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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an 26. 2022

아메리카노와 핸드크림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 들렀다가

도서관 1층에서 운영하는 까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러 들어갔었다.


커피 한 잔에 1500원이기에

설사 원두를 좋은 걸 쓰지 않는다고 해도

감안할 수 있는 가격대였다.

게다가 좌석에 앉아서 책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니 불만이 있을 리 없다.

심지어 리필도 된다. 아메리카노 1000원에.


사실 커피맛은 향이 절반이다.

커피를 들이킬 때

코로 먼저 커피향이 들어오고

그 다음에야 커피가 혀에 닿기 때문이다.

커피의 향이 먼저 반겨주고

혀로 그 맛을 느끼고

목넘김 이후에 다시 잔향과 맛이

그 커피의 맛을 결정한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커피의 향은 중요하다.


그런데

이날 나는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커피향이 내 코에 닿기도 전에,

그 향을 옆으로 내리쳐버리는

로션향을 맡아야 했다.

 

로션향이 나쁠리는 없겠으나

커피향을 대체하게 되면

역하게 된다.


로션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가성비좋은 까페였으나

일하시는 분의 손에 묻었던

핸드크림향이

커피향을 지배했고

머그컵 주변으로

내 입이 닿을때마다 그 향도

코로 같이 들어왔다.


나는 커피를 마신 것인가

핸드크림을 먹은 것인가.


지금 이렇게 주절되는 이유는

그렇게 며칠 후

신촌에 한 까페에 들어와서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이번에도 로션향이구나'


까페에서 일을 해봤던 아내가 그러더라.

까페에서 일하다보면

워낙 손에 물을 많이 묻히기 때문에

핸드크림을 많이 바르게 된다고.


정작 그러다보니

자칫 바리스타분들이 본의 아니게

자신이 만든 커피에

핸드크림 향을 함께 감미해버리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프로 바리스타분들은

그래서 핸드크림도 조심스러워 한다는 것을

어디서 읽어본 것도 같다.


만약

한 잔에 6000원 돈이 넘어가는

커피를 주문했을 때

핸드크림 향이 난다면

나는 아마도 억울해서라도

해당 바리스타에게 얘기를 할 것 같다.

그나마 도서관 까페의 1500원짜리 커피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마저도 일정한 패턴으로 자주 방문하게 된다면

핸드크림 향의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 맞겠다 싶다.

 

커피 한 잔을 대접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세상 뭐하나 쉬운 것이 없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성취의 경지가 생기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삶의 권태가 조금이나마 중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다만 누군가는 이 까다로움을

화,짜증으로 반응해서 문제를 더 일으킨다는 점이다.

나는 그러지는 말자.

그나저나 콜드블루라떼를 이미 마신 상황에서

핸드크림향의 아메리카노를 리필해 마시고 있는 상황이라

소변이 마려워진다.

이럴때 굳이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고

다녀오기도 귀찮다.

그냥 주저리주저리 글 하나도 썼겠다,

이 정도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둘째아이가 수영하고 있는

문화센터 화장실이나 이용할 까 고민이 드는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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