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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02. 2020

[초월성의 재건]19세기 신학의 내재성1-칸트와 헤겔

스탠리 그랜츠의 [20세기 신학]중에서 


흄에 의한 계몽주의의 위기속에서

신학은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생기는데,

기존 정통주의로 돌아갈 것인가?

아님 회의적 합리주의의 길을 택할 것인가?;

그러나 이런 두 선택지를 거부하고 내재성과 초월성 사이에서 윤리,지성,감정의 영역을 통해

자신만의 신학의 영역을 내고자 한 계열이 바로 칸트,헤겔,슐라이어마흐다.



1[칸트]


19세기 사상가들은 인간의 삶에서 종교가 차지할 수있는 위치를 별도로 지정하여 계몽주의에 의한 곤경을 극복하려고 했는데 칸트는 종교를 삶의 실천적 영역, 도덕적 영역으로 제시하고자 했다.

당시 흄의 회의주의로 인해서 신학에 대한 신뢰또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칸트는 감각은 단지 원자료만 공급할 뿐 실제로 인식의 과정이 진행될 때는 지성이 원료의 상태로 주어진 그것을 체계화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흄의 회의론을 넘어선다.

무엇보다 칸트는 물자체 즉 인식의 주체와 아무런 관계없는 대상을 전제함으로써 인과론을 초월하는 영역을 만들어 낸 셈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앙에 여지를 만들어 주기 위하여 인식을 부인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신앙은 인간 이성의 또 다른 영역, 실천적 측면에서의 이성에 속하는 것이었다.


실천이성

칸트는 인간이란 감각 경험의 존재일 뿐 아니라 도덕적 존재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인간과 이세상의 관계는 과학적 지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활동하는 하나의 무대이며 도덕적 가치의 영역이라고 봄

정언명법,- 당신의 행동의 준칙이 당신의 의지에 의하여 보편적인 자연법칙이 된 것처럼 행동하라

인간적 삶의 도적적 차원의 목표는 가능한 한 이성적으로 되는 것.

인류를 위한 최고선은 덕과 행복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생의 삶속에서 덕이 항상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덕을 끼치는 삶이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미래적 삶이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 바로 신의 존재가 요청되는 것이다.

능동적인 도덕적 행위자라는 인간 보편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자유가 필요하다.

현상적 차원에서는 물리적 존재로 자연의 법칙에 예속되어 자유로워 보이지 않지만 현상계 이면의 가상적 영역에서 각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도덕적의무는 자유를 전제로 한다.

결국 칸트의 논증에서 인간은 두 영역에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도덕적인 측면(자유로운 행위자)

과학적인 측면(물리적인 인과법칙 아래 놓인 존재)

합리적종교(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칸트의 연구는 도덕에서 종교로 넘어가는데, 이는 종교는 도덕을 위한 궁극적인 목표를 제공하기 때문에 이러한 확장은 불가피했다.

원죄라는 특정의 교리를 재도입-계몽주의는 원죄개념을 비판했었음.

그렇다고 칸트가 계몽주의와 완전히 결별한 것이 아니며, 계몽주의의 낙관주의를 유지했다. 즉, 인간에게 근본악은 존재하지만 그의 행위는 자유롭기에 그것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론에 있어서도 종교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으로 보았던 그의 관점이 적용된다. 창조의 목적은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류를 만드는 것이고 이러한 관념은 인간의 이성 속에도 존재한다.따라서 도덕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는 관념의 원형으로서 경험적인 본보기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럼에도 기독교적 전통을 신중하게 보고자했기에 역사적 모범으로서 예수가 있다고는 덧붙이고 있다.(이 세상 최고선을 위하여 고난에 직면한 예수)

결국 기독교를 보편적인 이성 종교에 예속시킴 . 그에게 있어 기독교는 순수한 종교적 신앙을 이루어가는 점진적 과정의 한 단계인 윤리적 사회의 구현을 위한 방편에 불과함

또한 순수한 이성의 종교만이 성경의 해석원리로 보았다. 따라서 그는 진정으로 도덕적원리들을 자기 자신의 성품에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외에는 인간에게 다른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은혜 - 구원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즉 종교개혁의 핵심인 은혜와 행함의 순서를 뒤집어 놓음, 덕행으로부터 사죄의 은혜로 진행하는 것이 정도라고 주장.

결국 칸트를 통해 신의 실재, 영혼의 불멸, 인간개인의 자유등의 교리가 추론됨.

칸트의 이러한 신학적 입장은 결국 계몽주의 시대의 흐름과 다를바 없는 이성중심의 신앙이었다.

그럼에도 이성의 시대와 구분되는 점은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이성이 아니었다는 점. 종교의 근본이란 인간 존재의 어떤 특정한 차원, 즉 이성의 실제적인 양상과 연관되어 있는 도덕적 조건성의 경험. 즉 칸트는 인간 존재의 차원(신, 영혼불멸,자유)을 설명하는 데 필요하다고 보았던 형이상학적인 요청들만 긍정. 도덕적 보증자로서 필요한 속성들만을 신의 본성에 포함시킴.

