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길
베트남의 에덴. 우리의 3박 4일의 안식처가 되어 준 에덴스타 사이공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같은 호텔에서 4일 차쯤 되니 이곳에 사는 느낌이 들었다. 푹 자고 일어나 마지막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아들, 여기 호텔에서 마지막 아침이야. 오늘 우리 에어비앤비로 옮길 건데 거기에는 아침밥을 안 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다 먹어야 돼."
"조식을 안 준다고요? 그럼 아침밥은 어떻게 해요?"
"저녁에 사서 들어가자. 더 좋지 뭘. 먹고 싶은 것 다 사서 들어가는 거야."
"그럼 하루는 맥도날드에 가서 맥모닝 먹으면 안 돼요?"
아들은 조식 대신 맥모닝을 원했다. 아들은 맥도날드를 좋아한다. 맥도날드는 외식 메뉴 고를 때 부동의 원 픽이다. 맥치킨 버거 세트에 맥너겟을 몇 개 추가해 먹는 것이 아들의 취향이다. 패스트푸드를 덜 먹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맥도날드를 먹으러 갈 때 행복한 표정을 이기지 못한다. 베트남까지 와서 맥도날드를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베트남 맥도날드만의 메뉴를 먹고 행복해하는 아들을 볼 수 있을지도.
아버지는 쌀국수 한 그릇으로 가볍게 식사를 하더니 연유가 가득 든 베트남식 커피를 한 잔 받아왔다.
"아버지, 아침부터 커피 드세요?"
"베트남 커피가 센가 보다. 어제는 약간 심장이 두근두근 하더라. 근데 확실히 맛있다. 베트남 커피. 카페 쓰어다. 쓰어-다."
"여기 커피가 세다니까요. 그렇게 많이 드시면 안 돼요."
"나는 밤에 잘 때 커피 먹어도 아무 시랑도 안 하는데 여기 커피는 좀 강한 것 같구먼."
아버지는 커피를 사랑한다. 한국에서는 하루에 믹스 커피 두 개, 원두커피에 우유를 타서 라떼로 두 잔 정도를 마신다. 베트남에서도 기회만 되면 커피를 마셨다. 호텔에 놓여 있는 믹스 커피를 타 마시고 카페에 가면 라떼를 주문했다. 심장이 두근거려서 줄여야겠다면서도 아버지는 빨대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커피 생산량 2위를 자랑하는 커피 강국이다. 스타벅스가 자리 잡기 어려워할 만큼 고유의 커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아버지가 베트남과 사랑에 빠지는데 커피가 어떤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그냥 베트남과 사랑에 빠졌는데 우연히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같았을 뿐. 어찌 됐건 우리 아버지와 베트남은 여러모로 잘 맞는단 생각을 했다.
쌀국수면 무조건 다 되는 사람, 달달한 커피를 사랑하는 노인, 역시 베트남과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뜨거워지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어제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오전을 알차게 쓰기로 했다. 오전에는 베트남의 동물을 보고, 베트남의 역사를 보는 시간이다. 삼부자 원정대는 베트남을 느끼고 싶었다.
"자, 오전 일정 동선을 브리핑하겠습니다."
"아빠, 동물원 가는 거 맞죠?"
"예, 그렇습니다. 사이공 동물원을 가고요. 동물원 보고 나와서 바로 옆에 있는 베트남 역사박물관을 가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호텔로 돌아와서 체크아웃하고 에어비앤비로 갑니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예썰, 알겠습니다."
남자들끼리 여행을 와서 그런가 군대식 말투가 등장했다. 군필 두 명에 미필 한 명. 군필 어른들의 장난스러운 군대 말투가 웃겼는지 아들도 군대식 대답을 하며 웃었다. 며칠 함께 지내다 보니 세 남자는 참 많이 웃고 있었다. 철없는 남자아이 셋이 노는 것 같았다. 요상한 말투로 장난을 쳤다. 난센스 퀴즈를 내고 맞췄다. 웃기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춤을 췄다. 서로의 춤을 보고 웃었다. 누가 할아버지고 누가 손주인지 모를 화학적 결합이랄까.
"여기가 사이공 동물원이구나. 내립시다!"
삼부자는 그랩에서 내렸다. 한국에서 같으면 이제 일어날 시간인 8시 전에 도착했지만 벌써 무더웠다. 사이공 동물원의 오픈 시간은 7시였다. 한국에 아침 7시에 여는 공공시설이 사우나 말고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베트남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얼마나 일찍부터 활동하는지 체감이 된다.
사이공 동물원은 1군의 북쪽 끝에 빈탄군과 사이공강의 지천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입장료는 아이 40,000동, 어른 60,000동이니까 우리 돈으로 한 사람당 이삼천 원 꼴이었다. 베트남 물가는 참 매력적이다. 먹거리도 입장료도 부담이 적다. 동물원은 지도상으로 봤을 때 꽤 큰 크기여서 아무리 체력을 충전한 아침이라고 해도 과연 동물원을 다 돌 수 있을까 싶었다.
동물원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자그마한 분수대와 J.B.Louis Pierre (장 밥티스트 루이 피에르)라는 사람의 자그마한 흉상이 있었다. 읽어보니 아시아 연구로 유명한 식물학자이자 1864년에 사이공 동식물원을 설립한 사람이었다. 사실 이곳은 호랑이를 사육하는 동물원뿐 아니라 각종 열대 식물들이 있는 식물원이기도 했다. 160년의 역사를 가진 특별함은 무엇일지 기대됐다.
