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 커피] 함께 먹고 마시며 만드는 ‘느낌의 공동체’
‘밤9시의 커피’는 다정하고 환대가 넘치는 가상의 카페입니다. 불면을 부르는 커피가 아닌, 분주한 일상이지만 늘 깨어있는 존재로 남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을 상징합니다. ‘음료, 그 이상’인 커피를 매개로 가상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함께 상상하고 공감합니다. <편집자 주>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_ 장 폴 리히터(독일 소설가)
훌쩍훌쩍, 흐느낌이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소리만큼은 묻히지 않는다. 카페 <밤9시의 커피> 구석에서 나는 소리다. 단골손님 ‘연시’가 울고 있다. 왜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커피를 다시 내렸다. 그가 좋아하는, 단맛과 바디감이 풍부한 멕시코 커피다. 살며시 그가 앉은 테이블에 갖다 놓았다. 얼굴을 든 그를 향해 엷은 미소를 띠며 마시라는 눈짓만 건넸다.
때로는 말 대신 커피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연시가 얼마 전에 연애사 고민을 건넨 적이 있었는데, 섣불리 짐작할 순 없었다. 문득 달력을 봤다. 아, 유월이다. 옛 추억이 성큼 스쳤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커피 만드는 남자’가 된 데는 커피를 함께 마셨던 기억도 한몫한다. 그 기억 속 풍경과 함께 묻어난 커피 향이 나를 커피라는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우리가 함께 마셨던 커피를 둘러싼 향, 공기, 바람, 습도, 숨, 대화 등이 내 마음의 방 하나를 영원히 전세 냈다. 나는 그 방을 뺄 수가 없다.
고개를 돌리니 책장에 연애만화 《저녁 같이 드실래요?》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함께 마시고 같이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질하게 만든 책이다. 우리는 함께 마시고 먹으면서 서로를 알아갔고, 신뢰를 쌓아갔다. 서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오간 것도 그런 순간을 통해서였다.
커피든 밥이든 함께 하는 일상의 행위는 어떤 함의를 품고 있다. 무엇이든 함께 먹고 나눈다는 건, 기본적인 신뢰를 배경으로 한다. 이미 신뢰를 맺은 상태이거나 공동의 이해관계를 맺게 될 때, 으레 “밥 한번 하자” “커피 한 잔 마시자”라고 말을 건넨다.
음악을 바꿨다. 폴 킴의 <커피 한 잔 할래요>가 흘러나온다. 연시에게 이 노래가 어떻게 다가설지는 모르겠다. 연인과 종종 <밤9시의 커피>에 들러 커피 한잔 나누던 익숙한 풍경이 오늘은 아니기에. 그 눈물의 방문이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충분히 슬퍼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가 작은 위로를 건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 한 잔’ ‘밥 한 끼’에는 신뢰의 메시지가 담겼다. 서양 전통인 건배는 술에 독을 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태도였다. 또한 밥이든 커피를 같이 한다는 건, 함께 한 사람의 삶에 귀를 기울여 주겠다는 행위다. 그런 행위가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만큼은 함께한 사람들끼리 느낌의 공동체로 맺어진다.
《저녁 같이 드실래요?》에서 주인공, 도희는 그런 소소한 시간을 좋아하는 여자다. 해경도 그런 소소한 시간에 얽힌 추억이 많은 남자다. 두 사람은 그 소소한 시간이 주는 즐거움을 알고 소중히 여길 줄 안다. 단순하게 혼자 먹는 게 외롭고 쪽팔려서 같이 밥 먹는 상대로 서로를 선택한 것 같진 않다.
함께 식사 등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를 뜻하는 ‘소셜다이닝’ 어원은 고대 그리스 ‘심포지온(Symposion, 향연)’이다. 오늘날, 강연회 등으로 인식되고 있는 심포지엄(심포지온)은 원래 함께 식사와 술을 나누며 이야기하는 문화를 지칭했다. 그러니 식사나 커피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건 인류의 DNA에 박힌 오래된 전통이자 문화가 아니었을까.
일본 만화나 영화, 책 등에서 감탄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같이 먹는 것’에 대한 묘사다. 화려하고 대단한 밥상이 아닌 편하게 누군가와 담소를 나누고 시간과 이야기를 공유한다. 작고한 요네하라 마리는 《미식견문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튼 엄청난 먹보가 많은 우리 친지들은 맛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또 그것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것을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여긴다. 좋은 음식과 커피를 함께 먹는 게 미식이 아닐까.
만화에서 도희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이별의 순간을 맞이했다. 궁금했다. 헤어질 때 먹은 음식은 어떻게 기억될까. <밤9시의 커피>에서 헤어지는 연인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이별하고 떠난 자리, 커피는 대부분 남아 있었다. 그 남은 커피가 검은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도희는 그 이후 핸드드립 커피를 마셨을까? 어쩌면 헤어짐을 경험했을지 모를 연시에게 커피는 어떤 존재로 남을까?
‘커피 한 잔 할래요? 밥 같이 먹을래요?’ 참 좋은 말이다. 같이 먹고 마신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밥이든 커피든, 함께 하는 사람과 나눈 기억이 삶을 재배치하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양한 기제가 먹거리를 단순한 끼니 이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혼자이거나 슬픔이 방문했을 때도 말없이 위로하는 존재가 밥이나 커피가 되기도 한다.
말 대신 커피나 음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연시에게 커피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순간에도 공간은 중요하다. 마음껏, 편하게 안전하게, 이웃이나 친구와 마주 앉아 밥이든 커피를 먹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장소 말이다. 물론 혼자서 그것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장소은 수시로 흔들리는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니까.
<밤9시의 커피>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단골들과 함께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 연시가 마음껏 슬퍼하고 훌쩍여도 안전한 건 그런 공동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흐느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연시가 배고프다며 먹을 것이 없는지 물었다.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어제 만들어 놓은 비건식을 데워주겠다며 꺼냈다. 연시의 눈빛이 반짝였다. 마침 또 다른 단골, 혜연과 지우가 문을 열었다. 4인분을 준비하고 커피를 내렸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유월의 어느 밤, 느낌의 공동체가 다시 만들어졌다.
글 | 낭만(김이준수)
* 카페문화웹진 카페인(https://www.cafein21.co.kr)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