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열일'을 피해 여행과 휴가를 앞둔 당신에게 '부엔 까미노'
휴가는 여름과 함께 온다. 휴가는 또 여행을 데리고 온다. 열일했으니 ‘열일(烈日)’을 피해 여행을 꿈꾼다. 그리곤 이 말을 툭 던진다.
“여행 가서 진짜 나(자아)를 찾아올래.”
이런 말, 나올 만도 하다.
회사 생활은 ‘탈아(奪我 혹은 脫我)’의 연속. 나를 죽이고 회사와 강제 혼연일체 해야 하는 슬픔. 여행 가서라도 온전히 나로서 살고 싶은 욕망을 누가 욕할쏜가.
그때의 나도 그렇게 외치고 떠났었다. 회사 속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야. 가면을 던지고 여행하면서 진짜 자아를 찾을래. 지금과 다른 삶, 지금과 다른 나를 꿈꾸면서 가방을 짊어졌다. 그런데 개뿔. 진짜 나를 (재)발견하겠다고? 그 거대한 포부(?)는 이틀 만에 산산조각 났다.
어딜 가도, 나는 나였다. 별반 다를 것도 없었고, 떠난다고 새로운 자아가 불쑥 솟아오르지도 않았다.
대체 뭘 바꾸고 찾겠다고 아등바등 거렸지? 스스로 한심했다. 변화라는 초심(?)의 강박은 버려야 했다. 무사히 여정을 마치는 것만 해도 큰 과업인데 무려 자아라니! 나는 자신에게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쩌자고 여행하는 거니?
그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일상의 힘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세다. 그냥 센 것이 아니다. 아주 매우 무척 세다. 거기다 늘 비슷한 쳇바퀴를 굴리는 것 같아 지긋지긋하다. 여기저기 치이면서 찌들 대로 찌든 일상의 때는 어떻고. 일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다 좋을 것 같았다. 내 (진짜) 삶은 이게 아니야, 라고 외치고 여행 떠나는 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러나 산티아고를 순례하고 카오산로드를 걸어도 짐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발만 아프다. 나의 진짜 모습? 내속엔 내가 많지만, 그게 여행 간다고 불쑥 용 솟으리라는 법도 없다. 유럽횡단 열차에 오른다고 <비포 선라이즈>의 로맨스가 당신에게 찾아올 일, 없다. 나나 당신이나 파올로 코엘료(큰 회사 중역이던 코엘료는 산티아고를 걷고는 소설가가 되기로 작정한다)가 아니다.
변화를 목적으로 섣불리 여행을 선택하지 않으면 좋겠다. 변화에 초점을 둔다면 엉뚱한 비행기에 잘못 올라타는 것과 같다. 여행은 그저, 즐김. 까르페디엠(Carpe Diem). 낯선 땅에서 고투와 희비쌍곡선을 받아들이거나, 때깔 좋은 비싼 리조트에서 돈이 주는 서비스를 마음껏 누리거나, 무엇이든 상관없다. 여행이 나를 변화시키리란 강박은 없어도 된다. 이젠 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꼼꼼한 ‘정보’나 빈틈없는 ‘일정’이 아니다. 여행을 대하는 ‘자세’다. 그건 결국 삶에 대한 태도와 맥락이 닿는다.
여행에 (인생의) 길은 없다. 일상의 궤를 벗어나기 위한 여행도 시간이 어느 정도 쌓이면 그것 자체로 일상이 된다. 여행 ‘밖’에 길이 있고 그토록 찾고 싶은 자아가 있다. 일상에 진짜 길이 있다. 정 그렇게 찾고 싶다면, 일상의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을 할 일이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며 감동하는지를 살펴라. 결국 진짜 나는 일상에서 태도로, 자세로 나온다. 그곳에 내가 없다면 여행을 가도 또 다른 나는 없다. 여행을 가겠다면 거창한 명분, 변화의 목적 따위는 버리고, 또 다른 일상에 몸을 맡기는 기분으로 가볍게.
여행을 가고 싶은데 일이 너무 많다고? 에이, 안 한다고 죽을 일도 아닌데 손 놓자. 여행지에 가서도 마찬가지. 걷다 보니 힘들다고? 관두자. 싫음 말자.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뭘. 책임감 때문에 걸린다고? 몰랐나? 당신은 이미 충분히 책임을 다했다.
무엇보다 휴가를 앞둔 당신에게, 부엔 까미노!(앞날에 좋은 일 있기를, 좋은 여행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