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박 Jul 29. 2020

퇴사 D-84 :  내 일만 있고 내일은 없다

17.

내 일(My Task)만 챙기는 사람으로 가득 찬 회사에는 내일(Tomorrow)이 없다.

경쟁적인 조직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바쁜 분위기 때문일까?

알게 모르게 이기적인 생각으로 빠지기 쉬운 것이 회사라는 곳이다.


바쁘다는 말을 살면서 한 번 이상은 다들 해봤을 것이다. (백만 번이라고 할 걸 그랬나?)

각자 처리해야 할 일이 있고, 일상이 아니라 오직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시간 사이에 발생하는 일만 해도 한 개인을 바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른다.

팀장님이 시킨 자료 조사, 김 과장님이 부탁한 엑셀 데이터 정리, 선배님이 같이 가자고 한 현장 설비 점검, 게다가 퇴근 후에 회식장소 물색이랑 공지까지.... 바쁜 일들은 뭉쳐서 눈덩이처럼 굴러온다. 


자, 과연 내 일만 하면 끝일까? 

그리고 '내 일'이란 무엇일까? 축구경기에서 혼자 잘 뛰어다닌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될 것인가? 

패스가 왔을 때 멋지게 공을 키핑 하고, 골문으로 돌진해서 100m 드리블 후 솔로 골을 작렬시키는 것만이 승리의 길인가? 내 일만 하느라 바빠 죽겠다고 외치는 사람은 '난 혼자 플레이해서 골을 넣고 승리할 것이다'라고만 생각하는 선수나 다름없다. 

내 일과 회사 일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회사 일을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제조업, 특히 철강업체였다. 설비가 크고 무거우며, 언제나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뜨겁고 거대한 제품이 굉음을 내며 왔다 갔다 하는 현장에서 직원들이 일하는 곳이다. 

즉, 언제나 안전사고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개중에는 심하게 다치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케이스도 물론 있다.

산업현장에서 작업원이 사망한다는 것은 CEO가 국회에 끌려가서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시킨다.


2015년경에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CEO가 여의도로 이동하는 동안, 급박하게 질의에 대응할 자료를 정리해야만 했다.


본사의 대정부(=국회) 관련 업무 담당 부서의 입장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현장, 그 현장의 관리팀 및 사고자의 소속팀,

현장의 안전관리부서, 해당 사업장 지역 언론 대응 홍보팀, 

본사의  CEO 보좌 조직, 전체 언론 홍보팀 등,

이 사고에 관련한 CEO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CEO에게 최종적으로 정리된 자료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게 된 장 차장님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자료를 안 줘, 부회장님 차는 계속 여의도에 가까워져만 가는데

공장에선 대외비라서, 결재를 아직 다 안 받아서, 공장장님이 허락 안 해줘서,

홍보팀은 알려지면 안 된다고 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안 주는 거야.

아니, 우리 회사 CEO가 곧 이 사고로 대정부 질의응답을 해야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쓸데없는 규정 지키고, 사일로 효과 이런 게 정말 멍청한 거야.

질의응답 까딱 잘못하면 조업정지(공장을 잠시 멈추는 것)  당하고,

매출액에 타격 입고 결국 우리 월급이나 보너스가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때 장 차장님께 처음 들었던 얘기가

"우리 회사에는 '내 일'만 있고 '회사 일'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였다.


84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자기 일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결국에는 회사라는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톱니바퀴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오롯이 독립적으로 '내 일'이란 것은 회사 내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런 것은 맛집 찾기나 비행기표 끊기 같은 개인적 일일 것이다.

혹시 다른 톱니바퀴가 바쁜 당신에게 협조나 자료 요청을 부탁해왔을 때, '아 바쁜데... 이 사람 일을 도와주는 시간 동안 내 일을 못하는데...'라고 생각이 든다면, 부디 그 생각을 고쳐먹기를 권한다.


내 일만 있고 회사 일은 없는 회사에는 내일이 없다.    


사내에서는 도움 요청이 왔을 때는 돕는 것이 정답이다.

아, 그러나 당신에게 일을 떠넘기는 '짬' 행위는 잘 구분해야 함을 잊지 말도록!


종박의 퇴사까지 앞으로

D-84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D-85 : 천하제일 바쁨대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