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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Oct 26. 2021

새벽의 드라마 이야기, 오늘의 시시콜콜

어느덧 새벽에 이렇게 깨어 있게 된 게 벌써 한 달이 넘어갑니다. 지난주엔 작은 소동이 있었습니다. 가슴팍에 둥근 띄 형태의 피부 발진이 생겼었는데 제가 그걸 대상포진이라 셀프 확진을 하고 병원엘 가서 당당하게 대상포진이라 우긴 겁니다.


이미 새벽에 네이버 박사님을 소환해서 병증의 초기증세와 저의 현 상태를 꿰어 맞춘 후라 대상포진이란 굳은 확증은 의사 선생님에게도 전달이 되었는데 상당히 난감한 표정으로 그러셨습니다.


"음.... 아... 대상포진이라 하기엔 좀... 많이 애매해서요. 우선 약은 대상포진 약으로 드리지만 반드시 피부과도 내원을 하셔서 재검진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모르니 피검사도 해서 확실히 대상포진 여부를 확인해봤으면 합니다."


검진실을 나오면서 근무시간에 사무실에서 빠져나온 남편에게 투덜투덜거렸습니다. 아! 남편은 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전산직원이라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종합병원엘 갔던 거였거든요. 임직원의 직계가족이라 대상포진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을 하기가 애매했을 의사 선생님의 난감함은 뒤로 한 채로 투털 거림을 멈추지 않았었습니다.


"아니! 대상포진이 맞는데...? 피부가 막 아픈데? 몸살도 난 거 같고?? 선생님 실력 없는 거 아냐?"


3일 대상 포진 약을 먹고도 피부 발진이 더 심해져서 피부과를 방문해야 했고 피부과 선생님은 이러셨죠.


"누가 대상포진이래요? 단순한 접촉성 피부발진입니다. 연고 잘 바르시고 약 일주일치드릴게요"


너무 간절히 대상포진이길 바랬던가 봅니다. 그러면 삼일이라도 아니 단 하루라도 새벽밥 수행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아니 그 보단 수능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상황도 남편이 300백만 원을 더 대출했다는 경제적인 압박도 잠시 잊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지난주의 대상포진 병자 행세가 실패로 돌아간 뒤로 낮엔 틈틈이 자고 새벽엔 혹시라도 잠이 들어 새벽밥 수행을 하지 못할까 어제도 오늘도 깨어있답니다. 새벽 3시의 고비의 시간에 즐기려고 아껴둔 비장의 카드가 있는데 오늘은 그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어서 시시콜콜 또 이야기를 풀러 들어왔습니다.


제가 일본어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아니 일본어를 배우고 있고 듣고 있고 하고 있으면 마음에 뭉개 뭉개 사랑의 감정이 샘솟습니다. 오래전부터 고교 시절부터 그러긴 했었는데 이 좋아한다는 감정을 한동안 잊고 있다가 4년 전 우연한 기회에 문화센터에서 일본어를 배우게 되기 시작하면서 불이 붙었습니다.

아주 많이 열심히 했다기보단 아주 많이 즐기면서 배웠던 거 같습니다. 몇 개월 배운 기초 일본어를 믿고 일본 자유여행을 가족들을 끌고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남편과 딸이 저의 서툰 일본어를 대단하다 여겨주며 칭찬해준 것도 일본어에 대한 애정을 더 돈독하게 해 준 계기가 되긴 했습니다.


제가 일본어로 길을 묻고 있거나 일본인들과 서툰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남편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왔었거든요.


그런 사랑하는 일본어를 더 재밌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드라마가 최고였는데 한동안 정말 일드에 미쳐서 살았던 적이 몇 년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서부터 내가 일본어를 좋아했었지? 내가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지? 하는 저의 소소한 애정 하는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버린 이후로 한동안 또 일본어를 잊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새벽을 이렇게 지새우려다 보니 다시 뭔가가 필요해서 드라마를 찾다가 길이도 훌륭하고 재질도 좋고 실용성도 최고인 내 몸에 딱 맞춤의 폴라티를 찾아낸 거처럼 너무 사랑스러운 드라마를 발견하고 매주 업데이트되는 날만 기다립니다.

화, 수요일에 업데이트가 되는데 그날의 새벽엔 3시의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제목은 <오오마 메다 토와코와 세 명의 전남편> 이란 제목인데 제목만 봐서는 아니 이게 무슨... 안드로메다 막장의 스토리일까 싶으시죠?


그런데 절대 네버 결단코 막장의 스토리가 아닙니다. 제목에서 풍기는 세 번의 결혼과 이혼에서 느껴지는 신산스러움은 드라마 첫 장면부터 저 멀리 우주로 날아가고 뭐랄까 아주 산뜻함이 느껴져서 어머 이게 뭐야! 싶거든요.


