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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Oct 18. 2021

가을저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팥칼국수

팥칼국수는 전라도 음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라도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 올라와서야 다른 지역 사람들은 콩국수에 설탕을 넣어먹지 않는구나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가 살던 김제에선 콩국수에 소금 약간, (단맛을 더 강화시키려고) 설탕 많이의 조합으로 먹곤 했거든요. 여름엔 콩국수의 단맛이 있었다면 날이 추워지면 5일장엔 팥칼국수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장에 가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었는데 저는 어렸을 때는 팥칼국수를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아마도  지역 사람들이 느끼는 콩국수에 설탕을 넣는 이질감 같은 거였나 봅니다. 팥물엔 동글동글하고 질퍽한 찹쌀 옹심이가 들어가 있어야 진짜 팥죽이라 여겼거든요. 팥물에 칼국수 면이 들어가는게 이상한 맛의 조합일거라 생각해서  먹지 않으려 했습니다.


무척이나 가벼웠던 할머니의 개아침(호주머니)에는 손주 새끼들 입에 넣어줄 고등어 한 손과 김 한 톳 사고 자신이 신을 겨울 털신 하나 장만하고 나면 한 그릇 3천 원도 안 했던 팥칼국수 사 드실 돈도 남아있지 않기가 다반사였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그 기억이 오래 남아있는 저와 셋째 여동생은 할머니를 모시고 김제 5일장에 갈 때마다 팥칼국수를 사드리고 오곤 했었습니다.


여동생과 가끔 카톡을 하면 여동생이 자랑스럽게 저에게 그런 소식을 전하곤 했습니다.


“ 언니야, 오늘 할머니랑 장에 갔다가 장 봐드리고 팥칼국수 사드리고 왔다! 엄청 잘 드셔!”


그게 그렇게도 서로에겐 큰 효도라도 한 듯 자랑이었던 거 같습니다.


젊어서는 아니 작년까지도 팥칼국수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는데 올 가을 들어 유난히 팥칼국수에 집착합니다. 산에 다녀와 스산해진 가슴골 밑에 또 팥칼국수의 더운 김을 넣어주고 싶었습니다.


일부러 버스까지 타고 가야 하는 다른 동네 시장까지 가서 단골 칼국수 집에서 팥칼국수를 포장해 왔습니다. 이 곳에서 파는 팥물이 전라도 고향의 맛과 제일 비슷하거든요.


생면으로 사 온 면에 묻은 밀가루를 미련 털어내듯이 툭툭 털어내고 뜨거운 물에 삶아놓고 팥물을 끓입니다. 팥물은 금세 타기 때문에 저어주며 끓여야 합니다. 국물이 다 끓으면 걸쭉한 방울이 퉁퉁 솟아올라 손등을 칠 수도 있습니다. 이게 꽤 뜨거우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뜨거워진 국물에 삶아놓은 면을 넣고 한소끔 끓입니다. 다 끓여진 팥칼국수를 면 그릇에 담아 신성한 제라도 지내듯 식탁 위에 놓아두고 기도 한 줄 했습니다.


‘ 건강하게 잘 지내시지요?’


전해지지 않는 안부 한 줄 전하고 팥칼국수에 설탕을 두 숟갈 그득 덜어 넣고 후루룩 먹기 시작합니다. 역시 팥칼국수엔 설탕이 듬뿍 들어가야 제맛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헛헛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가 않습니다. 다 먹고도 배가 고픈 게 정에 주려 배가 고픈지 육신의 배가 고픈지 잘 모르겠습니다.


팥칼국수는 아주 맛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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