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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08. 2021

백일떡을 선물 받았습니다.

베란다에서 한참 제라늄의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데 열려있는 현관문의 방충망 너머로 인기척이 들리더라고요. 고개를 들어보니 이웃의 새댁과 꼬마 아이가  있었습니다. 새댁이 메고 있는 아기띠에는 백일이 지난 갓난쟁이가 안겨 쌕쌕 자고 있고 다섯 살의 늠름한 오빠가 손에 예쁜  접시를 들고 었습니다.


어찌나 반갑던지요. 제가 이제 누가 있겠습니까? 흡사 친족이 도륙당한 역적 집안에서 홀로 살아남은 계집아이 마냥 혈혈단신이 되어보니 가뿐하기도 하지만 사람만 보면 어찌나 반갑고 좋은지 버선발로 달려 나가 반기게 되더라고요.


저는 206호에 사는데 205호가 3월에 딸아이를 낳았고 208호 새댁이 작년에 일란성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저도 저의 변화가 안 믿기지만 우리 집 딸아이가 우는 소리도 참아내기가 힘들던 철딱서니 없던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 엄마였는데 마흔 중반을 넘고부터는 애기들만 보면 미치게 예쁜 거예요.

애들 소리만 응애응애 들려도 반가워서 괜히 문 열고 나가서 멀찍이서 아는 체를 합니다. 하하


아줌마가 너무 주책이랄까 봐서 주문받은 음식 만들다가 넉넉히 만들어지는 날엔 좀 나눠먹고 싶어도 5번 주고 싶은 거 한 번씩만 여러 번 망설이다 건네주곤 했었거든요. 엊그제는 토마토씨를 발아시킨 새싹이 다섯 개나 모종으로 자라났는데 이걸 205호 옆집의 5살 아이에게 너무 주고 싶은 거예요.


이걸 갖다 주고 키우라고 하면 귀찮다고 하려나 싶어서 거짓말 안 하고 열 번 정도는 모종을 들고나갔다가 다시 들어오길 반복했던 거 같아요. 아이가 재밌어할 거 같았거든요. 베란다에서 모종이 쑥쑥 크는 거 보면서 유기질 비료도 주는 법도 가르쳐주고 곁가지 치는 것도 알려주고 싶고 그랬는데 이게 요즘 사람들 말로 tmi 주책일 거 같더라고요.


참다가 주말에 옆집 현관문이 빼꼼히 열려있길래 모종 세 개를 조심스레 갖다 주고는 귀찮으면 안 키우고 버려도 된다고 하고 돌아왔는데 그다음 날 문자가 왔습니다. 5살 아들이랑 재밌게 심었다면서 사진을 보내주는데 정말 기뻤어요.


그리고 혼자 좋아하고 말았는데 오늘 옆집에서 백일떡을 나눠준 거예요. 요즘 누가 백일떡 나눠먹으려고 하지도 않는데 어찌나 예쁘게도 만들었는지 먹기가 아까워서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이맘때는 콩잎이 나올 때라서 콩잎 물김치를 늘 담는데 그걸 담으면 답례로 좀 나눠줘야겠습니다. 콩잎 물김치는 남동생이 좋아했었습니다. 6년 전에 욕쟁이 블로거 선생님에게 콩잎 물김치를 배워와서는 남동생이 놀러 왔길래 싸줬더니만 여름만 되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누나, 그거 있잖아? 작년에 담아준 물김치, 그거 뭐더라? 그거 또 없어?”


그 소리 들으면 몸이 귀찮아도 담아서 건네주곤 했었는데 이젠 그럴 동생들이 없으니까요. 쭈그러든 빈 젓에 정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말라버린 줄 알았는데 복도에 찾아든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다시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뭐라도 건네주고 싶어 집니다.


혼자 하고 말아도 주는 기쁨으로 생각하고 행복 해할 텐데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 귀찮아하지 않고 백일떡도 나눠주고 시골 시댁에서 보냈다면서 쑥떡도 나눠주고 그러네요.

비어버린 가슴에 이웃의 소소한 정이 충전된 오후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하네요. 이 작은 접시의 떡이 말입니다.


저녁에 남편과 딸이 귀가하면 떡 남겨놨다가 주면서 자랑해야겠습니다.


“옆집에서 나 먹으라고 백일떡 갖다줬다~~”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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