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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종일 Oct 22. 2023

6. 베트남 찐 로컬 속으로

메콩강가의 조난자들

베트남의 에덴동산에 묵다


삼부자의 첫 베이스캠프는 호치민 시 1군에 위치한 Eden Star Saigon Hotel이었다. 1박에 조식을 포함해 100,000원 내외 시내 중심지 4성급 호텔이면 세 남자에게 딱 적절하다.


72세 아버지는 내심 이곳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세계를 뒤덮기 전, 고희(古稀)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홀로 배낭을 메고 근 한 달을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 고희. 일흔까지 산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그렇담 고희의 배낭 여행자는 얼마나 드물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사실 그는 조용한 사람일 뿐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참 보기 드문 사람이다. 어떤 노인이 근 한 달 나 홀로 배낭여행을 떠나며, 시내의 가장 허름한 민박집에 묵으면서 하루 2만보씩 시내를 두 발로 휘젓고 다닐까.


돈을 아끼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먹든, 무엇을 사든 금액부터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기막힌 실용주의자이자, 금욕주의자다. 형편이 어려울 때나 좀 나을 때나 변함이 없다. 스스로에게 하도 안 쓰다 보니 조금만 비싸면 겁을 낸다. 그 관성이 70년이 되었으니 갑자기 바뀔 리 없다. 그러니 가장 저렴한 민박을 찾아 묵은 것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만으로 이미 사치인데 숙박비까지 비싸게 낼 순 없었을 것이다.


"그때 불란서에서 묵었던 민박이 하루에 20,000원이었지. 지금은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3배가 됐더라."

"그래요? 방은 묵을만했어요? 그래도 편히 쉬어야 다음 날 또 다닐 텐데."

"편하진 않지. 몇 명이서 방도 같이 쓰고 화장실도 같이 쓰고 했으니까. 그래도 옛날 너 어렸을 때 같이 여행 다니다 묵었던 벌레 많았던 민박집에 비하면 양반이지."

"이번에도 좀 더 저렴한 데로 찾아볼까요?"

"베트남이 물가가 싸서 4-5만 원 짜리도 괜찮긴 한 것 같더라."


사실 나도 그렇다. 부전자전. 비싼 무언가는 웬만해선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해 가격이 나가는 지출을 할 땐, 가성비를 기준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진다. 가능하면 더 싼 대안을 찾고 싶다. 그러다 지출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냥 보고 배운 것이 그래서다.


'에덴스타 사이공 호텔'이라... 이름이 좋다. 별점 4.4, 지도를 보니 1군 주요 관광지에서 멀지 않았다. 루프탑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리뷰도 꽤 많았다.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리뷰가 있었지만, 뭐 세 남자는 머리카락 뭉텅이만 안 나오면 괜찮다. 삼부자는 너그럽다. '여기 괜찮네.'라고 생각하다 '2023년에 리모델링했음'을 보고, 됐다 싶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이미 30개가 넘는 호텔을 봤다. 이 가격대에서 최고의 가성비는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호텔보다 더 저렴한 곳을 갈 수 없었던 것은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얼마나 심한 여독을 앓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파리의 모든 골목길을 지도 한 장 들고 걸어 다녔다. 종종 끼니도 걸렀다. 밤에는 민박집의 작은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칠십 노인은 센 강에 진액을 쏟고 돌아왔다. 마음이 청년이어도 몸까지 청년일 순 없었다. 호텔을 예약하며 이곳이 우리 삼부자, 특히 아버지의 '에덴'이 되어주길, 별이 되어주길 바랐다. '에덴스타' 호텔이 이름값을 하길.


그랩에서 내려 호텔에 들어갔다. 웃는 얼굴의 친절한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로비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아들은 "시원해."를 연발했다.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꽤 높은 층고의 로비 중앙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였고, 'For Pianist'라고 적힌 그랜드 피아노가 존재감을 뽐냈다. 로비 안 쪽에는 대리석 벽을 타고 흐르는 물과 초록 식물이 조경되어 있었다.



