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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Jun 07. 2021

너무 큰 화분에 분갈이를 해주면 생기는 일

토요일 낮에 성북동 단골 화원에 들렸습니다. 수박 페페가 새로 입고되었는데 싱그러운 잎이 어찌나 귀여운지 한참을 봐주다가 집으로 데려오려고 맘을 먹고 분갈이를 부탁했습니다.


작은 포트에서 예쁜 화분으로 분갈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문득 제가 직접 작년 가을에 분갈이를 해줬던 몬스테라에 대해 여쭤보고 싶어 졌습니다. 왜 분갈이를 한 후에 잘 자라던 몬스테라가 크질 않는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혹시 너무 큰 화분에 옮겨 심은 건 아닌가요? 몬스테라 같은 경우엔 일단 작은 화분에 해줬다가 얘가 더 성장을 하면 큰 화분에 옮겨야 하는데 많은 고객님들이 실수를 하시는 게 그 부분이거든요. 분갈이를 두 번 해주기 싫어서 한 번 할 때 큰 화분에 심어주는 거예요”


아차 싶었습니다. 사장님 말씀이 맞았거든요. 두 번 분갈이해주기 싫어서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몬스테라를 큰 화분에 식재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줘야 하냐고 물으니 사장님의 답변이 명답이었습니다.


“별 수 없어요. 지금 또 분갈이를 하게 되면 식물이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 화분에서 적응해주길 기다릴 수 밖엔 없습니다. 식물은 물을 너무 많이 줘도 안되는데 마른 흙에서 뿌리가 움직이며 자랄 수가 있거든요. 아마 다른 식물들 같으면 벌써 뿌리 과습으로 죽었을 텐데 몬스테라라서 버티고 있는 겁니다. 물 많이 주지 마시고 지켜보세요”


사장님 말씀 듣고 나니 집에 있는 몬스테라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꼭 우리 둘째같이 여겨지던 우리 집의 첫 식물이라 제가 애지중지 하는 녀석인데 자식 키우듯 키우다 보니 저의 양육의 문제가 고스란히 식물에게도 전이가 된 겁니다.


과한 기대를 받고 자란 우리 딸이 스무 살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거처럼 우리 집 둘째 몬스테라도 큰 화분에서 뿌리를 내려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나 봅니다.

성북동 화원에서 입양해온 두 번째 식물인 히메 몬스테라는 사장님이 직접 맞춤 크기의 화분을 골라 식재해주셔서인지 내가 크지 말라고 해도 천정에 닿을 듯 키가 솟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크지 않는 첫째 몬스테라에게 애정이 더 가서 좋다는 식물영양제도 사주고 반음지가 좋다 하여 좋은 자리 골라주느라 애를 썼는데 그게 다 몬스테라에게는 과한 애정이었고 넘치는 화분의 크기였던 겁니다.


어쩌는 수 없다는 사장님의 말씀에 집에서 성장을 멈춘 몬스테라가 너무 안쓰러워 얼굴을 찡그렸더니 안심하라시며 또 알려주시더라고요.


“너무 걱정 마세요. 잘 적응해주고 성장해줄 겁니다. 이제 물도 죽지 않을 만큼만 주시고 너무 손대지 마시고 가만히 놔주시면 되실 거예요”


어쩌겠습니까. 지혜가 부족한 엄마라서 벌어진 일인걸요. 비싸고 큰 화분에 식재해주면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새로 들여온 수박 페페를 몬스테라 옆에 놔주며 애잔하게 쳐다봐지더라고요.

갑자기 큰 화분에 심어져서 뿌리가 너무 놀라 허둥대던 녀석이 살기 위해 마음을 닫고 움츠리고 있다니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성장하길 기다려줘야겠습니다. 더 좋다는 영양제도 물도 쏟아붓지 않고 마른 흙에서 조심조심 잔뿌리를 내려갈 몬스테라와 딸아이를 응원하려고 합니다.



자식을 키우는 건지 식물을 키우는 건지 가끔 헷갈리지만 식물을 자식 키우듯 하다 보니 딸아이에게 부족한 엄마였었다는 자각이 매일 깨달아집니다. 엄마 귀찮게 하지 말고 분갈이 두 번 할 생각 말고 기숙학원에서 공부나 잘 하려며 다 자라지도 않은 아이를 쑥 집어넣었을 때 얼마나 놀랬을까 싶습니다.

놀란 딸이 마음이 아프다고 해도 못 들은척 그 곳에서 공부 잘 해서 대학 꼭 붙어야 한다고 영양제나 매주 사보내던 엄마가 얼마나 미웠을까 싶습니다. 기숙학원을 백일을 가까스로 채운 딸이 퇴소한다고 했을때 절대 안된다며 화를 냈던 엄마는 딸이 죽고싶다고 했을때에야 정신이 제대로 차려지더군요.


세상에서 엄마랑 아빠를 제일 좋아한다는 착한딸을 옆에 데려다놓고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얼굴 마주보며 같이 밥 먹을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비싼 수업료를 내야하는 학원도 아니고 영양제를 매일 챙겨주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재수학원에서 잔뿌리를 내려가며 성장하려 애쓰는 딸을 마음속으로 매일 응원합니다.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미래가 얼마나 불안할지 그 마음 짐작도 하지 않은채 공부만 하라며 물을 꿀꺽꿀꺽 먹여줬습니다.


잘 크지 않는 몬스테라를 걱정하다가 딸의 마음이 새삼 또 알아진 오후였습니다. 안쓰러운 내새끼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고 속마음으로만 중얼거렸습니다.

미안 미안, 큰 화분에 쑥 집어넣어서 미안. 얼마나 아팠을지 몰라줘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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