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셉션의 줄거리(줄거리를 읽기보다 쉬어 가는 마음으로 영화를 직접 보시길!)
이 영화는 두 가지 줄기로 되어있다.
첫 번째는 대기업 총수 사이토의 욕망 실현을 위해 코브의 인셉션 팀이 뭉쳐서 사이토의 맞수 기업 후계자의 무의식을 변화시키는 미션수행이다. 즉 상대 기업의 후계자가 제대로 기업을 이어받지 못하도록 그의 내면을 변화시키면 사이토는 엄청난 이익을 얻게 되기에 큰돈을 들여서 코브의 팀을 구성하고 자신도 합류한다.
두 번째는 주인공 코브와 아내 멜의 이야기다. 무의식의 저 끝의 세상에서 말 그대로 꿈같은 둘만의 세계를 창조하며 지냈으나,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아내 멜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아내는 결국 현실을 꿈으로 여기고 현실로 다시 돌아가자고(사실은 꿈으로) 남편 코브를 추궁하며 자신은 호텔서 투신한다. 이 과정에서 코브가 살인범으로 몰려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남겨둔 채 타국에서 인셉션 팀을 꾸려 살아가고 있다. 사이토의 청탁을 제대로 수행해 내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이론 중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상당히 중요하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라는 삼각형을 그려보라, 아들이 나는 어머니를 욕망하는데, 아버지는 나와 엄마의 사랑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방해꾼이 된다. 즉 아버지는 법, 질서, 도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 억압을 받아들여서 엄마에 대한 욕망을 포기할 때 진정한 사회생활이 가능하게 된다. 결국, 무의식적 욕망은 억압되고 이 욕망은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어서 해소되는 것이다.
사실 영화 [인셉션]에서 이 구조는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그러나 살짝 그 면모가 보이는 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인셉션을 당하는 로버트 피셔와 그 아버지의 관계다.
사실 프로이트는 임상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들의 관계가 유독 좋지 않음을 발견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유추해서 만들었다. 그만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무의식적 욕망의 분출과 억압의 라이벌인 셈이다. 영화상으로도 기업의 후계자 피셔는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전형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다. 그러나 코브의 팀들이 피셔의 깊은 무의식에 들어가서 아버지가 얼마나 피셔 자신을 사랑했는지를 인셉션하고 나온 것이다. 따라서 꿈에서 깨어나면서 피셔는 뭣도 모른 채 자기가 아버지에 대해 오해했었고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서 살아갈 거라고 울면서 고백한다. 물론 실제로 피셔의 아버지가 피셔를 사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코브의 팀이 심어놓은 이야기일 뿐이다
.
* 무의식이 의식을 결정한다.
정신분석은 또 하나의 결정론이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의식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나’인 셈인데, 문제는 그 무의식이 의식 저변에 넓게 깔려있어 의식은 단지 무의식의 욕망을 실현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욕망을 다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되기는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을 통한 징후가 성인기에 들어서 갖가지 정신질환으로 드러난다고 하니 이러한 증세의 원인의 탓을 누구에게 돌리겠는가?
-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의식적 욕망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 행동하게 된다면 그것을 과연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따라서 자유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정신분석의 무의식을 부인하거나 그 영향력을 축소한다. 마치 유전학적 결정론처럼 지금 내가 선택한 자유의 행동이 이미 결정된 것들이라고 하면 인간의 주체적 삶의 의미는 존재하기 힘들어진다.
-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인셉션의 구성상 여기서는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 그의 욕망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타인의 무의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나보다 타인이 나를 더 잘 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결국, 나의 삶은 타인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문제가 생긴다. 나의 현실 속에서의 선택이 무의식에 의한 선택인 것도 왠지 억울한데, 심지어 타인이 조작한 무의식 때문이라면? 나의 삶은 결국 타자에 의한 삶이 된다.
