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커피]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만 마시는 이유
커피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촉촉하다는 점과 따뜻하다는 점이다.
_네덜란드 속담
‘여름에는 차가운(아이스) 커피가 진리’라는 말도 있지만, 누군가는 따뜻한(혹은 뜨거운) 커피만 마신다. ‘이열치열’이 아니다. 커피의 온도가 마음의 온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다. 네덜란드의 속담처럼 커피의 장점을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체질상 차가운 음료가 맞지 않아서 따뜻한 커피를 찾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여름에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에게 살짝 더 마음이 간다. 마음이 조금은 더 따뜻한 사람일 것이라는 지레짐작 때문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그저 흘려들어도 좋은 농담으로 치부해도 좋다.
여름,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좋은 계절
시간을 돌려보자. 그해 여름, 몸과 마음이 불덩이처럼 후끈했던 이십 대 초반. 커피 맛이나 향은 염두에 두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여름이면 볼 것도 없이 차가운 음료만 찾았다. 음료를 마신 뒤 얼음을 씹고 빠는 재미도 있었다. 후텁지근한 여름, 삐질삐질 흘러내리는 땀을 식힌다는 핑계, 차가운 커피는 제격이었다. 애초 커피 향미는 중요하지 않았으니 그저 차가운 것만 중요했다.
그러다 그 여름, 내 마음에서 사랑이 꽃피기 시작했다. 우리가 종종 들렀던 커피하우스, 그녀는 아이스커피를 찾지 않았다. 늘 따뜻한 커피만 마셨다. 따뜻한 커피에 어울리는 예쁜 잔은 덤이었다. 한 번은 물었다. 이 무더운 여름에 왜 따뜻하게만 마셔요? 입에 살짝 커피를 머금으며 향과 맛을 음미하던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따뜻하니까. 커피가 따뜻해야 마음이 움직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이 훅 들어왔다. 어쩌면 마음을 얼게 하지 않겠다는, 따뜻한 커피가 마음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는 말 같았다. 아,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따뜻한 것이 좋다고 말했다. 차가운 음료는 뭔가 당장의 더위를 덮게 해줄 뿐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따뜻한 커피만 마시는 것은 그녀만의 취향이자 루틴일 것이다. 누구나 그것에 동조하고 동의할 수는 없다. 커피는 감성을 건드리기도 하지만 실은 이성의 음료다. 커피가 역사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렇긴 해도 커피를 마신다고 아무나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커피를 통해 감성을 끌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작은 말, 행위 하나에도 촉을 세우고 있던 나는 커피를 다시 보게 됐다. 당연히 사심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고 싶었다. 여름의 온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후 커피하우스를 들릴 때마다 나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사심에서 비롯됐지만, 마음의 온도를 데우는 커피의 온도에 적응하게 됐다. 여름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좋은 계절이 됐다.
My heart is where the good coffee is
핀란드 헬싱키의 한 카페 입간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My heart is where the good coffee is’.
영화 <카모메 식당>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지만, 핀란드 인민들은 커피를 주야장천 마셔댄다. “하루 8~9잔이면 적당해요”라고 말하는 이들은 그야말로 카페인 중독자다. 그러니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12킬로그램에 달한다(참고로 한국은 2킬로그램대로 알려져 있다). 통계에 의하면, 핀란드는 1인당 기준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피를 많이 마시는 나라이다. 1위는 룩셈부르크인데, 관세가 없는 이점 등으로 1인당 연간 20킬로그램 이상을 마신다.
핀란드에 사는 많은 이들은 커피가 어떻게 생산되고 로스팅되는지 등 커피의 질에도 민감하다. 특히 프랜차이즈보다 동네 골목에 자리한 특색 있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를 즐긴다. 나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여긴다. 좋은 커피에는 생산자(농민), 대자연 등의 노고와 함께 커피를 내리는 사람(혹은 바리스타)의 정성이 담겨 있음을 아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태도. 커피 한 잔에 담긴 것이 단순하게 커피와 물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이 커피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에 담긴 다양한 함의 중 하나를 건네는 것이다.