"아버지, 우리 노인도 있고, 애도 있잖아요. 이 정도는 합시다."라고 밀어붙이길 잘했다. 아버지는 호텔에 들어와서 연신 이렇게 좋은 숙소를 구했다며 아들을 격려했다. 아들도 만족한 눈치다. "우와!", "오!" 감탄사가 많이 들리면 된 거다. 어린이의 반응은 거짓이 없다. 방도 널찍하다. 침대도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고, 셋이 노닥노닥할 수 있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도 있다. 화장실도 깔끔하다. 몸을 담글 욕조도 있다. 이 정도면 70대 지공 노인도 귀국 후 앓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앉아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내어 준 웰컴드링크도 훌륭했다. 세 남자가 함께 달고 시원한 티로 짠을 하는 순간 4성급 호텔은 5성, 6성을 넘어 넘어 '에덴스타'급이 되었다.


웰컴투 베트남, 웰컴투 에덴




찐 로컬 속으로


호텔방에 짐을 풀고 가벼운 가방만 들고 나왔다. 나는 검은색 나이키 힙색을 앞으로 맸다. 아버지는 20년은 된 바닥이 넓은 카메라 가방을 챙겼다. 아들은 아이언맨 물병 가방을 메었다. 아들은 아이언맨보다는 스파이더맨을 좋아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다 팔리고 없었다. 전 세계 어린이 부동의 인기 1위 영웅은 거미인간이다.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여기가 호치민시틴가. 호치-민, 호-치민. 호-치-민. 하하" 


아버지에게 들썩거리는 리듬의 추임새가 나오면 둘 중 하나다. 본인이 기분이 좋거나,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려거나. 이번엔 전자였다. 나도 따라 했다. "호우--찌민, 호찌이-민." 더 과장을 했다. 우스꽝스럽게 과장할수록 기분이 더 좋아진다는 사실은 아버지와 아들의 40년 삶으로 증명되었다. 1학년 남자 어린이는 신기하단 표정으로 어른들을 쳐다봤다.


호텔 로비로 내려와 구글맵을 켰다. 우리는 애초에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집에 갈 생각이 없었다. 특히 한국 여행책에 나오거나 추천받는 집은 피하자는 생각이었다. 정말 아무 집이나 들어갈 용기는 아직 없었다. 베트남 첫 끼니인데 구글 리뷰가 4.0은 되는 집으로 찾자는 심산이었다. 지도를 켜고, 음식점을 찾는 버튼을 눌렀다. 별점이 무려 4.7인 레스토랑이 호텔에서 3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뭘 먹을까요? 흠, 여기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여기 가볼까요?"

"그래 좋다. 뭐든 좋다."

"아빠, 나 너무 배고파요. 나오니까 너무 더워요. 빨리 먹어요."

"그럼, 일단 여기로 가봅시다."


깨달았다. 이번 원정에서 먹는 것은 오롯이 내 책임이다. 아버지는 구글맵에서 빠르게 뭘 찾고 선택하기엔 순발력이 떨어진다. 환갑이 훨씬 넘어서 스마트폰을 접한 디지털 이방인이다. 그리고 1학년 아들은 아직 스마트폰이 없다. 얼마 전 "아빠, 나도 핸드폰 갖고 싶어요. 손흥민 선수가 골 넣는 거 찾아보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해서 '핸드폰을 언제 사 주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 했던 고민을 나는 아들이 초등학교에 가자마자 해야 하다니 시대가 변했구나 싶었다. 아무튼 지금 아들은 손흥민 선수가 몇 골을 넣었는지 아빠에게 물어야만 하는 처지다. 그러니 여행의 절반, '무엇을 먹어야 하나'는 내 몫일수밖에. 긴장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4.7짜리 레스토랑 앞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멀리서도 보이는 화려한 외부 장식이 뭔가 불안했었다. 가까이 가서 안을 흘깃 보니 잘 차려입은 종업원들이 손님 없는 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닷가재와 해산물을 메인으로 고급진 곳이었다.


"여기 말 그대로 '레스토랑'이네요. 볶음밥 하나에 300,000동이에요. 16,000원. 보통 쌀국수가 50,000동이라던데 여기 호텔급이에요. 아니, 호텔도 이 정도는 아닐 거 같은데."

