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딸의 이른 아침을 챙겨 먹이고 도시락까지 싸서 보내는 요즘의 아침 일상은 평소보다 더 분주합니다. 고객에게 보낼 잡채면을 마무리해놓고 불이 난 거 같은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주고 있는데 카스토리에 몇 년 전 오늘의 추억이 장마 후 부유물처럼 떠올라줍니다.
2016년, 4월 30일의 추억.
할머니가 쑥개떡 반죽을 잔뜩이고 지고 올라와서 토요일 아침부터 (그날은 토요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유리와 거실에서 쑥개떡을 빚었습니다. 그 장면이 어찌나 소중하던지 그 순간에도 핸드폰 카메라를 얼른 들이댄 게 오늘 아침엔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겨지는지 모릅니다.
이 날은 어버이날을 앞두고 할머니와 아빠를 모시고 서울 북서울숲의 중식당에서 근사한 저녁을 대접해드리고 싶어서 오시라고 했던 날이었습니다. 막냇동생 정하는 광명시에 새로운 사진관을 차려놓고 형제들과 할머니와 아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죠.
늘 막내 생각이 끔찍한 할머니는 제가 예약해둔 식당엘 가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쑥개떡을 만들고 있던 할머니와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큰 막냇동생을 할머니는 늘 애달파하셨습니다. 그 녀석이 근사하게 차려놓았다는 사진관이 내가 가자고 예약해둔 중식당보다 훨씬 더 가고 싶어 안달이 나셨을 겁니다.
그런 아침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찍어두고 그날의 기억을 sns에 일기처럼 기록 해두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엔 이런 추억을 쓰다듬는 재미로 삽니다. 매일은 아니고 아주 가끔 나에게도 이런 할머니가 있었어, 이런 동생이 있었어하고 심장에 길게 난 흉터 자국을 마른 손으로 쓸어봅니다.
감상은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아침밥 대신 추억을 끼니 삼아 다리에 힘주고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저에게 음식을 주문한 고객님은 수유 중인 며느리가 안쓰러워 물김치와 잡채를 주문하신 멋진 시어머니입니다. 그분의 사연에 맞춰 음식을 만드는 손에 쑥개떡을 만들던 그 날의 할머니를 생각하는 맘이 더해질지도 모릅니다. 지난날의 추억 덕분에 배가 불러서 일이 잘될 거 같습니다.
저에게도 한때는 나를 위해 쑥을 캐고 쑥개떡을 만들어주던 할머니가 계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