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빌딩이 최고였던 시절
반미는 한 번에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우리는 남은 반미를 봉투에 넣어 들고 그랩을 타고 사이공 스카이덱으로 향했다. 아들은 남산타워보다 높은 전망대를 간다는 사실에 들떴다. 사이공 스카이덱은 사이공강 근처에 위치한 비텍스코 파이낸셜 타워 49층에 위치한 전망대이다. 아버지가 들고 다닌 여행책에서는 야경을 보는 것을 추천했다. 우리는 해가 어둑어둑해질 6시 무렵에 사이공 스카이덱에 도착했다.
사이공 스카이덱에 도착하니 의외로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사이공 스카이덱의 포지션은 우리나라의 63빌딩인 듯했다. 2018년 호치민 빈탄군에 지상 461m, 81층 높이의 '랜드마크 81'이 지어지면서 사이공 스카이덱은 2위로 밀려났다. 마치 오랜 세월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상징성을 가졌던 63 빌딩이 그 두 배가 넘는 123층 짜리 롯데월드타워에게 1등을 물려주고 '영광스러운 과거'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과 비슷했다.
오히려 우리 삼부자에겐 좋았다. 굳이 최고층 건물에 갈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호치민 시 전체를 조망하면 됐다. 지금까지 둘러봤던 건물들이 보이면 됐다. 아들은 그저 반짝이는 건물들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즐거워했다.
나는 63 빌딩 세대다. 롯데월드타워가 지어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내 마음속 최고의 건물은 63 빌딩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영등포였다. 차를 타고 외출했다 돌아올 때, 63 빌딩이 보이면 '집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였다.
63 빌딩은 전국 초등학생들에게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유명한 곳이었다. '63 빌딩은 정말 63층인가 아닌가'로 논쟁을 했다. '내가 세어봤는데 60층이더라. 아니다 65층이더라'로 싸웠다. 63 빌딩이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야외 학습을 위한 견학으로 63 빌딩에 오는 학교도 있었다. 나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1년에도 몇 번씩 63 빌딩에 놀러 갈 수 있었다. 지방에 사는 친척 동생을 만날 때면 이렇게 자랑을 했다.
"너 63 빌딩 가봤니?"
63 빌딩에 가면 재미있는 것이 많았다. 수족관도 있고, 사진을 찍어 주는 곳도 있었다. 사진을 찍고 63 빌딩 배경을 합성해서 인화해 주는 사진이었는데 필름 카메라밖에 없던 당시로서는 그저 신기한 기술이었다. 무엇보다 63 빌딩에는 거대한 화면의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아이맥스 상영관을 도입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아이맥스는 1985년부터 운영되던 63 빌딩 아이맥스 영화관이었다. 나는 지금 아들만 할 때 아이맥스를 처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많이 상영했다. 거대한 폭포가 떨어지고 새까만 밤하늘에 가득 찬 별을 보여줬다. 대자연이 한눈에 보이지 않게 앞으로 다가오자 너무 진짜 같아서 무서워했던 기억이 난다.
사이공의 63 빌딩 사이공 스카이덱. 아들은 마치 30년 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호기심으로 가득 차 빨리 올라가고 싶어 하다가 막상 엘리베이터를 타자 긴장했다.
"얼마나 빠르게 올라가는 거예요?"
"한번 재볼까? 귀가 웅웅 거릴 수도 있어. 그러면 침을 삼키면 돼."
"올라가는 느낌이 나요. 왜 이렇게 빨라요? 이 정도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거 아니에요?"
모니터에 빠르게 올라가는 층수 표시를 보고 아들이 말했다. 아들은 빠르면 무조건 우사인 볼트다. 우사인 볼트가 달리는 것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친구에게 듣고 온 것 같다. 우리는 우사인 볼트를 타고 사이공 스카이덱 전망대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360도로 펼쳐진 사이공의 야경이 삼부자를 맞이했다.
전망대는 전세라도 낸 것처럼 한산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사이공 스카이덱은 도시의 밤을 가장 높은 곳에서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이공 스카이덱은 마치 삼부자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 같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삼대가 베트남 현지로 어렵게 총출동했으니 차분하게 베트남을 감상하라는 듯했다.
사이공 스카이덱에 오르니 1군 지역의 명소뿐만 아니라 호치민의 다른 지역들도 한눈에 들어왔다. 주요 방향별로 6개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모든 망원경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사이공 중앙 우체국의 모습과 전쟁 박물관의 모습도 보였다. 큰 광장과 베트남의 영웅들의 동상도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빈탄군 쪽에는 호치민의 새 얼굴 '랜드마크 81'도 보였다. 첨탑과 유사한 형태로 높이 뻗어 붉은색 조명이 밝게 빛나는 랜드마크 81이 우리 쪽을 향해 '이제는 내 시대'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전망대의 다른 한쪽에는 예전의 사이공에서 이용하던 인력거로 만든 포토존도 있었다. 삼부자는 사이공 스카이덱에서 베트남의 어제와 오늘을 천천히 느꼈다.
"아빠, 이건 뭐예요? 여기에 옷이 많아요."
"아오자이라고 베트남 전통 옷이야. 전시해놨네."
전망대 한 켠에는 시대별로 변화된 아오자이를 전시해 놓은 곳도 있었다.
"엄마한테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데요? 이거 하나 사가면 안 돼요?"
아들이 베트남에 와서 처음으로 엄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래 네가 엄마 없이도 며칠을 보낼 정도로 컸구나' 싶어 기특했다. 엄마에게 예쁜 옷을 선물할 생각을 할 만큼 멋있는 아들이 되어간다.
"응 이 옷은 파는 게 아니네. 시간 되면 벤탄시장에 가서 이 옷 달라고 하자."
"그런데 이 옷은 엄청 비싸겠죠? 백만 원도 넘지 않을까요? 그래도 난 조금만 더 모으면 살 수 있어요."
아들은 아직 물건의 상대적인 가치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이아몬드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석이라고 하니 다이아몬드 하나만 있으면 큰 집을 몇 개는 살 수 있다는 식이다. 아들은 반짝거리는 실크로 만든 아오자이가 좋아 보였는지, 몇 년 동안 세뱃돈이니 선물이니 받은 자기의 전 재산보다 더 큰돈을 불렀다. (아들은 모든 돈을 잊지 않고 더하고 있다.)
"아빠, 대신 나 이거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아들은 전망대의 기념품 코너에서 백만 원짜리 아오자이 대신 노트를 하나 골랐다. 아오자이를 입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는 베트남풍의 그림이 그려진 노트였다.
"한국에 가면 이 노트를 쓰고 싶어요. 그림이 베트남 같이 생겨서 좋아요."
아들은 남산타워에 가보지 못한 한을 베트남의 63 빌딩 사이공 스카이덱에서 풀었다. 아이맥스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고속 엘리베이터를 탔고 망원경으로 도시의 반짝임을 보았다. 할아버지와 함께 인력거를 타고, 아빠와 함께 하늘 위 구석구석을 누볐다. 아마 아들은 베트남 그림이 그려진 노트를 가지고 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30년 전 63 빌딩을 자랑하던 나처럼.
"너 사이공 스카이덱 가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