"300,000만 동? 어이구야. 아니다."

"아빠, 그냥 가면 안 돼요? 너무 덥단 말이에요."

"다른 데를 찾아볼게. 여기 식당 많은 것 같은데... 구글맵에는 몇 개 등록이 안 되어 있네요."


나는 구글맵 평점으로 첫 식당을 찾으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한 번 더 헛걸음했다간 땀 많은 아들이 더 이상 걷지 않겠다며 보이콧할 기세였다. 걸어 다니다가 보이는 식당 중 찾아야 했다. 호텔과 너무 멀어지지 않는 길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코너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좀 전에도 지나쳐왔는데 들어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던 식당이었다.


파란색과 하얀색 줄무늬 어닝엔 색이 바래 먼지가 쌓여있었다. MÊ KÔNG. '식당이름이 메콩이구나. 메콩강의 그 메콩이겠지?' 베트남어는 모음에 기호들이 잔뜩 붙어 있어도 알파벳 기반이라 읽을 순 있다. 벽은 오래된 타일 사이에 때가 끼어있다. 정리 안 된 기름통과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일회용품이 먼저 눈에 띄었다. '여긴 식당이 아니라 창고로 쓰면 맞겠는데.'라고 생각하던 중, 식당 안에서 슬리퍼 위에 발을 꺼내 놓고 밥을 먹고 있는 현지인 손님이 보였다. 입구에선 베트남식 돼지갈비 덮밥인 껌승에 들어갈 고기를 몇 점 굽고 있었다. 


선택해야 했다. 식당을 찾아 더 헤맬 순 없었다. 더 걸으면 뭐라도 좀 더 그럴싸한 곳이 나오겠지만 아들은 이미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었다. 나도 등이 축축했다. "여기 한 번 가볼까요? 뭐 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표정에 슬쩍 긴가민가가 스쳤으나 이내 "좋다. 그러자"며 배려 섞인 동의를 한다. 아들은 이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은 많이 먹고 빨리 크는 중이다. 배고플 땐 몸이 먼저 나간다. 과자가 두 개인데 사람도 둘이면 하나씩 나눠 먹어야 한다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하나를 삼키면 무의식적으로 다음 것을 집어 입으로 가져간다.


메뉴판을 봤다. 아무리 봐도 메뉴판에 영어가 없다. Rice Noodle 이라든지, Fried Pork Rice 같은 게 보여야 하는데 당황스러웠다. 이것이 관광객 없는 현지 식당이다. 메뉴에 영어가 없으면 그게 바로 찐 로컬이다. 메뉴 사진이 있을까 싶어 다시 구글맵을 켰다. 그냥은 보이지 않던 식당이 최대한 확대하니 보였다. 메콩은 별점 3.8 짜리였다. '밥이 깨끗하지 않다'는 리뷰를 못 본 척 넘기고, 음식 사진을 찾았다. 입구에서 굽고 있던 고기가 올려진 덮밥이 보였다. 조갯국도 있었고, 야채 볶음 같은 것도 있었다. 저녁에 화장실에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덮밥이 낫겠구나 싶었다.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자그만 체구의 아르바이트생인지, 주인집 아들인지를 불러 사진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디스 원? 비프? 포크?"

"..."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색하게 웃으면 영어를 모르나 보다 했을 텐데, 무표정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영어 싫으니, 베트남어로 주문하라'는 것일까? 프랑스 식당에서는 불어가 아닌 영어로 주문하면 서비스가 안 좋다던데 그런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원래 이 식당은 베트남 사람을 위한 곳일 뿐이다.


"가만있어봐라. 베트남어 책 가져왔다." 

아버지가 가방에서 여행 베트남어 책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돼지고기란 표현을 찾았다. 

"팃...팃론? (thịt lợn)"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구에서 굽고 있는 고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역시 돼지고기 덮밥이었군. 찐 로컬 식당이라도 우리가 먹는 고기가 돼지고기인지 비둘기 고기인지는 알고 먹어야 한다. 