"루이 삐에르. 루이 삐-에르. 프리미에 디렉퇴르 앤 오가니스퉤르..... 프랑스 사람이구만"
아버지가 루이 피에르의 흉상 아래 비석에 쓰인 불어를 읽으며 말했다. '프랑스 식민 지배 기간에 지어진 동물원의 프랑스인 설립자를 기리는 불어로 된 비석이라... 베트남은 역시 대인배인가'라고 생각하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앞으로 프랑스와 베트남 한국의 삼각관계를 연구하련다. 마침 내가 프랑스 가기 전에 프랑스 연구를 깊이 했고 이번에 베트남을 했잖아. 프랑스 하고 베트남은 특수한 관계야. 베트남 사람들은 무조건 반불감정이 아니야. 월맹이 사회주의로 통일할 때도 친불 인사들이 많았다고 하대. 여기 호치민만 봐도 1군, 2군 해놓은 게 딱 파리랑 같지. 불란서 말로 여기저기 붙어 있고 하잖아. 아 그리고 프랑스어 쓰는 나라들 모임인가 베트남이 그런 것도 참여하더라."
"참 희한하네요. 우리나라랑 일본 관계랑은 완전히 느낌이 다르네요."
한프베 관계를 다음 탐구 주제로 삼겠다는 존경스러운 70대 아버지는 불어를 전공했다. 아버지는 상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형편상 은행에 입사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일' 좋다는 은행에서 상고 출신의 행원은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야간 대학으로 외대에서 불어와 프랑스를 배웠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흥이 나면 노래인지 추임새인지 모를 암호 같은 말에 리듬을 붙여 말했다. "봉주 무슈, 봉솨 마담, 봉주 마드모아젤" 나와 동생은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아버지를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게 재미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불어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다.
아버지는 은행에서 프랑스 전문가로 자리 잡고 싶었다. 불어 공부를 마치고 무역대학원에 석사를 따더니 프랑스로 발령을 받았다. 그때 아버지 인생에 시련이 왔다. 발령을 얼마 앞두고 허리 디스크가 터졌다. 족구를 하다 다쳤다고 했다. 아버지는 디스크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느라 프랑스에 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 가득했던 한불사전, 불한사전에는 먼지가 쌓여갔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와 프랑스가 어떤 관계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IMF의 광풍 속에 은행을 나오고, 문방구 아저씨로의 삶을 살고, 가게를 접고 완전한 은퇴를 하고, 백발의 지공 노인이 된 어느 날 "나 프랑스로 배낭여행 간다"라고 할 때까지도 나는 '왜 하필 프랑스일까'를 알지 못했다.
프랑스는 아버지에게 이루지 못한 과거의 꿈이었다. 그날 아버지가 족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프랑스 전문가가 되어 IMF 명예퇴직 바람에도 살아남는 몇 명이 됐을지 모른다. 프랑스 금융 시장에 진출했을 수도, 프랑스 무역 전문가로 살았을 수도 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온 프랑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강인 선수의 입단을 열렬히 기뻐하는 파리생제르망의 올드 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곳 베트남은 아버지에게 아들과 손주가 꿈을 펼치는 미래다. 기회가 넘치는 성장하는 시장, 나라의 미래와 같은 아이들이 많은 곳이다. 아버지는 30년 후의 내가 못 잡은 기회를 아쉬워하지 않길 바란다. 마음껏 펼치고 마음껏 도전하길, 허리 디스크 따위가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길.
아버지에게 프랑스는 과거고, 베트남은 미래다. 한프베 관계를 연구하겠다는 아버지는 과거와 미래를 한 줄에 엮는 꿈을 꾸고 있다.
사이공 동물원은 노인과 아이가 모두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워낙 오래된 곳이라 깔끔하게 관리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초록 식물과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오랑우탄과 인사하고, 악어가 먹이를 먹는 것을 보았다. 공작새가 날개를 편 모습을 봤고, 멀리 있는 사막여우를 불렀다. 조랑말 옆에서 사진을 찍고 나무그늘에서 쉬었다.
호랑이의 팬인 아들은 사이공 동물원에 많은 종류의 호랑이가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이곳에는 잘 보기 힘든 백호도 있었다. 특별한 것은 어미 호랑이가 아기 호랑이들을 같은 우리에서 돌보는 모습이었다. 어떤 맹수라도 새끼는 다 귀엽다. 사이공의 아기 호랑이는 어미 품에 한참을 안겨 있다 일어나 우리 안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동물의 왕 호랑이가 유리벽에 갇혀 있는 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자손도 그럴 운명이었다. 어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을 뿐.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의 품을 떠난다. 아버지는 품을 떠나는 아들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란다. 사이공 동물원의 호랑이도 아기 호랑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겠지만 그럴 수 없다. 아버지는 내가 더 넓은 무대를 마음껏 경험하길 바라고 있다. 유리벽을 깨고 나가보길, 후회 없이 새로운 무대에 몸을 내던지길. 그리고 나도 내 아들이 나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서 살 길 바란다. 마침 원복을 맞춰 입고 동물원 견학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지나갔다. 이 아이들도 아버지의 세상을 깨고 성장하겠지.
두 아버지는 동물원의 새끼 호랑이와 유치원생들을 보고 자기 자식의 미래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