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극우주의자 친구들

사회적 해악에 지나치게 관대한 나의 이웃들에 대하여

by Jong

12월 14일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현직 대통령이 촉발한 비상계엄 사태와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신속하게 가라앉기를 바라는 전국민적 소망에 한 발자국 다가간 것 같아 다소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탄핵소추안의 국회통과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지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국민의 대표라는 총 300명의 국회의원 중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이는 단 204표, 85명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기권, 무효표 등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한 이도 11명이나 된다. 즉, 국희의원 중 3분의 1에 달하는 이들은 여전히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원 생포 지시 등 위헌적이고 위법한 행위를 저지른 대통령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비상식적이고 근시안적인 이 100여 명의 시대착오적 행동을 바라보며,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와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목마다 등장하여 발목을 잡은 특정 정치세력의 끈질긴 생명력과 이들의 견고한 지지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있다. 3당 합당 이후 위기 때마다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등으로 당명을 바꾸어오며 명맥을 유지해 온 거대 정당이다. 이들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 제국주의 밑에서 중간 관리자로 부역하던 이들이 해방 이후 대거 국회로 들어오게 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또한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당과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에 부역하던 민주공화당이 구축한 정치철학을 현재 국민의힘의 중심세력이 계승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이 정당이 지난 몇십 년간 보인 모습을 바탕으로 주요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상도를 기반으로 하여 타 지역에 대한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지역주의, 재벌,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제논리를 전개하는 신자유주의,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다양한 의견의 수렴을 통제하는 권위주의, 일본과 미국 등 강대국과의 친화를 우선시하는 사대주의, 전쟁의 공포를 국내정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반공주의.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보수주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극우주의'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내가 생각하는 보수주의란, 한 사회가 오랜 기간 합의 하에 축적해 온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념, 혹은 움직임이다. 한 나라에서 널리 유통되는 '상식'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중교통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하나의 미덕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이 관점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문화적 유산 위에서만 기능한다. 보수주의자는 이를 사념화하여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만들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다소간의 사회적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나, 이는 현재의 가치를 지키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보수주의는 태생적으로 과거회귀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무난한 생활을 가능케 하는 '상식'의 범주를 지켜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내가 생각하는 진보주의는 현재의 가치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이념, 혹은 움직임이다.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공동체적 가치가 어떤 이에게 피해, 혹은 고통을 줄 수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진보주의자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과 충돌을 빚을 수 있으나, 이 역시 사회적으로 건강한 다툼이다. 이 두 세력 간 다툼 속에서 역사는 성장했다.


극우주의는 보수주의도 아니고 진보주의도 아니다. 여러 형태의 극단주의(extremism) 중 가장 수구적인 형태를 취하는 이들의 궤변일 뿐이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일상화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 한다. 또한 타인과의 구획 짓기를 명확히 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방법론에 대한 고찰마저 온전히 철회할 정도로 낮은 윤리관을 가지는 것도 주요한 특징이다. 한국의 극우주의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특정 종교에 정신이 매몰당한 빈곤한 노년층과, '일베' 등 혐오문화에 일찍부터 길들여진 젊은 남성 세대가 그들이다. 이 두 계층은 사회적으로 경쟁에서 밀려났다는 설움을 공유한다. 은퇴 이후 자아실현을 위한 적절한 사회적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노인들은 존재 가치를 찾기 위해 정치에 집착한다. 취업시장과 연애시장, 혹은 결혼시장 등 거의 모든 경쟁의 장에서 기성세대와 동세대 여성에게 밀린 2,30대 남성은 게임과 커뮤니티 등 온라인 세상에서 그나마 자신을 인정해 주는 반응들을 찾아 헤매며 시간을 허비한다. 이들에게 윤석열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었을 것이다. 9수 끝에 사시에 합격하여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충성하고, 술을 좋아하며 트로피 와이프를 옆에 둔 쩍벌남. 현실에서 소외당하기 일쑤인 노인과 젊은 남성에게 윤석열은 과거회귀적인 성격을 넘어 일종의 롤모델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사회적으로 소외당한 이들이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들었고, 이후 탄핵 정국 속에서도 사태를 이지경으로 만든 주범으로서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극우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며 타인을 혐오하고 폭력을 조장할 것이다. 이들이 정치성향을 형성하는 과정에는 서사가 존재하며, 그 서사는 - 가치판단을 떠나 -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사회구조적으로 탄생한 낙오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정치적 폭력이었다는 점에서 이 두 계층의 존재는 나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 진지하게 성찰하고 보듬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실망하고 낙담하는 지점은 이들 외에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이라는 시대착오적 인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며, 심지어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오늘도 열심히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계엄은 잘못되었지만 금융투자세 때문에 민주당은 절대 지지하지 못하겠다는 친구가 바로 내 옆에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국민의힘에 투표하겠다는 친구도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다. "나 윤석열 찍었는데"라고 당당히 밝힌 뒤 (여기까지는 아주 좋다) "결국 민주당 때문에 이 지경까지 온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현재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하며 번듯한 가정을 일구는 사람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이해가 간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여전히 정상인 취급을 받는다. 이들 중 그 누구도 국민의힘에 투표했고 윤석열을 지지했다는 사실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는다.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앞으로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겉으로는 공동체적 가치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이 여전히 잠재적인 국민의힘 지지자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힘 빠지게 한다. 이들에게 보수주의와 극우주의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만 민주당에 투표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재명이 밉고, 금투세를 추진하는 (이제 더 이상 추진하지도 않을 정도로 민주당도 우경화되었지만 이들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정당이 미울 뿐이다. 누군가를 혐오해야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들은 극우주의의 오랜 전복 시도에 부분적으로 함락당했을지도 모른다.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이 당을 이끌던 당대표는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장애인 국회의원은 비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를 제명시켜 달라고 당에 요청했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고 소속 정당 내 존재하는 극우세력의 입김에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이들 세력이 '배신자'로 낙인찍은 유승민 같은 건전한 보수주의자가 오히려 국민에게 사과하고 있지만,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전혀 사과하지 않고 있다. 이 비정상적인 정당은 다음 총선에서도 분명히 굳건히 살아남을 것이다. 성조기를 펄럭이는 해괴한 특정 종교 신자들이 광화문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일베와 같은 사이트를 기웃거리며 악플을 다는 것으로 하루의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20대 실업자들이 줄어들지 않는 한, 그리고 부동산과 주식투자, 비트코인이 세상의 전부인 '평범한' 직장인들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하는 한 이 정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할 때 분명히 딴지를 걸 것이다. 전과 같이 앞으로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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