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유산
희미한 두 줄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젊은 나이는 아니라.. 어차피 애를 가질 거라면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갖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첫 시도는 실패했지만, 다음 생리를 앞두고 찾아온 감기몸살과 태몽은 임신을 직감하게 했다. 며칠 뒤, 희미하게 나타난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은 우리에게 부모가 된다는 낯선 기쁨을 안겨주었다.
날 울린 '핑크색 의자'
임신 초기는 예상보다 힘들었다. 극심한 무기력감과 피로로 하루 10시간 이상 잠들어있었고, "내가 신생아가 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커질 준비를 하는 자궁 때문에 드는 아랫배의 통증도 불편했다. 임신 단축 근무 덕분에 일찍 퇴근했지만,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은 항상 다른 사람들 차지였다.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어느 날, 배려석에 앉아 실눈을 떠가며 임산부 배지를 달고 서있는 내 눈치를 보는 사람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에게 하소연했으나 돌아오는 장난스러운 대답에 감정이 복받쳐 올라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오열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감정이 진정되지 않아 강아지를 안고 한참을 울다 잠들었다.
선명해지는 불안감
임신 4주가 되기도 전에 몸살 증상으로 임신을 알아챘다. 임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였기에 임신 관련 어플을 모두 다운로드하여 살펴보았다. 앱에 접속하면 내가 속한 초기 주수의 게시판이 처음으로 보이는데 잊을만하면 유산 관련된 글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5주 차에 처음 질식 초음파를 진행했다. 아기집과 난황이 확인되었지만, 난황이 비정상적으로 컸고 자궁 내 피고임이 발견되어 일명 '눕눕생활'을 권고받았다.
*눕눕생활: 일상 대부분을 자궁이 가장 편안한 자세인 누운 채로 보내는 것
임신 초기, 아기의 심장 박동이 앞으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다. 심장 발달 여부 확인이 가능한 파이널 임신 테스트기를 대량 구매했고, 2일 간격으로 과도하게 확인했다. 테스트기 속 흐릿한 선과는 반대로 불안감은 점점 선명해졌다. 병원에 갈 때마다 주수는 계속 밀렸고, 정정된 주수로 6-7주가 되어서야 겨우 배아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상 커트라인(120bpm)에 한참 못 미치는 70bpm이었다.
이제 분만 병원으로 옮기라는 권유에 비 오는 날 홀로 병원을 찾았다. 배아는 약간 더 자랐지만 난황은 여전히 컸고, 심장이 더 발달하지 못한 듯 박동도 70bpm에 불과했다. 의사는 이 주수에 100bpm을 넘기지 못하면 유산의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며 주수를 다시 6주로 정정했다. 차로 돌아와 운전석에 앉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곁에 없는 남편과 유산 이야기를 꺼낸 의사가 원망스러웠다.
*난황은 배아의 도시락 같은 것. 난황의 크기가 줄지 않은 것=배아의 영양 섭취가 원활하지 않음을 뜻함
인간의 무력함
틈이 날 때마다 검색을 했다. 배아와 난황 크기, 심장 박동수 등을 검색하며 수많은 유산 관련 글 속에서 '결국 잘 성장해 순산했어요'라는 희망적인 글을 찾아 헤맸다. 당연하게도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진료일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성인이 된 후로 처음으로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대부분의 문제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임신과 생명은 다른 영역이었다. 인간은 참 무력하구나 싶었다.
누군가에겐 잔인한 장소
일주일 뒤,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진료 잘 보고, 아무 일 없이 출근하고 싶다"
"건강하게 잘 자랐다고 얘기해 주실 거야"
"맞아"
남편의 말에 수긍했지만, 나는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 며칠 최악의 컨디션에도 잠이 줄은 것이 느낌이 좋지 않았다.
초음파 기계가 몸에 들어오고, 화면이 뜨자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동그랬던 아기집은 찌그러져있고 배아의 크기도 전혀 자라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배씩 자라야 한다는데 오히려 움츠러든 듯 더 작게 느껴졌다. 육안으로 확인 가능했던 심장의 깜빡임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유산된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말을 꺼내기까지 짧고도 긴 시간이 걸렸다.
배 부른 채 초음파 사진을 보며 웃는 임산부들과 가족들,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득했던 이 공간은 단 몇 분 만에 너무도 잔인한 장소가 되었다. 추가 진료를 대기하는 시간 동안 남편에게 안겨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마치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처럼 느껴졌고, 울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00%가 되어버린 10%
다행히 자연 배출을 유도하는 약을 통해 수술 없이 유산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임신 초기 유산은 10~15%, 즉 7명 중 1명 꼴로 경험하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내게 일어나는 순간 10%는 100%가 되어버린다. 인간의 무력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큰 다툼이나 어려움 없이 잔잔하게 흘러오던 우리 부부의 삶에 찾아온 첫 번째 깊은 난관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최대한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의 곁을 지켰고, 그 자체로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의 환희보다, 이 슬픔을 함께 감내하며 비로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체감했다. 이 시련이 우리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틀림없이 다시 찾아올 아이를 위해 우리는 재정비를 해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