제가 작년 10월부터 습작했던 저의 드라마 한 편이 있습니다. 이혼당한 별 볼 일 없는 여자의 이름은 남윤자인데 아주 세상 시끄럽게 이혼을 하게 되거든요. 남편이 지방 소도시 시의원인데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여자 시의원과 바람이 나서 뉴스에서 공개구혼을 하고는 본처 남윤자를 뻥 차 버립니다. 그리고 홀로 남은 이 여자의 홀로서기를 그렸던 습작이었는데 내심 끝까지 이걸로 공모전도 내보려고 고쳐보고자 했으나...


손을 놔버렸던 미완의 작품입니다. 작년 전문반 선생님과 동기들에게 들었던 합평론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상큼함이 많이 떨어지니 스토리에 상큼함을 많이 넣어서 재밌게 만들어보라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 여자의 진부한 이혼 스토리를 산뜻하게 만들지를 고민하다가 아이의 재수생활이 시작되었고 저는 아예 드라마 대본엔 손도 안 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드라마 대본이 웬 말이야? 는 표면의 핑계이고 속의 진정한 핑계는 나는 도대체 그 상큼함이 뭔지를 모르겠다... 였습니다.


그런데 그 상큼함을 오오마 메다 토와코와 세 번의 결혼과 이혼 후의 지금의 이야기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습니다. 세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을 한 여자라면 굉장히 찌질하고 결함이 많고 위축될 거 같은데 절대 그런 캐릭터가 아닙니다.

세 명의 남편들은 아직도 이혼한 토와코 주위에서 맴돌며 그녀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랑꾼들이고 그들의 사랑꾼 면모가 결코 과장되지도 않고 심지어 현실성이 떨어지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이 여자에게 또 한 명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짜잔.... 아니 이게 말이 돼? 하면서도 봐집니다. 드라마는 그런 건가 봅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 싶으면서도 현실에선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상큼한 레몬을 가득 입에 문 새로운 남자가 토와코에게  네 번째 남편이 되겠다고 프러포즈를 하죠.

드라마를 그리려면 이렇게 그려야 하는 거야... 싶었습니다. 이 드라마를 한 회 한 회 보면서 일본어에 대한 사랑도 다시 새록새록 불타오르고 너무 잊어버리고 싶었던 저의 미완의 드라마의 여주인공도 계속 생각이 납니다.


오늘은 드라마에 너무 폭 빠졌던 터라 새벽에 반찬이 좀 부실합니다. 일드를 본 영향으로 일식 계란말이가 먹고 싶어져서 가쓰오부시 육수 좀 넣고 참치액젓으로 맛을 낸 폭신한 계란말이를 했고 일본 캐릭터 도시락에 많이 쓰일법한 뽀로로 캐릭터가 그려진 비엔나 소시지를 문어발 모양으로 잘라서 구워서 넣었습니다.

좀 있으면 마켓 컬리에 주문한 유부초밥이 도착할 텐데 그게 도착하면 유부초밥도 싸서 넣어주려고 합니다.


오늘의 새벽밥 수행이 또 이렇게 드라마 한 편으로 행복하게 지켜질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 드라마는 웨이브에서 감상하실 수가 있고 드라마 여주인공은 일본어판 겨울왕국의 ost를 불러서 더 유명해진 마츠 다카코가 연기를 했습니다.

첫 번째 남편으로 나오는 류헤이도 제가 너무 사랑하는 남자 배우거든요. 여기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다 사랑스럽습니다. 만화에서 톡 튀어나온 듯 사랑스럽지만 전혀 현실성 없는 캐릭터들이 아니랍니다.


20대의 사랑이 주를 이루는 사랑 드라마의 공식을 깨고 4,50대의 중년들이 만들어내는 낡은  사랑이야기와 인생 이야기가 이렇게도 상큼할 수가 있구나 싶어서 매회 볼 때다 행복합니다.


웨이브를 이용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서 책도 한 권 구입하게 되었네요. 매일  식구들 먹일 밥만 고민하는 게 요즘엔 너무 행복하지가 않았었는데 드라마 덕분에 이 새벽을 버틸 힘이 또 생깁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절에서 수행하는 수도승처럼 새벽에 잠 못 자고 새벽밥 하느라 부엌 의자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는 일도 못할 겁니다. 아이가 더 커서 성장해서 엄마품을 떠나면 지금 이 새벽시간이 무척이나 그리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생각하며 이 새벽에 깨어 드라마 보며 수능날까지 힘을 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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