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사 이후 다른 선배들에 비해 짧은 5년을 근무했지만, 다섯 이상의 목숨이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운 좋게도 본사에서 일해온 직원이지만, 우리 회사는 제조업체이다.
현장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기계장치라는 것은 인류문명을 빠르게 발전으로 이끌어온 우리의 친구지만, 사실 그 웅장한 규모와 굉음, 그리고 엄청난 열기를 눈앞에서 목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처음에는 본능적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원료의 무게 단위도 수백만 톤, 이를 운송하고 분쇄하고 녹이는 모든 설비의 규모도 그에 상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운영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4차 산업혁명, 로봇, 5G 시대, 인공지능 모두 아직 먼 나라 이야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맨파워(Man Power)라는 것은 아직 대한민국 산업현장에서 중요한 자본이다.
이 위험한 기계장치와 사람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결국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차가 몇 대 다니지 않는 시골길에 사람 한 명이 길을 건넜을 때의 사고가 날 확률과,
왕복 8차선 강남대로에 1,000명의 사람이 횡단보도 없이 길을 건너려고 할 때의 사고 날 확률을 비교하면,
당연히 후자가 높다.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안전장치의 유무와 관계없이 이 공장이라는 곳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곳이다.
위험한 곳이라면 주변을 잘 살피고, 안전장구를 잘 착용하고, 관련 교육을 수능 공부하듯 열심히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는 회사다. 정해진 시간 내로 목표한 양을 맞춰서 생산해내면 칭찬이 아니라 욕을 먹는다. 더 빨리,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더 좋은 품질을 추구해야 한다. 분모는 점점 작게 만들라 하고 분자는 점점 키우려고만 한다. 퍼센티지(%)의 함정에 빠졌을 때, 엑셀 차트상에서 인간의 값어치는 '0'에 수렴하게 된다. 인명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표현이 안 된다고 해서 중요치 않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사람은 죽는다. 산업현장에서의 죽음은 결코 고운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노동자의 죽음 언제나 안타까우며 사회적인 관심과 애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인재(人災)이다. 90% 이상이, 아니 내 개인적으로는 99.9% 인재다. 인간의 실수와 부주의에 의해서 본인과 동료의 목숨을 이승에서 떠나게 만든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가 아닌 나의 동기, 선배, 후배들도 죽는다.
회식 이후 취한 몸을 이끌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서,
때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죽었다. 회사는 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친구가 왜 그랬는지 우리들은 모른다. 죽기 전날에도 카톡을 나눴었는데, 뉴스도 신문도 아무도 이런 사무직의 죽음은 비춰주지 않는다. 공장에서 죽었다면, 언론보도를 탈 자격이 있는 죽음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죽음에는 등급이 있다.
세간에서 알고 있는, 사회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회사에서의 죽음에서
사실 일반인인 우리들과 같은 사람들의 죽음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래서 난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에 가더라도 악착같이 살아남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75일 뒤 나는 퇴사할 것이다.
나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개념도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한 일을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떠넘겨서 산업현장의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은 없어져야 할 관행이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위험의 외주화의 해결책은 '위험의 직영화(?)"인가? 하청업체 대신 직영업체나 우리 회사 직원들을 밀어 넣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것이야 말로 목숨에 등급을 매기는 행위이다.
나는 작년 초 즈음에 '안전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다. (자진하지는 않았다)
거기서 위험의 외주화는 엄청난 이슈였으며, 여러 방향으로 공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명을 지키는 데에 대한 해결책으로 '직영 직원을 시키면 되지'라고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한번 후비적하고 파냈다. 그리고 정치인, 교수, 법관 같은 각계 높으신 분들을 모아서 '자문단'을만들자고, 그것을 보도하고 홍보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다.
이들에게는 필요한 죽음과 유용한 죽음이 있으며, 인간의 목숨은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은 아니구나....
대한민국은 제조업이 경제에 큰 역할을 하는 국가이다.
오늘도 공장의 톱니바퀴는 돌아가며, 그 틈새에 사람 하나의 팔다리가 끼일 공간쯤은 넉넉하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