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폭우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지독한 악취와 혼돈 그 자체로 보이는 괴이한 공간의 어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수해복구 봉사를 신청한 날은
너무도 맑은 가을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합정역에서 출발해서 대림역에서 하차했는데
그렇게 날씨가 좋을 수 없었다.
날씨가 좋았던 만큼
내가 작업해야했던 그 공간은 더욱 대비적으로 어두웠고,
포근할 정도의 맑은 햇살과 바람만큼
지하실의 찰박찰박한 고인 물을 장화로 밟는 기분과
코를 찌르다못해 뇌를 헤쳐놓을 것 같은 진한 하수구 냄새 그 이상의 악취가 대비되는 순간이었다.
처음에 대림2동 주민센터에 가니 이미 많은 봉사자분들이 모여있었고,
몇몇 공무원 분들이 안내해주고 있었다.
봉사 자체가 워낙 낯설은 나이기에 (그럼에도 무려 사회복지학과를 나왔다. 봉사경험이 거의 없는 사회복지학 전공자랄까) 그저 일행 뒤를 따라갔다.
작업은 매우 단순했다.
이번에 침수된 장소는 지하 상가인 동시에 생활공간이었는데
그 공간의 모든 짐을 밖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다행히 봉사인원이 20명은 되었기에
좁은 공간에 일렬로 들어가서 마대자루에 침수된 생활쓰레기 및 가재도구들을
손에 손으로 전달하면 되었다.
워낙 운동도 안하는 몸이라 괜히 방해만 되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딱히 힘을 쓸일은 많지 않았다.
막판에 작업속도를 내느라 냉장고를 옮길때 애먹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그럼에도 내가 이 봉사가 처음이듯이
이날 나와 함께 작업했던 남자 봉사자들은 전부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작업을 하다보니 그 이유도 알 듯 했다.
힘이 드는 것보다
냄새와 싸우는 것,
보는 것만으로도 혼란스러운 이 공간에서
뭔가 얼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 고통으로 다가온다는 점이었다.
지하에서의 작업은 30~40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특히 가장 일선에서 짐을 넣고 싸매는 분들은
순간순간의 악취가 폭발하듯 퍼져나올때 상당히 힘들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0분 정도 작업하고 나와서 맑은 바깥공기를 마시고,
다시 작업하러 들어가는 일을 반복했다.
원래 봉사시간은 9시부터 13시까지였으나,
막판에 속도를 내어 상당한 짐들을 빼낼 수 있었고, 작업은 12시에 일찍 끝낼 수 있었다.
한가지 씁쓸했던 점은 같이 봉사하던 분들은 두 부류로 구분되었는데
나처럼 1365 봉사포털을 통해서 신청한 단기 봉사자들과
이 지역 주민들로 이루어진 봉사자들이었는데, 지역 봉사자분들은 주로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이었다. 이 분들의 역할이 이런 시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봉사를 욕되게 하는 행동 또한 목격할 수 있었다.
침수된 가재도구들을 한아름 인도에 꺼내놓았을때 쓸만한 물건들이 있는지 뒤지고, 가져가려 했다는 점이다.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말려서 못하게 하긴 했으나, 이 아비규환같은 지하공간에서도 아직 젖지 않고, 쓸만한 가재도구 또한 분명 있었기에 어떻게든 하나라도 챙기려하는 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헛웃음이 난 것은 이웃을 돕고자 하는 서민들이, 정작 수해를 당한 또다른 서민의 재산, 물건에 탐을 내고 있는 그 장면 자체의 비극성 때문이었다.
우연이었겠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 한 명도 알고보니 내가 일했던 바로 이 장소에서 이틀 전에 이미 봉사를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가 신청했던 날에는 남자 봉사자가 아무도 없었기에 자신 한 명과 공무원, 그리고 지역 봉사자분들만 있어서 많은 짐을 뺄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틀 후에 작업한 내가 운이 좋았던 셈이다. 힘 좋은 봉사자들이 넘쳐났으니까. 한편으로는 그 현장에서 학생을 같은날 만났다면 또 얼마나 반가웠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는 수해복구 현장에서 대부분 가재도구를 빼내는 일들은 다양한 지역구에서도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자원봉사 포털을 검색해보니 확실히 수해복구 봉사모집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https://www.1365.go.kr/vols/main.do
하지만,
오늘 다시 검색해보니 관악구에서 도배장판 작업 보조 봉사를 구한다는 게시글이 보였다.
아, 이걸 보니 왠지 시간될때 이번에는 관악구로, 그리고 수해민의 터전을 다시 정상화시키는 도배 장판 작업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천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무언가의 힘이 다시 자원봉사 신청칸을 클릭하도록 이끌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