*현실과 꿈의 경계
영화 속에서 아내 멜은 끝까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니 감독은 오히려 영화를 보는 관객조차 무엇이 현실이고 가상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인 혼동을 준다. 현실과 꿈을 구분하게 도와주는 ‘토템’ 이 영화 마지막의 해피엔딩에 찝찝함을 선사한다. 이 작은 팽이가 쓰러져야 현실인데,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쓰러질 듯한 팽이가 다시 도는 것 같은 착각을 관객에게 주고 끝이 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멜은 분명 죽은 사람이지만, 코브의 꿈속에서는 항상 악몽처럼 그를 따라다닌다. 그래서 인셉션의 임무 중에서도 끝까지 코브 앞에 나타난다. 그렇다면 코브가 자기 아내와 무의식의 끝에서 오랫동안 함께 살 때의 상황도 결국 꿈속에서의 삶이었는데, 코브 자신의 꿈속에 악몽처럼 나타나는 아내도 감각적으로 보면 살아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리얼하다’라는 감각이 현실을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아내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그냥 영원한 꿈속에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심지어 두 사람이 함께 꿈의 무의식 속에서 살지 않아도, 자기 꿈속에서 만들어낸 환영과 함께 살아도 되지 않을까?
* 시간과 공간의 왜곡과 영화 인터스텔라의 조우,
인셉션 감독 놀란은 후에 인터스텔라라는 우주 영화를 만든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의 모호함이라는 측면에서는 인셉션이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와 비교되지만, 시간과 공간의 왜곡에서는 본인 영화 인터스텔라와 비교된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의 왜곡
인셉션에서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즉, 꿈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더 길다. 실제로 우리는 꿈을 꾸면서 수많은 이야기를 경험하는데, 정작 현실에서의 시간은 20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꿈속의 이야기만 순서대로 읊어 봐도 1시간은 족히 넘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꿈의 시간은 짧다고 하니, 이는 마치 새로운 차원의 시간개념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감독은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영화상에서 놀라운 시간을 창조해낸다. 영화는 현실-꿈1-꿈2-꿈3-꿈4단계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해 놓았는데, 한 단계 깊은 무의식적 꿈으로 들어갈수록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진다. 그래서 마지막 4단계의 무의식의 끝에서는 엄청난 세월이 지나간다. 코브와 멜이 실제로 50년 가까이 살았었고, 같이 늙어가다가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의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주 공간에서의 시간의 왜곡이 나온다. 지구의 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가기에 우주 공간에서의 몇십 분의 낭비로 지구에서 수십 년이 흘러가 버린 장면에서 관객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실제로 중력이 강한 행성일수록 시간이 느려진다는 현재 밝혀진 과학적 사실인 만큼 우리는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 영화를 통해 깰 수 있다.
-공간의 왜곡
꿈의 공간에서 우리는 현실과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묘하게 뒤틀린 공간임을 깨닫는다. 인셉션 팀에서 설계를 맡은 애리어든이 코브와 함께 꿈속에서 공간에 변화를 주는 장면 또한 압권이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모호하고, 도로가 벽이 되고, 천장이 되는, 그러한 공간의 왜곡이 꿈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직접 꿈을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의 ‘창조’와 다를 바가 없다. 영화상에서 애리어든이 코브의 캐스팅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코브와 아내가 둘밖에 없음에도 무의식의 끝에서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신과 같아지는 자신들의 무의식 공간의 창조능력에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공간의 왜곡이 인터스텔라에서는 웜홀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주인공 집의 벽장 안과 그 이면의 공간, 시간과 공간이 함께 뒤엉키는 시공간의 이미지를 놀란 감독은 멋지게 그려내는 것이다.
- 결국, 놀란 감독은 가장 미시적인 공간과 가장 거시적인 공간을 소재로 극과 극의 영화를 모두 완성한 셈이다. 인간 개인의 무의식이라는 꿈의 공간과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을 말이다. 두 공간은 전혀 다른 범주 같지만 결국 둘 다 무한하고 영원하다. 인간의 내면 깊숙이 계속해서 들어갈 수 있고, 심지어 물질 또한 계속해서 쪼개면 미분처럼 무한하게 지속할 수 있다. 우주는 말할 것도 없다. 계속해서 팽창하고 무한하고 영원의 시간을 포함한다. 결국, 가장 큰 우주의 광활함과 영원성은 가장 작아 보이는 인간의 내면의 무한한 깊이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