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의 배낭 여행자를 위하여
삼부자의 첫 베이스캠프는 호치민 시 1군에 위치한 Eden Star Saigon Hotel이었다. 1박에 조식을 포함해 100,000원 내외 시내 중심지 4성급 호텔이면 세 남자에게 딱 적절하다. 그러나 72세 아버지는 내심 이곳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세계를 뒤덮기 전, 고희(古稀)를 바라보던 아버지는 홀로 배낭을 메고 근 한 달을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 고희. 일흔까지 산 사람이 드물다는 말이다. 그렇담 고희의 배낭 여행자는 얼마나 드물까.
나는 우리 아버지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사실 그는 조용한 사람일 뿐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참 보기 드문 사람이다. 어느 노인이 근 한 달 나 홀로 배낭여행을 떠날 생각을 할까. 어느 노인이 하루 2만보씩 파리를 두 발로 휘젓고 다니면서도 시내의 가장 허름한 다인실 민박집에 묵을 생각을 할까.
돈을 아끼고 싶어서라고 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그는 무엇을 먹든, 무엇을 사든 금액부터 생각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기막힌 실용주의자이자, 금욕주의자다. 형편이 어려울 때나 좀 나을 때나 변함이 없다. 스스로에게 하도 안 쓰다 보니 조금만 비싸면 겁을 낸다. 그 관성이 70년이 되었으니 갑자기 바뀔 리 없다.
그러니 가장 저렴한 민박을 찾아 묵은 것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것만으로 이미 사치인데 숙박비까지 비싸게 낼 순 없었을 것이다.
"그때 불란서에서 묵었던 민박이 하루에 20,000원이었지. 지금은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서 3배가 됐더라."
"그래요? 방은 묵을만했어요? 그래도 편히 쉬어야 다음 날 또 다닐 텐데."
"편하진 않지. 몇 명이서 방도 같이 쓰고 화장실도 같이 쓰고 했으니까. 그래도 옛날 너 어렸을 때 같이 여행 다니다 묵었던 벌레 많았던 민박집에 비하면 양반이지."
"이번에도 좀 더 저렴한 데로 찾아볼까요?"
"베트남이 물가가 싸서 4-5만 원 짜리도 괜찮긴 한 것 같더라."
사실 나도 그렇다. 부전자전. 비싼 무언가는 웬만해선 사지 않는다. 꼭 필요해 가격이 나가는 지출을 할 땐, 가성비를 기준으로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진다. 가능하면 더 싼 대안을 찾고 싶다. 그러다 지출 자체를 포기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누가 그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그냥 보고 배운 것이 그래서다.
'에덴스타 사이공 호텔'이라... 이름이 좋다. 별점 4.4, 지도를 보니 1군 주요 관광지에서 멀지 않았다. 루프탑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리뷰도 꽤 많았다. 머리카락이 나왔다는 리뷰가 있었지만, 뭐 세 남자는 머리카락 뭉텅이만 안 나오면 괜찮다. 삼부자는 너그럽다. '여기 괜찮네.'라고 생각하다 '2023년에 리모델링했음'을 보고, 됐다 싶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이미 30개가 넘는 호텔을 봤다. 이 가격대에서 최고의 가성비는 여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 호텔보다 더 저렴한 곳을 갈 수 없었던 것은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얼마나 심한 여독을 앓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파리의 모든 골목길을 지도 한 장 들고 걸어 다녔다. 종종 끼니도 걸렀다. 밤에는 민박집의 작은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칠십 노인은 센 강에 진액을 쏟고 돌아왔다. 마음이 청년이어도 몸까지 청년일 순 없었다.
호텔을 예약하며 '에덴스타' 호텔이 이름값을 하길 바랐다. 이곳이 우리 세 남자, 특별히 아버지의 '에덴'이 되어주길, '별'이 되어주길 바랐다.
그랩에서 내려 호텔에 들어갔다. 웃는 얼굴의 친절한 벨보이가 문을 열어주었다. 로비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아들은 "시원해."를 연발했다. 부드러운 선율의 클래식 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꽤 높은 층고의 로비 중앙에는 샹들리에가 반짝였고, 'For Pianist'라고 적힌 그랜드 피아노가 존재감을 뽐냈다. 로비 안 쪽에는 대리석 벽을 타고 흐르는 물과 초록 식물이 조경되어 있었다.
"아버지, 우리 노인도 있고, 애도 있잖아요. 이 정도는 합시다."라고 밀어붙이길 잘했다. 아버지는 호텔에 들어와서 연신 이렇게 좋은 숙소를 구했다며 아들을 격려했다. 아들도 만족한 눈치였다. "우와!", "오!" 감탄사가 많이 들리면 된 거다. 어린이의 반응은 거짓이 없다. 방도 널찍하다. 침대도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고, 셋이 노닥노닥할 수 있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도 있다. 화장실도 깔끔하다. 몸을 담글 욕조도 있다.
이 정도면 70대 지공 노인도 귀국 후 앓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잠시 앉아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내어 준 웰컴 드링크도 훌륭했다. 세 남자가 함께 달고 시원한 티로 짠을 하는 순간 4성급 호텔은 5성, 6성을 넘어 넘어 '에덴스타'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