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을 생각한다!
1월 20일이다.
문 리버(Moon River)가 흘러나온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안다. 새벽 5시 45분, 맨해튼, 티파니, 커피 한 잔, 데니시 페스트리, 오드리 헵번... '첫 번째 싱글걸'이 그랬던 것처럼, 커피 한 잔과 데니시 페스트리를 들고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그린다. 마스크가 그 풍경을 막아서 아쉽다.
오늘의 커피 메뉴 이름을 붙이자면,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맞다. 오드리 헵번 때문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사랑스러운 영화다. 오드리 헵번은 반짝반짝 빛난다. 문 리버 선율은 달콤하다. 무엇보다 오드리가 분했던 홀리 골라이틀리. 이 흥미로운 캐릭터가 내뿜는 분위기는 시대 전복적이다. 물론 1950~1960년대 배경을 알아야 포착할 수 있다. 당대에 없던 '모던 싱글걸'의 탄생이었다. 여성상에 대한 전복이었다. 홀리는 그야말로, 당대의 공기를 바꿨다.
미국 이야기지만, 물론 한국에선 이것도 한참 뒤의 이야기지만,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전에는 나쁜 여자들만 섹스를 즐길 수 있었다."
영화학자 샘 왓슨이 쓴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했던 전언처럼,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배드걸(Bad girl)이었다. 말하자면, 싱글걸은 색안경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오드리 헵번이 분했던 홀리 골라이틀리는 배드걸을 굿걸로, 더 나아가 '워너비'로 만들었다!
영화감독 빌리 와일더는 "혼자 힘으로 풍만과 육감의 시대를 바꿨다"라고 표현했다.
대개, 시대가 여성상 혹은 남성상을 만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백은하 기자가 했던 말마따나, 어떤 여성은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열어젖힌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우리가 본 홀리가 그랬다.
한 마디로 홀리는,
예기치 않게 자유와 반권위의 60년대를 열어젖힌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이전에는 없던, 아니 있었으나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억압당했던 여성(상)을 봉인에서 풀었다.
당연하게도 오드리 헵번이 아니었으면(마릴린 먼로가 캐스팅 0순위였다),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내가 베스파를 전 세계로 퍼뜨린 귀여운 공주로 등장한 <로마의 휴일>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을 더 좋아하는 이유다.
한때 커피 쟁이로서, 흥미로웠던 지점은,
이 영화가 나온 1961년은 에스프레소 머신의 레전드인 Faema(훼마) E61이 등장한 해다.
Faema E61이 뭐냐고? 요약하자면,
지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원형이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압력인 9 Bar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술 혁신을 이뤘다. 그룹 헤드 형태가 나타났고, 기존 보일러가 가진 결점을 극복한 이중 보일러가 사용됐다. 앞서 수직구조가 대세였으나 E61은 수평형으로 대세가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머신의 등장은 특히 커피사업의 대형화, 프랜차이즈를 가능하게 만든 계기로도 작동했다.
그러니,
1월 20일의 커피는 Faema E61에서 뽑아낸 커피 한 잔과 데니시 페스트리, 그리고 티파니(보석)와 함께(음, 티파니는 비싸서 어렵겠군ㅠ).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보면서.
http://www.youtube.com/watch?v=1JfS90u-1g8
오드리 헵번을 떠올렸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오드리는 1993년 이날, 일찌감치 영화계를 떠나 유니세프 대사로서 인권운동과 아프리카 등지에서 아동인권 보호를 위해 헌신했던 오드리는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고 오드리만 떠올릴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라면, 무엇보다 잊지 말 것이 있다. 용산참사 12주기. 오드리도 이를 알았다면 용산에게 추모와 애도를 보냈을 것이다.
오드리와 함께 용산에서 커피를.
오늘도 그렇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쓴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일과 기억하는 방식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홀리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속하는 거야.
그게 유일한 행복의 기회니까.
_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