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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Nov 13. 2020

영악해져야 하는가...?

요즈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집안 곳곳에 놓인 식물들에게 눈 맞춤을 해주는 일이다. 아침마다 달라져 있다. 새싹을 돋워 온전한 잎으로 며칠 새 만들어낸 히메 몬스테라의 잎을 한참을 보다가 겨울 잎을 떨구고 겨울잠을 준비하는 블루베리 나무를 한참을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거실 중앙에 놓인 식물들에게 눈을 맞춰 한참이나 보며 식물 멍을 하다 보면 내 몸에 어느새 초록의 기운이 수혈되어 온 몸이 싱그러워지는 기분이 채워지곤 한다.


내가 요즘 살아가는 낙이다. 이 낙으로 마음이 고요해지고 잠잠해질 수 있었던 거 같다. 딸의 수능시험일은 이제 이십여 일이 남아있다.

엊그제는 수능시험에 전력을 쏟고 있는 딸이 잘 때 쓰고 자라고 수면안대를 사들고 들어왔다. 밤에 잠을 못 자고 집안을 도둑고양이 발자국으로 움직이며 돌아다녀도 딸은 귀신같이 엄마의 서성이는 소리를 알아챘나 보았다.

새벽 세시까지도 잠이 쉬이 들지 않는 날이 계속되자 이제는 그냥 전략을 바꿨다. 잠이 안 오면 포기하고 새벽일을 평소보다 두어 시간 일찍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원래 다섯 시부터 해야 할 일을 두 시간 앞당겨 세시부터 하다 보면 몸이 금세 잘 지쳤다. 오전에 보내 놓을 음식을 다 해놓고도 잠을 못 자는 나를 위해 딸은 보온이 되는 일회용 안대를 고민했나 보았다.


“엄마, 잘 때 눈이 따뜻하면 잠이 잘 온대.”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밤새 잘 잤냐 묻는 딸에게 아주 잘 잤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나의 충혈된 눈을 보고는 금세 알아채곤 한마디를 보탰다.


“아휴, 왜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니는 거야...”


시험이 며칠 남지 않은 딸이 불면증에 고생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맘이 미안해서 아침을 거하게 차려주었다. 남편은 출근하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탠다.


“ 일 다 해놓고 좀 자 둬.”


차라리 밤에 잠이 오지 않으니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침 설거지를 해놓고 신문을 펴 놓고 앉았다가 또 식물에 눈을 빼앗겨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또 든다.

다 줘버리고 죽었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고 살면 좋겠다는... 차라리 그 편이 얼마나 나을 것인가 싶어 백번도 더 자동이체를 해주고 싶었다.

돈이 화근이 되고 근심거리가 되는 경험은 살면서 안 당하는 게 낫지 싶다. 셋째 여동생 지연이는 옷가게를 한다. 가게에 수시로 드나드는 고객들에게 이런저런 사연을 많이 듣나 보았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형제들이 싸우는 상황은 왕왕 일어나는 거라며 우리가 겪은 일이 비일비재한 평상적인 일처럼 들리게 위로를 해줬다.


“언니야, 장례식장에서 돈 5만 원이 그것이 내 거라고 난리가 난대.”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 장례식비를 정산하면서 부의금으로 들어온 5만 원이 네 거인지 내 거인지를 가려 계산을 하는 형제들의 난투극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돈을 모두 내어주고 그 들이 정말 나에게 연락을 안 하면 진심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곧이어 도리질을 하고 말게 된다.

잠깐 대전에 살았던 적이 있다. 남편의 근무지가 대전으로 옮겨졌을 때 아빠는 십만 원도 하지 않는 안경을 맞춰달라고 함양에서 대전으로 버스를 타고 올라오셨었다. 그 들에게 나는 진정으로 무엇이었을까...


돈을 다 내어주고 보험사와의 협의도 그들이 알아서 하게 동의서 써주고 심장에서 그들에게 내어줬던 지분을 잘 드는 칼로 도려내어 반쪽의 심장으로 살아도 좋겠다는 게 진짜 내 속마음이다.

하지만 그 돈을 다쓰 고도 병든 아빠를 내 집 문 앞에 버리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다.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을 시켜놓고 종적을 감춰버리면 그 뒷감당은 어쩔 것인가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하다.

4천만 원이 든 통장의 무게가 너무 더럽게 느껴지고 거추장스러운 암덩이 같아서 얼른 잘라내어버리고 싶지만 그 4천도 줘버리고 나 혼자 뒷감당을 할 일이 더 두려워서 보험금처럼 가지고 있다.


그런 도돌이표의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내지 못하고 있으니 불면의 밤이 이어지는 중인가 보다. 좀 더 일찍 영악해졌어야 하는가 싶기도 하다. 매몰차게 돌아서서 나 혼자 잘 살겠다고 그들을 모른척했으면 이런 배신감에 잠 못 드는 일이 생기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잡념을 억지로 누르고 눈을 식물에게서 거둬들여 신문 지면으로 옮겨보았다. 수천억의 자산이 있는 어떤 타이어를 취급하는 그룹의 형제들이 돈 가지고 분쟁이 일어났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 세상 이곳저곳에서 내가 몰랐던... 몰랐으면 좋았을 형제들간의 돈의 싸움이 오늘도 들불처럼 여기저기서 타오르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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