"아버지, 그 책 쓸모가 있네요? 가져오길 잘했소잉." 

내가 말했다. 쓰지도 않을 무거운 책을 굳이 넣고 다니는 모범생 아버지가 답답했었는데 벌써 본전은 뽑았다.


우리는 껌승이라는 돼지고기 덮밥 두 개와 어묵이 올라간 덮밥을 하나 주문했다. 가격은 240,000동. 13,000원이면 현지 가격치곤 높은 편이라지만, 메뉴 3개에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옆의 현지인들이 먹고 있는 메뉴도 같은 것이었다. 안심이 되었다. 주문을 받던 아이는 짭짤한 까만 소스 두 개와 새콤한 피시 소스 한 개, 그리고 양배추와 당근, 푸른 채소 몇 가닥이 들어간 맑은 국물을 세 개 가져다주었다.


약간 긴장이 되었다. 비슷한 입맛의 한국인들이 주는 보증을 완전히 무시한 첫 끼였다. 아무리 허름한 노포여도 누군가 먼저 왔다간 사실만으로 의심이 사라지는 법인데... 가만 보니 아버지도 아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 남자는 약간 시간을 끌다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었다. 한국의 것과는 향이 살짝 다르지만 그냥 시원한 채소국이었다. 시큼하지도 않고, 둥둥 떠다니는 것도 없다. 됐다. 이제 긴장할 것 없다. 자신감이 올라왔다.


이어서 익숙한 향의 덮밥이 나왔다. 양은 좀 적다. 돼지고기에는 소스를 좀 뿌리고 한 입 거리로 잘랐다. 어묵도 잘라서 새콤한 소스에 찍어 먹다 아예 밥에다 소스를 뿌렸다. 위에 올라간 고기의 양이 적어 소스를 밥에 뿌리니 맨밥도 먹을만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양이 적다더라."

아버지가 본인 몫의 어묵을 손주에게 덜어주며 말했다.

"그래요? 가만있어도 땀이 뻘뻘 나도록 더운데 많이 먹어야 되는 것 아닌가?"

"베트남 민족이 작잖아. 비엣족이라고 해. 비엣족이 원래는 중국에 가까운 쪽에 살았지. 하노이가 거기야. 여기 호치민은 비엣족이 아니라 참족이 지배하는 참파왕국이었어. 그런데 비엣족이 쭉 밀고 내려온 거지. 여기가 베트남이 된 지 몇 백 년 안 돼. 아무튼 남자들 평균 키가 165cm 도 안 될 텐데. 옛날에 베트남 전쟁할 때 베트콩들이 작으니까 땅굴 파고 들어가서 잘 숨고 그랬지. 구찌 터널이 그런 거다"

"아, 그래요? 그래서 양이 적은 거구나."


1년 넘게 이어온 아버지의 베트남 탐구 생활엔 베트남인의 평균키와 민족의 구성, 전쟁사가 모두 들어 있다. 아버지는 삼부자의 베트남 원정을 풍성하게 할 지식들을 툭툭 꺼낸다. 아버지가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최재천 교수 같은 통섭형 학자가 됐을 거고, 대중 감각이 있었으면 조승연 작가 같은 박학다식이 됐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은 껌승에 코를 박고 먹었다. 땀방울이 붉은 볼을 타고 흐르는 게 보인다. "이거 맛있어요." 아들은 1학년 중 큰 축이지만, 비엣족 어른보다는 35cm 작은데도 비엣족 어른 양을 다 먹었다. 꽤 질깃한 고기였는데 밥 한 입, 고기 한 점을 번갈아 가며 접시를 싹 비웠다. 여행지에서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몰래 생각했다. '앞으로 세계 어디든 데리고 다닐 만하겠군.'

