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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Nov 18. 2020

오늘은 노는 날입니다.

노는 걸 잘 못합니다. 아니 그 좋은걸 왜 못하냐? 너 바보 아님?이라는 댓글이 달릴 수도 있겠네요. 하하하

그런데 정말 아직도 버릇을 들이는 중이긴 하지만 가만히 몸을 침대나 소파에 부려놓고 쉬다 보면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와서 뭐라도 합니다. 멀쩡한 베란다를 정리하고 유리창을 닦고 그릇들을 꺼내서 다시 올려놓는다던지 뭐 그런 일들을 부산하게 하는 거죠.


일이 없으면 주문이 안 들어오면 그것도 하루만 안 들어와도 어항 밖으로 강제 탈출된 금붕어처럼 숨을 꼴깍꼴깍 쉬곤 했습니다. 심리상담 과정에서도 이건 여러 번 고치려 했던 부분인데 너무 오래 몸에 길들여진 버릇이라 잘 안 고쳐집니다.


여상을 나왔습니다. 열아홉 여름에 일찍 취업이 되어서 서울로 등짐 하나 멘 채로 상경을 했습니다. 첫째 작은 아빠가 사는 신촌의 달동네 단칸방에 더부살이를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노숙을 면할 수가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술을 드시는 작은 아빠는 크고 작은 일들을 수시로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작은엄마는 오죽이나 사는 게 퍽퍽하고 힘들었을지 설명 안 해도 되겠지요? 당연히 그 모든 눈치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습니다. 다 큰 시댁 조카를 아무리 예쁜 맘으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있었겠나 싶습니다.

그 작은 집을 눈치껏 쓸고 닦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끼니때는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얼른 바깥으로 나가기 일쑤 거나 제 방에 틀어박혀 나가질 않았습니다.


7년의 더부살이를 끝내고 그 집에서 나올 때가 저의 독립일입니다. 광복절보다 더 기쁜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집에서 직장도 다니고 대학교도 졸업했고 재취업에도 성공했었네요. 뒤늦게 대학을 들어가니 시골에 계시던 아빠는 당장이라도 곡괭이를 들고 쫒아올 기세로 방방 뛰며 전화기가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었습니다.

적당히 돈 벌어 시집이나 가고 동생들 뒷바라지나 할 것이지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려고 직장 3년 동안 벌어둔 돈이 천이백만 원이었는데 모으기는 힘들었는데 쓰는 게 너무 빨랐습니다. 아무리 아껴 써도 어찌나 감질나게 돈이 빠져나가던지 순식간이더군요.


손 벌릴 데 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 손을 벌릴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내 입에 넣을 음식을 만들어내고 내가 쓸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학교에 가야 하니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할 수 있는 새벽 알바를 구했습니다. 삼성의료원 지하 1층에 신라호텔에서 운영하는 한식당. 양식당이 있었는데 그곳에 알바 자리를 구해서 일 년 넘게 새벽 출근을 했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 새벽 페이가 꽤 괜찮았습니다. 알바가 끝나면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또 알바를 하러 갔습니다.

하루에 자는 시간이 네 시간이 될지 말지 했습니다. 그 시간도 시험기간엔 모조리 반납을 하고 시험에 매달렸습니다. 덕분에 장학금도 탈 수가 있었어요.

독한 시절이었습니다. 매일을 더 독해져야 굶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작은집에서 주는 밥은 먹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벌어서 내가 사 먹었습니다.


그리고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는데 젊어 생긴 버릇이 오래가더라고요. 결혼을 하고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에 의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늘 같이 벌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둘째를 유산하고서야 경주마처럼 달리던 속도에 브레이크를 걸 수가 있었습니다.

한 2년 쉬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늘 불안감에 시달렸던 거 같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하고 말이죠.


그걸 치료해야 한다는 생각은 한참 후에나 들었던 생각입니다. 대학 졸업반일 때 취업을 앞둔 두 달이 극심한 배고픔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통장에 돈 2만 원이 가진돈의 전부여서 당장 취업이 급했는데 하루에 열 군데가 넘게 이력서를 넣고 다녀도 취업이 어려웠어요.

그때가 하필이면 IMF 였습니다. 다행히도 천만 다행히도 돈 2만 원이 떨어지고 전철 패스 정액권의 잔액도 없어졌을 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첫 달 월급으로 밀린 핸드폰 요금을 내고 먹고 싶은걸 실컷 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지금은 따뜻하고 예쁜 집에서 당장 굶을 걱정 없이 사는 마흔 중반이 된 나이에도 그 오래된 강박이 가끔 저를 뒤집어놓곤 합니다. 이제는 그런 감정을 자각하는 걸로 자꾸 떨쳐내려고 노력합니다.


‘음, 또 불안하군? 지금 살 집 있지? 입을 옷 있고? 남편 직장 든든하고? 그렇지? ‘


저의 있는 상황을 자꾸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요즘엔 그래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오늘같이 비 오는 날 노는 게 신이 나기도 하니 말입니다.


오늘은 우체국 택배를 보내고 들어와서 바로 잠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파자마를 편히 입고 베란다에 접이식 탁자를 펴놓고 아이패드와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놓고 글을 씁니다.

음악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ost를 골랐습니다. 베란다 밖의 풍경은 이제 가을을 놓아주라고 말하는듯합니다. 오늘내일 비가 세차게 내리고 나면 가을 낙엽 한 장도 보기가 힘들 거 같습니다.


오늘은... 아주 편히 종일 농땡이를 하며 놀아야겠습니다. 따끈한 이불속에서 찐빵처럼 폭신하게 퍼져있기도 해 보렵니다. 실컷 낮잠도 자려고 합니다.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볼 겁니다.


오늘은 노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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