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름에 먹는 아이스크림 상호인 '#설레임'에 더 익숙하니까.
'설렘', '설레임' 바른 표기 우리말 바로 쓰기
'설레다, 설레임'을 쓰기도 하지만, 표준어는 '설레다'이므로, 명사형도 '설렘'이 표준어입니다.
그렇다, 설레임은 바른 표기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뭐 어떤가?
중요한 건 메시지다.
최근에 인생의 의미에 대해 더 많이 고민을 해보았는데
우리는 대체 왜 살아야 하고
무엇을 삶의 의미로 갖고 살아야 하는가??
정답은 각자 모두 다르겠지만
요즘 들어 강렬하게 떠오른 단어가 바로 '설렘'이다.
그렇다. 우리는 '설렘' 때문에 이 삶, 그렇게 어렵고 괴롭다는
#인생 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는 지금 나에게 묻지 마라.
하지만 적어도 삶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설렘'이라는 우리 각자의 감정을 떠올려보자.
이보다 좋은 기분이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설렘' (그렇다, 나는 사랑보다 설렘을 더 우선으로 생각한다. 사랑은 너무나 많은 정의 때문에 추상적이라서 분명치 않다.
그런데 사랑을 추동하는 힘도 설렘에 있다. 설렘 없이 시작하는 사랑이 있을까)
짝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가는 그 기분,
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
혹은 부모님 등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 선물을 준비할 때의 그 기분,
(관례에 따른 억지스러운 선물, 혼수, 예단을 얘기하는 것이 아님)
내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공부의 결실을 기다리는 기분(합격 발표일)
심지어 새로 출시한 아이폰을 구매하고 기다리는 기분, (그렇다. 쇼핑의 즐거움도 바로 설렘에 있다.)
열심히 운동한 후 체중계에 올라갈 때의 그 기분
카톡 메시지보다 손편지를 받아 봉투를 뜯을 때의 그 기분
군인이 휴가를 기다리는 그 기분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기분
종교를 통해서 신을 만난다는 그 기분,
등등...
모두가 설렘이 함께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범주를 설렘이 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설렘'이 있으면 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설렘'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내가 '설렘'을 느끼는 일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려보자.
나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내가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을 볼 때마다 '설렘'을 느낀다.
출간되기를 기다렸던 책이 나오는 설렘, 그 책이 내게 배송되는 설렘, 혹은 그 책을 서점으로 갈 때의 설렘....
즉 뭔가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설렘은 아주 작은 것에도 찾을 수 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작은 일에서만 설렘이 있지 않을까 싶다. 대형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설레지는 않는다. 즉 입주하는 날이 다가오면 설레겠지만 막연하게 서울에 있는 큰 아파트를 언젠가는 사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설렘의 감정보다는 욕망에 가깝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욕망도 삶을 지탱하게 하는 요소가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욕망보다 '설렘'을 추천하고 싶다)
역으로 지금 자신의 삶에 '설렘'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 시간을 갖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
언제 우리는 설레어 왔던가??
다만! 설렘에도 바람직한 것과 그렇지 않음이 있다.
나의 설렘을 절대화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고
나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다.
로또를 사면? 우리는 발표하는 날까지 '설렘'이 있다.
그렇다고 로또에만 의존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을 것이다.
쇼핑, 소비는 설렘을 준다. 그렇다고 소비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물론 로또도, 쇼핑도 절대악은 아니다. 적정선에서
우리의 삶에 큰 활력을 줄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도 잦은 설렘의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엄청난 소비상품이 넘쳐나고 그에 따른 수요도 폭발하고 있는 것,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한잔에도 적지 않은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은
어쩌면 팍팍한 삶 속에서 바로 이 '설렘'을 찾기 위한 각자의 발버둥이 아니겠는가?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는 설렘이 없어도 '맛집'을 찾아가는 식사는 얼마나 설레던가?
다만 연쇄살인마에게는 '살인'도 '설렘'일 수가 있다.
그래서 모든 '설렘'이 용납되는 것은 아니고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해악을 ,
혹은 자신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설렘'을 느끼게 하는 수많은 일들을 찾아 나서는 것에 있다.
인생의 묘미는 바로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을 찾아 나서는 모험'에 있지 않을까.
직업을 택할 때도 '설렘'이 '연봉'보다 더 우선시된다면 내 삶의 풍경이 바뀌지 않을까.
한편, 현실의 문제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직업에 어떠한 '설렘'도 없다면 업무시간 외에
'설렘'의 요소를 더 많이 찾아내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인생은 고통 가운데서도 충분히 살아낼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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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언으로 '설렘'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저출산 문제에 대한 관점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출산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비혼을 선언하거나 출산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비혼과 출산 거부를 하는 선택에도 '설렘'이 있는가를 고민해봐야 한다.(막연히 힘들다는 것은 좋은 이유가 아니다) 혼자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설렘'보다는 '두려움'이나 '권태'가 있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혼을 했는데 출산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그 과정에 대한 '설렘'이 있다면 역시 출산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힘들어도 설레는 일이 있고, 힘들기만 한 일이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한 여성의 선택에 있어서 결혼 및 출산이 커리어를 쌓아가고자 하는 '설렘'을 저해한다고 판단된다면 그 선택 또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