼 마제스티

전 세계 관객들에게 웅장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영화 <레 미제라블>은 제 7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남우 주연상(휴 잭맨), 여우 조연상(앤 헤서웨이)을 휩쓸었다.


향기가 때로는 사람을 말한다


한편의 영화에서 보고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처럼 하나의 향기가 지닌 환희와 여운 역시 무궁무진하다.

고가의 향수가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향기는 아니듯이 잠시 스쳐가는 작은 향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뿌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넓고 향수는 여전히 많다. 내가 좋아하는 향기만 고집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무한대의 향기를 무한대의 가격에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오묘하게 조합되어 사람을 도취시키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값비싼 향기들이 진정한 자신 삶의 모습과 내면까지도 고급스럽게 바꿔줄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쯤 질문해 봐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쿠지로의 여름(菊次郞の夏. 199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