맛있어요 그 한 마디




메콩강가의 조난자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던 그 아이가 고개를 저었다. 공항에서 환전을 안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안일했다. 카드를 안 받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흘렸다. 떤선녓 공항의 환전소에서 환율까지 알아보긴 했으나, 시내 나가서 좋은 환율 알아보고 천천히 바꾸면 되겠지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우리에게 현금이 단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삼부자의 진짜 도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우리가 현금이 없다는 사실을 식당 주인에게 알려야 했다. 고기 굽고 있던 사람, 주문받던 아이 등 모든 식당의 관계자 여러분께 우리가 당황했음을 내비쳤다. '우리는 선량한 여행객이에요. 무전취식을 하려는 게 아니에요'라는 시그널을 온몸을 사용해 전달했다.


"아버지, 제가 구글맵으로 가까운 환전소를 찾아볼게요."

내가 구글맵에 currency exchange를 검색하며 말했다. '시내에 환전소 많다더니 왜 이렇게 안 나오나. 거짓말쟁이 유튜버들...'이라고 생각하며 지도를 이리저리 드래그하는 동안 아버지는 차분히 베트남어 회화 책에서 '환전소'를 찾았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thu đổi ngoại tệ 라 써진 글자를 짚어 주었다. 내가 "커런시 익스체인지, 커런시! 커런시!"라고 외칠 때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식당 주인은 표정이 밝아지며 식당 오른편의 큰길을 가리켰다.


주인이 가리킨 길은 구글맵 기준으로 600m 밖에 있는 환전소로 가는 길인 듯했다. 600m. 사실 멀지 않은 거리다. 아버지와 아들을 잠깐 식당에 기다리게 하고 다녀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체 모를 불안감이 내게 찾아왔다.


'칠십 노인과 젖먹이 어린아이를 '메콩'에 남겨 둔다고? 내가 600m의 길고 긴 험지를 지나 환전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억겁의 시간 동안 그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그 사이 노인은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바닥을 청소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불량배들이 노약자와 학생에게 달려들어 가방과 여권을 뺏고 어디론가 데려가지는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불안은 바로 전 불안을 먹고 더 커진다. 호치민에서는 손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 소매치기당할 수도 있다는 유튜버의 말, 큰 지폐를 함부로 꺼내지 말라는 여행책의 글이 생각났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던 그때였다.


"Do you need Vietnam Dong?"


메콩강가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구조를 기다리던 삼부자에게 혼자서 껌승을 먹던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I can exchange money"


구조대의 신호였다. 그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일수 가방 비슷한 검정 가죽 가방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는 환전소에서 일한다며 들고 다니는 간이 영수증도 보여주었다. 그가 정식 구조 대원인지 구조대를 가장한 사기꾼인지 파악해야 했다.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필요 없으면 말고'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신호였다. 사기꾼이라면 어떻게든 이 판에 들어오려 할 테니까. 식당 주인도 우리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 짧은 순간에 식당주인과 환전소 직원이 사기 행각을 공모할 순 없겠지. 우리를 구조하러 온 구조대원이 맞다!


그는 23,000을 계산기에 찍어 우리에게 보여줬다. 1달러에 23,000동이라는 의미였다. 아까 공항에서 23,300동까지 주겠다던 환전소 직원이 생각났다. 그에게 구글에서 찾은 달러 대 베트남 둥 환율을 보여 줬다. 23,500 받아라!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하는 꼴인가. 나는 메콩강 조난 중 만난 구조대원에게 흥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Okay."를 외치고 거침없이 영수증에 100$ = 2,344,000 VND을 적었다. 이런 호재가. 공항에서 봤던 환율보다 더 좋다. 인생사 새옹지마다. 우리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100달러 지폐를 건네고 2백만 단위가 넘어가는 몇 장의 지폐를 받았다. 그리고 식당 주인에게 껌승 값을 지불했다. 단위가 하도 커 몇 번을 확인하고 줬는지 모르겠다. '0' 하나 잘못 세면 껌승 10그릇이 날아간다.

메콩강 구조대원의 영수증


삼부자의 찐 로컬 메콩 체험이 막을 내렸다. 우리는 첫날부터 해냈다. 찐 로컬에 도전했고, 함께 역경을 극복했다. 베트남 돈도 두둑이 생겼다. 삼부자는 다시 이상한 리듬의 추임새를 넣고 깔깔대며 호텔로 향했다.


"메꽁- 메에-꽁. 여기가 메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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