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궁금했을 뿐이었다.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 이길래, 어떤 연출이길래 상을 저렇게나 많이 탔다고 연신 난리일까 싶었다.
며칠전에 <소울>을 본 후이기도 했고 소울보다 심심한 독립영화겠지 싶었다.
코로나로 일년간 극장을 찾지 않았던 사이에 극장의 풍경은 정말 많이 달라져있었다. 팝콘은 튀겨지고 있었으나 극장내 반입이 안되는 이유로 팝콘이 팔릴리가 없었다. 아침에 극장안에 있는 커피전문점에서 브런치 세트를 사들고 들어가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며 뜨거운 커피를 홀짝거리던 그 재미진 버릇은 이제 다시는 경험할 일이 없을거같았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반입이 되는 커피 한잔만 들고 의자에 앉으니 오전 10시반의 조조영화에 그 큰 극장안에 든 인원이 겨우 열명 남짓이었다. 하마터면 나 혼자 영화를 볼 뻔했는데 저들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리다 영화가 시작이 되고 오프닝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마스크를 적시기 시작했다. 왜 울음이 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 음악부터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애잔하고 뭉클했다. 음악에도 대사가 있는듯 그랬다.
결혼 십년차의 이민생활을 힘겹게 해내고 있는 두 부부의 일상의 이야기가 뭐 그리 재밌을거라고 했는데 내 기대를 완전히 어긋났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다.
아빠의 직장에 따라간 아들 데이빗이 너무 심심해하자 아빠가 잠시 쉬는 시간이 생겼다고 아들을 데리고 공장 밖으로 나온 장면이었다. 굴뚝으로 나오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데이빗이 묻는다.
“아빠, 저건 뭐에요?”
“응, 저건 병아리들을 폐기하는 거야.”
“폐기? 그게 무슨 뜻이죠?”
“음... 그게 영어로 뭐더라? 좀 어려운 말이지? 숫 병아리들은 맛이 없거든. 그래서 폐기해야 해.”
처음 알았다. 감별을 마친 숫병아리들이 폐기 과정을 거치는걸.
저런 장면은 감독의 경험 없이는 건져내기가 힘든 에피소드지 싶으면서 정이삭감독님의 시나리오가 너무 부러워졌다. 작가는 모두 자신의 경험을 일정부분 시나리오에 또는 대본에 투영하기 마련이지만 영리한 작가는 그걸 드라마로 만들고 실력이 없는 작가는 그 귀한 경험을 싸구려 넋두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내 경험을 싼 값에 넘기는 경험없는 장사치처럼 무능력하다는 자각이 들면서 한없이 부러울수밖에.
한장면도 버릴게 없는 영화여서 영화의 감상을 멋지게 표현해주고 싶지만 생각나는 장면, 너무 좋았던 장면을 기록해 놓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다른 영화의 감상과는 다르게 이 영화는 오래 기억나는 사랑해주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다.
또 한컷의 에피소드.
손주들을 돌보러 미국 아칸소 시골까지 오게 된 한국의 할머니는 요리도 잘 못하고 아이들을 잘 돌볼줄도 몰랐다. 그 할머니는 아이들과 화투를 치고 삶은 밤을 자신의 입에서 오물거려 건네주고 육아보다는 미국티비에서 나오는 레슬링을 보는걸 더 즐겨한다.
그런 할머니가 어린 데이빗을 데리고 산책을 자주 나간다. 어느 날, 미나리를 키울 곳을 찾던 할머니와 데이빗이 그 곳에 미나리씨를 뿌리고 성장한 미나리들을 보며 즐거워하는데 미나리 밭 근처의 나뭇가지에 뱀이 나타난다.
그 뱀에게 돌팔매질을 하려는 데이빗을 할머니가 만류하며 이런 말을 해준다.
“데이빗, 안돼. 도망가게 하지마, 숨게 하지마라. 절대 그러면 안돼. 숨지 않고 나와있는 것들은 무섭지가 않단다. 오히려 숨어있는 것들이 더 무서운 법이야. 알았지?”
그 대사가 그렇게 마음에 오래 남을줄 몰랐다. 정이삭 감독에게도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해줬던거 같다. 그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던 손주가 할머니의 말을 기억해내고 스크린에 추억을 재현해 냈을지도 모를일이다.
그렇지... 숨어있는게 더 무서운 법이지... 그걸 알려준 할머니를 기억하며 세상을 살아갈 귀한 지혜 한줄이 어린 데이빗에게 남았을지도.
아이들에게 보란듯이 뭔가를 이뤄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젊은 아빠는 아칸소에 농장을 만들고 싶어하고 엄마는 그런 아빠가 가족을 진정으로 생각하지 않는거 같아서 갈등이 생긴다.
영화의 주요 갈등이지만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닐수도 있는데 그 작은 줄기를 잡고 한시간반의 러닝타임을 멋지게 끌어가는 영화다.
영화의 국적을 논하고 싶지도 않아진다. 이 영화는 국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그게 큰 복이다. 그런 감상을 가지게 되었다. 왜 그렇게 좋았는지를 정말 멋진 표현으로 미사여구로 꾸며주고 싶지만 일부러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불쑥 불쑥 영화의 한장면이 마음을 치고 간다.
마치 종을 울리듯 그렇게 마음을 치고 가면 종소리의 여운이 길게 내 마음에 울리기 시작하고 그 영화의 한장면이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이런 느낌은 또 처음이다.
영화의 장면 장면이 내 마음안에 이식이 된 듯한 이런 이상한 경험도 처음이다.
감독이 부럽다. 어떻게 그려야 넋두리가 되지 않고 재밌는 스토리가 될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꼭 해내고 싶어진다.
자려고 누웠는데 또 생각이 난다.
그래서....? 아칸소의 농장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뒷여운이 긴 영화다. 참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