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인 동덕여대 사태와 그것을 바라보는 더 폭력적인 시선
며칠 전 강의를 시작하기 전 학생들에게 "고맙다"라고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학생들에게 매 순간 고마움을 느끼긴 하지만, 이 날 표한 고마움은 최근 발생한 동덕여대 사태에 대한 기분 나쁜 농담이 섞여 있었다. 현재 재직 중인 학교에 온 이후, 공공장소를 무단 점거하고 기물을 파손하거나 교직원의 동선을 저지하는 방식의 학생 시위를 경험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교내 학생 시위는 인근 대학과의 통합 논의에 반대하는 총학생회 주도의 움직임이었는데, 며칠간 진행된 시위의 원칙은 '침묵'이었다. 총장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 앞에 각 학과의 '과잠'을 한데 모아놓고 각 학과의 대표들이 모여 몇 가지 요구사항을 이야기한 후 침묵 속에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시위의 전부였다. 당시 시위의 모습을 먼 곳에서 지켜보며 내가 받은 인상은 긍정적이었다. 협상의 대상이 아닌 불특정 다수의 일상을 방해하고 해코지 해야만 시위의 목적이 달성된다고 믿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벗어나 협상의 대상에게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학생들이 나름 고심해서 찾은 결과라고 느꼈다.
최근 동덕여대에서 발생한 학생 주도의 '소동'은 메시지의 전달, 혹은 협상의 목적 달성이라는 시위의 본질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이 사건의 진행 경과를 따라가 보면 사태를 이지경까지 이끌고 온 학생들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일방적인 폭력을 앞세워 대화와 설득보다는 특정 집단의 목적을 끝끝내 관철시키고야 말겠다는 식의 시위는 광화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 부대, 혹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팬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다만, 이 여대에서 발생한 과격한 시위의 양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회 계층에 따라 미묘하게 갈리는 지점이 존재하고, 누구나 명확하게 객관화가 가능한 사건의 본질보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모호함과 음침함에서 나는 조금 더 큰 불편함을 느낀다.
한국의 학생운동이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의 추동력을 상실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학생회장에 출마하는 이가 없어 학생회가 구성되지 못하고 비대위 형태로 운영되는 모습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오래된 현상이다. 민족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거대담론은 경제위기와 취업난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많은 학생회가 축제 활성화(주로 유명한 연예인을 더 많이 불러오겠다는 식이다) 등 학생 편의에 초점을 맞추어 정책을 운영한다. 만약 고전적 형태의 학생운동에 뜻을 둔 이가 학생 자치기구의 장으로 선출되어 꽤 큰 예산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는 아마도 최근 우리 사회에 생존하는 거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 여성주의, 혹은 생태주의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시장과 기업 등 경제논리에 영향을 덜 받아 '상아탑'이라 불리는 학교에서 결성된 다수의 집단이 응축된 힘을 이용하여 단일한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그 결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움직이려 하는 행동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그 집단행동이 여성, 혹은 환경과 같이 경제논리로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대상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당위성 역시 넉넉히 확보된다 할 수 있다.
이번 동덕여대 사태를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최근 학교 본부를 중심으로 일부 학과에 한해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다는 '소문'을 인지하고 급히 결성된 '공학전환 반대 총력위원회' 등 일부 학생들이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는 과정에서 본부 보직자들과 마찰을 빚었고, 그 결과 공간을 점거하고 라커칠을 하는 등 학교 기물을 파손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다. 이후 -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고 확인되지도 않은 - 안건에 대한 학생투표를 비밀투표가 아닌 거수 방식으로 진행하거나 수업에 참여하려는 학생들을 가로막는 등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사위 양상을 다수 노출하였으며, 특히 학교 측이 산정한 피해액에 대한 보상에 대해 총력위 측이 책임을 회피하며 비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스무 살 남짓한 대학생의 미숙한 조직 운영과 잘못된 가치 판단은 크든 작든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관찰하는 모습이다. 이번 동덕여대 학생들이 저지른 그 '잘못'의 정도가 비록 상대적으로 조금 크다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미숙한 젊은이의 치기 어린 행동, 그 이상은 아니다. 대학교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미숙한 젊은이가 대학에서의 수학 과정을 통하여 지적으로, 혹은 육체적으로 조금 더 성숙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학 교육의 본질적인 책임 아닌가. 이들에 대한 비판은 이 정도 차원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 피해액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는 사회적인 관용을 바탕으로 공적인 개입이 이루어질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반성과 사과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아직 사회활동을 시작하지도 않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에게 몇십억의 빚을 지우는 것은 건강한 사회가 자랑스럽게 떠들만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이제 최근 관찰되는 이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에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나는 이들을 향한 비난의 기저에는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깊은 혐오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동덕여대 공학전환 반대 총력위는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회장을 주축으로 급조된 조직으로, 학생회의 주장처럼 동덕여대 전체 학생을 대표하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은 집단이다. 나는 한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러링'이라는 변명 아래 또 다른 형태의 폭력과 혐오를 재생산하고 그 과정에서 의미 없는 욕구해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의 과거 행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현재의 동덕여대 사태가 마치 여성주의 전체의 폭력성을 대변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사실은 이와 다르다. 우리공화당처럼 문재인과 이재명을 매우 싫어하는 집단이 현수막에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하여 문재인과 이재명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욕을 입에 담고 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평균적인 사람들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온건한 판단을 내린다. 나는 아직 한국사회가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동덕여대의 다수의 학생들, 혹은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다수의 시민들 역시 상식적인 수준의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사회적 대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조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제 동덕여대 입결 떨어지겠네"와 같은 인터넷 반응에 더 이상 실망하지 않을 정도로 나도 꽤 무뎌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타인에 대한 믿음과 관용을 조금 더 발휘할 수 있다면,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끝까지 수업을 듣고 싶어 했던 대다수의 학생들이 어떤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사회에 조금이라도 먼저 태어난 '어른'이라면, 아무런 힘도 없이 학습권을 빼앗긴 채 학교의 명성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