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커피의 프리미엄 시대를 연 스타벅스
오래전, 강산이 두 번 변할정도로 오래전에는 친구를 만날때는 항상 커피 전문점 할리스를 갔다. 커피 1, 프림 3, 설탕 2의 황금비율만 마시는 내가 할리스 커피가 무슨 다방 커피같아서 좋아서 간 것은 아니고, 할리스에서 파는 영어 단어장처럼 두꺼운 화이트 초컬릿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요즘같은 대형 커피 전문점이 별로 없었고, 또 커피점에서 초컬릿을 함께 판다는 사실이 신기했었다.
십년쯤 전에는 아기와 함께 카페베네라는 젤라또와 와플을 커피와 함께 파는 곳을 자주 갔었다. 매장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서 아이도 좋아하고 천연 재료로 만든 아이스크림에 와플을 시키면 몇가지 과일들도 예쁘게 얹어서 나왔다.
입구는 나무로 만든 테라스로 꾸며놓아 보기도 좋고 심심한 모자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놀기도 좋았다.
그 즈음의 카페베네 앞에는 한예술의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카페베네 매장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CJ계열의 싸이더스에서 운영하는 매장이라는 것을 광고를 했었고 그와 함께 아이스크림과 와플보다는 커피 판매에 주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당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던 대형 커피점들은 파스쿠치, 투 썸 플레이스, 엔젤리너스, 탐 앤 탐스, 그리고 스타벅스와 그 라이벌 커피빈이 있었다. (그 외에도 물론 많았다) 거짓말처럼 그 크고 화려하고 세련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던 커피점들이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스피커소리 시끄러운 핸드펀가게들로 바뀌는데는 채 십년이 걸리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들의 크고 웅장한 실내는 작고 아담한 거실모양의 작은 커피점으로 바뀌었고, 역세권 대로변 보다는 동네 골목, 집 앞 편의점 옆에 수제 커피점들이 숨은 듯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또 가격은 저렴하지만 엄청 많은 양으로 한국 사람들의 많이 주세요, 심리에 승부수를 던진 첫 주자 봄봄이 있었다. 대형 커피점에서는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잔 마실 돈이면 그란데 사이즈에 생크림이 듬뿍 올라간 프라푸치노를 먹을 수 있었다. 이후 게이트와 백다방이 생겨나면서 대세는 질보다 양을 선택한다는 불경기의 경제논리를 수긍할수 밖에 없었다. 아기자기한 수제 커피점과 듬뿍 퍼주는 소규모 프랜차이즈 사이에서, 대형 커피점들은 백악기의 공룡처럼 자멸하고 마는구나.
그런데 자고 일어나보면 하나씩 없어지는 프랜차이즈 커피숍들 중에 오히려 매장이 점점 늘어나는 커피점이 있었다. 바로 스타벅스였다. 공룡들의 피튀기는 싸움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는 미국 시애틀에서 건너온 ‘스타벅스’였던 것이다.
1999년 신촌 이화여대 앞에 제1호점을 연 스타벅스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커피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믹스커피와 냉동 건조 커피에 익숙해있던 한국 사람들은 로고가 멋지게 인쇄된 종이 텀블러를 한 손으로 폼나게 들고 값비싼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1987년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가 시애틀의 원두소매점을 인수해서 최초의 고급원두커피 판매 매장으로 문을 연 스타벅스는 일반적인 커피점과 달리 커피와 차 이외에도 샌드위치 및 각종 간식과 베이커리 그리고 보온병이나 머그컵과 같은 생활물품도 판매했다.
사람들은 세련된 거실 같은 분위기 속에서 재즈음악을 들으며 혼자 혹은 여럿이 식사를 하면서 편히 쉴 수 있었다. 외우기도 힘든 수많은 커피 종류와 사이즈 주문에 진땀을 흘리면서도 사람들은 스타벅스 스타일을 원했고, 스타벅스가 탄생시킨 고가의 원두커피 유행은 커피빈, 탐앤탐스, 카페베네등 커피 전문점의 붐을 일으키면서 무섭게 번져나갔다. 한 끼 밥값은 아껴도 커피 값은 아끼지 않는 고급 커피족들은 한 건물에 커피점이 두 세 개씩 성업을 하는 모습으로 거리 맵조차 바꿔놓았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과 내수경기 하락에 내몰려 우후죽순으로 문을 닫는 커피점이 늘어났고, 그 빈 공간은 역시 스타벅스가 차지했다. 비결은 바로 핵심 상권에 매장을 집중한다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마케팅 전략과 동일 품목의 타 점포와 일정 거리유지라는 가맹점사업법에 저촉 받지 않는 직영점 경영 방식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도시에 살고 있는 작금의 커피유저들은 지금 어느 커피점을 갈지 고민할 것이 아니라, 거미줄처럼 대로변을 장악하고 있는 스타벅스 매장들 사이에서 길 건너편의 스타벅스를 갈지 이쪽 편에 있는 스타벅스를 갈 것인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이 폐업을 하는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던 2016년에 스타벅스는 청담동에 1000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현재 서울은 공식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도시이며 한국은 세계에서 아메리카노 가격이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비싼 나라이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한발 더 나아가 엄선 된 리저브 원두의 추출 기구를 개인이 선택하는 맞춤 커피를 제공하는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테이스팅 룸(Starbucks Reserve Ro-astery and Tasting Room)’ 매장을 도입해 한 잔에 1만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 커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소비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소비자들은 이제 식후 커피 한잔에도 만 원짜리 프리미엄 커피를 손에 들고 보무도 당당해 질 것인가, 천 원짜리 편의점 커피를 숭늉 마시듯 원샷 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후자를 택해도 스타벅스는 만족할 것이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는 이상 스타벅스 역시 계속 비싼 커피를 팔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의 브랜드명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사람들은 제품의 영속성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순간의 만족이 이미 제품의 가치를 금전적인 수준으로 가둬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트랜드를 가장한 불합리가 만연한 시대에는 기업들의 그 영민한 포장조차 꿰뚫어보는 현명한 소비심리가 필요하다.
이 작지만 거대한 자신의 권리를 최고급 메이커로 포장 된 말쑥함에 소모할 것인지 조금 불편하지만 사람냄새나는 한 평 가게에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깨닫고 있는 것이야말로 기업들이 왕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대처하는 소비자들의 현명한 자세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