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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이꽃 May 06. 2021

쪽파도 줄 세우는 사람인데

어제는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어린이는 아니고 나이 50을 바라보는 ‘어른이’ 둘이 휴일의 짬을 놓치기 아쉬워서 오이지를 담아놓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던 길이었습니다. 며칠의 변죽스런 봄비가 그치고 날이 어찌나 화창한지, 휴일다운 날씨여서 기분이 한껏 좋았습니다.

걷고 있는데 sns로 고객의 쪽지가 띨롱 알림음을 울리며 도착합니다. 흔한 일입니다. 전화상담은 거의 없고 카톡이나 문자나 카스토리의 댓글로 음식 주문 상담을 받아온 일이 십여 년이라 걸으면서도 고객님의 응대에 재빨리 답을 해드렸습니다.


‘물김치 종류, 가격 좀 알려주세요’


워낙 물김치 종류도 많은데 뭘 얘길 해드려야 하나 고민하다 요즘 잘 나가는 나박 물김치와 보리밥 열무 물김치의 가격을 적어 답장해드렸습니다.


‘밑반찬 두어 개도요’


물김치와 같이 밑반찬도 주문하시려나보다 싶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밑반찬이 수십 가지라 제가 만들어드리는 상품 리스트를 보내드리겠다고 핸드폰 번호를 안내받았습니다. 그 사이 산책길에 핀 꽃들의 풍경도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집어넣고 있는데 고객의 답신이 제 걸음을 순간 멈추게 했습니다.


‘전화요’


음... 이건 뭐지? 그러니까 전화를 달라는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순간 마음이 살짝 언짢아지더라고요. 장사를 하면서 남의 돈을 받으면서 욕도 아니고 이런 유의 짧은 문자를 받는게 뭐 대수냐 싶겠지만 저는 아직도 이런류의 말줄임의 글이 싫었습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카스 음식 인증샷 밑에 가격은?이라고 써서 놓으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가게 들어가서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에게 이렇게 대뜸 반말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건 다 TMI정보니까 닥치고 가격이나 말해~라고 묻는 거 같습니다. 그 장면이 문장 하나로 눈앞에 그려지며 심박수가 빨라집니다. 남편은 그런 저를 보며 네가 집에서 혼자 음식을 만들고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말을 해줍니다.


그 멘털로 어떻게 온갖 사람 상대하는 음식장사를 하겠냐면서 너한테 주문할 때는 두 손 모으고 공손히 물어봐야 하냐고 그냥 대충대충 응대하고 음식 만들어주면 되지 않냐고 조언을 해줍니다. 산책을 하면서 고객의 문자를 받고 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런 레퍼토리로 넘어가는 거죠. 나 예민한 거야? 내가 예민한 거지? 그래 돈을 벌려면 가랑이 사이로 기어들어간 흥선대원군처럼 배알은 다 빼놓고 염치도 빼놓고 내 기분과 감성은 장롱에 꾹꾹 쟁여놓고 예쁘게 방긋 웃어드리며 그래야 하는 거지?


전화요? 예~ 당장 전화드리겠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떤 음식이 필요하신 건가요? 주문 반갑고 감사합니다. 저에게 돈을 주시니 어찌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 코로나 불경기에 당신이 저의 구세주입니다.


뭐 이래야 하냐?라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남편의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어서 저의 감정상태를 조곤조곤 히 짚어주었습니다.


“오빠, 내가 또 예민한 건가 싶어서 나도 의문이 들지만 이 고객님은 나에게 처음 인사를 건넨 초면의 고객님이시고 친해진 사이도 아닐뿐더러 나는 고객들에게 보내는 쪽파 한 줄도 예의를 갖추느라 줄 세워 보내는 사람인데... 갖은 정성을 들여서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음식을 만드는데 (물론 다른 음식 파시는 분들 모두가 그렇지만) 나는 내 친정식구에게 보내는 거보다 더 정성을 들이는데 말이야. 아주 작은 건데 이런 작은 예의 조차 바라면 사 치인 걸까?”


듣고 있던 남편도 수긍을 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가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마음에 화가 난 건 아니고 고객님에게 저의 마음을 아주 간략히 보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대응으로 해도 되고 모른 척 전화를 해도 되지만 저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 모양입니다.


‘고객님, 제가 좀 고지식해서 짧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전화요>라는 뜻은 전화통화를 원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시면 전화를 하시겠다는 뜻인가요?


제가 만드는 음식은 쪽파 한 줄도 가지런히 반듯하게 줄을 세워서 예의를 갖춰 보내드리는 음식입니다. 그래서 저도 고객님과 정당한 예의를 갖춰서 문자가 오고 가는 사이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이렇게 보내 놓고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남편에게 라면을 끓여주는데 고객님에게 답신이 왔습니다.


‘아. 말로 하는 게 더 빨라서요. 톡은 어려워서요’


제가 맥도널드 가게에 들어가서 무인 자판대를 보고 당황스럽고 귀찮은 심정이 드는 거처럼 아마도 저보다 더 연배의 손 윗분이 시라 카톡이나 문자에 대응하기가 싫어서 전화를 원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화를 낸 거라고 고객에게 그렇게 답신을 보낸 게 그새 후회가 슬쩍 들기도 해서 전화를 하기가 망설여지더라고요.

휴일 저녁이라 상담전화를 식구들 앞에서 하기가 좀 불편하기도 했던 거 같습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남편은 맛있다고 난리인데 저는 또 내가 속이 좁은 사람같이 느껴지고 좀 더 넉살 좋은 사람 일순 없나 싶어서 머릿속의 상념 실타래가 한 뭉텅이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묻지도 않았는데 저의 변을 또 늘어놨습니다.


“아니 뭐, 내가 엄~~ 청  까칠한 걸 수도 있는데 말이야. 내가 예민한 성격이 아니었으면 음식들을

어떻게 만들겠어. 물김치 한통 담으려면 야채 육수 하룻저녁 숙성시켜야 하고 열무도 풋내  나게 씻으려면 얼마나 애지중지 애기 씻기듯 해야 하는데...


아무리 돈을 받고 움직여지는 일이라도.... 말 한마디 예쁘게 건네받고 싶은 게 그게 큰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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