19세기 《브리야사바랭의 미식 예찬》(원제 《미각의 생리학 Pbysiologie du gout》)을 쓴 브리야사바랭은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겠다.” 즐겨 먹는 음식이나 식습관을 통해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령 성품이나 취향 혹은 교양 수준 같은 것. 브리야사바랭은 또 드보브라는 당시 최고 수준의 쇼콜라티에(초콜릿을 만드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좋은 음식’과 ‘행복’이 반드시 돈과 직결되지 않음을 전했다. 드보브는 장인이면서 고객의 몸과 마음 상태를 묻고는 그에 맞는 초콜릿을 만들어 건넸다.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작은 초콜릿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마음이 충만할 터이다. 물론 손님은 그전에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좋은 커피, 좋은 초콜릿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또 마음에 따라 좋은 커피, 좋은 초콜릿이 나올 수도 있다. 나는 브리야사바랭의 말에서 ‘먹는 것’을 ‘커피’로 바꿔본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를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겠다.” 우격다짐이지만,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여름의 온도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이는 자신의 몸(체질)과 선호를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여름에 따뜻한 커피를 먹는 인민들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면 어떤 답을 건넬까. 특별한 이유를 대지 못할 수도 있다. 커피에 대한 개인의 취향과 선호는 만인만색일 뿐. 커피 향미에 관심이 없거나 선호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커피에 대한 기호는 개인이 처한 환경이나 문화적 기호의 영향을 받아 형성됐을 것이다. 체질, 건강, 부모, 빈부, 종교, 이념, 윤리, 사회 등등 개인을 둘러싼 모든 우주의 기운이 모여 만든 것.
따뜻한 커피를 향한 나의 선호는 사랑에서 비롯됐다. 여름에도 내 뜨거운 심장을 뛰게 한 것은 따뜻한 커피였다. 차가운 얼음으로 식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심장이 시켰던 사랑은 따뜻한 커피로 인해 더 따뜻해졌다. 내 마음이 따뜻했던 나날들. 여름에도 따뜻함은 필요했다.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그녀 때문에 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마시게 되면서 나는 그녀라는 세계 외에 ‘커피’라는 세계에도 눈을 떴다. 하지만 다시 어느 해 여름, 그녀가 떠났다. 사랑이 떠난 자리, 커피가 남았다. 죄 없는 커피만 들이켰다. 그러다 사심으로 마셨던 커피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 아무도 몰랐다. 인생에는 그렇게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기도 한다.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을 자주 들었다.
울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삶의 반직선 위에 점일 뿐이야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이야
단지 과정일 뿐이야
제발 이러지 말아요 끝이라는 얘기
나는 항상 시작인 걸요
그댈 사랑하는 마음
점점 커져가고 있는 날 잘 알잖아요
네가 밟고 걷는 땅이 되고 싶던
잠시라도 네 입술 따뜻하게
데워줄 커피가 되고 싶던
oh 난 아직 사랑해 ♪♬
따뜻한 커피가 내게 줬던 그 마음의 온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고 싶었다. 커피는 관계를 만드는 매개가 되어줬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친구가 됐고 다시 사랑에도 빠졌다. 커피는 그 자체로도 내게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내 마음이 따뜻했던 나날에도, 내 마음이 쓸쓸했던 나날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던 나날에도.
커피의 온도가 곧 마음의 온도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데 최소한 내게는,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커피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따뜻하니까. 커피가 따뜻해야 마음이 움직이니까.
오래전, 그녀가 던졌던 그 말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다. 그녀는 내게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 앞에 따뜻한 커피를 선택했던 그녀의 마음. 이제는 나도 커피의 온도를 통해 마음의 온도를 전한다. 커피의 온도가 따뜻하다면 그것은 내 마음의 온도를 대변한다. 하지만 너무 차갑다면 그것은 당신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는 상영이 끝난 뒤 스크린 밖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현실을 보다 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 혹은 나를 성찰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힘. 그리고 따뜻한 커피에도 커피 밖의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 세상을 달리 보게 만든다. 물론 따뜻한 커피가 반드시 좋은 커피인 것은 아니지만 아이스커피가 줄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을 찾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몫이다.
다시 여름이 왔다. 나는 뜨겁게 불타오르는 태양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커피의 온도로 내 마음의 온도를 측정하고 있다. 사람의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온도가 있다. 언어, 행동, 표정, 몸 그리고 마음.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 여름의 온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문득 별이 떨어지던 그 여름밤처럼, 내게 또 하나의 별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