그는 고전 기독교사상처럼 신학을 기초로 도덕을 세우지 않고 도덕을 기초로 신학을 세웠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율적인 인간의 이성이 ( 계몽주의에서 말하는 순수 이성이든, 칸트의 실천이성이든 ) 보편적으로 듣게 되는 신의 음성은 인간 자신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인 것이다. 그것은 저 초월적인 저편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정리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서 계몽주의 시대의 인간의 경험과학의 측면을 증명하는 동시에 그 한계를 제시함. 즉 물자체와 같은 가상계의 대상은 과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님.

그 한계점에서 실천이성의 영역이 감당할 부분을 제시하면서 신의 존재가능성의 자리를 남겨둠.

그러나 이러한 노력속에서도 신은 도덕적 삶을 이루기 위한 목적의 수단으로 요청될 뿐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내재적이며 이성적인 영역 안에 머무를 뿐이다.



2 [헤겔]


칸트가 인간 삶의 윤리적 차원에서 초월적인 것들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면 헤겔은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위하여 지적인 차원에 주목하였다. 그에게 궁극적인 진리는 인간 역사의 진행과정이며, 그 과정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능력과 연관시켰다. 인간이 역사를 이해할 때 신은 자기 인식에 이른다.

이성의 시대는 역사성을 결여했고 오직 과학적 지식으로 진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속에서 진리와 신을 찾았다.

그에게 있어 사고의 구조와 실재의 구조는 하나이며 그 둘은 하나의 동적인 과정으로 보았다.-철학과 역사의 연관성

그는 신을 자연 안에서가 아니라 인간 이야기의 전 과정 이면에 놓여있는 이데아 안에서 찾고자 희망하였다


정신. 과정으로서의 진리, 변증법

정신-geist 헤겔에게 정신은 실체일뿐 아니라 운동하는 주체,운동,과정이다. 이것은 인간 안에 존재하면서도 인간의 정신과 동일화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세계의 내적 존재이며 절대적이면서도 유일한 실재다.

세계의 과정은 다시 정신의 운동.

정신은 세계의 과정을 통해 객관전 형태를 띠고 완전한 자기인식에 도달한다. 자연과 역사속에서 모든 과정들이 하나의 통일된 합일체를 형성.


과정으로서의 진리- 헤겔철학에서 중요한 점은 진리를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진리는 과정 그 자체인것이다.

헤겔은 추론의 대상이 과정 속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이성이 추론의 대상을 파악하는 행위를 개념화라고 불렀다.

그리고 모든 개념들을 끌어모아 최종적 개념화를 '관념' 혹은 절대의 개념화라고 부름. 개념화 속에 사고와 실재의 융합이 이루어진다.

역사는 정신이 자의식을 찾아가는 것. 곧 역사가 진리이다.

인간 역사에 있어서 여러 다른 시대는 정신이 자기-발견을 이루어가는 길목에 놓여져 있어서 통과해 가게 되는 단계들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지속적인 역사의 과정 이면에 놓여있다.

변증법-정적 존재에 관한 전통적개념을 과정이라는 동적개념으로 대치, 진리의 능동적 과정은 그 자체 안에 되어감과 사라짐을 포함. 모든 것이 유동적인 만큼 진리에 대한 탐구는 진리가 출현하는 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실재는 유동적이며, 가능성으로부터 현실로 발전하는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쳐 움직인다. 사고 역시 그러한데 변증법은 실제로 존재하는 실재를 묘사한 것이다. 사고와 실재를 헤겔은 긴밀하게 연결한다.

사고는 반드시 변증법(정립-반정립-합)이라는 법칙의 지배를 받는 하나의 과정을 통해 움직인다. 변증법은 정신자체 혹은 영원한 이성이 인간의 사고 안에서 자기를 실현해 가는 역사에 대한 하나의 묘사인 셈이다.

절대정신은 역사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신과 같다. 이처럼 철학적 이해는 신 지식의 경로가 될 수 있다.


기독교

헤겔은 하나님의 '자기실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즉 그의 사상 중심에 있었던 철학적 진리는 바로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이었다. (성육신, 철학적진리의 종교적 표현)

그는 성육신교리를 통해 기독교를 자연종교와 예술적 종교의 종합이라고 주장했다.

인간과 신의 일치되는 과정에서 본질적 존재, 표현된 자기존재, 그리고 자기 지식이 작용한다 (삼위일체와 유사)

1)본질적존재- 순수하고, 추상적--> 본질적 존재인 하나님

2)표현된 자기존재- 추상적 정신이 세계창조를 통하여 존재로 출현--> 우주창조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 이외의 것들과 관계맺음

3)자기지식- 정신이 자의식으로 접어듬-->인간 안에서 하나님은 자기로 돌아옴.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되는 종교적 생활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인식함. 실재 안에서의 화해

성육신 즉 예수의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의 일치라는 사상이 역사적으로 표출된 것. 신-인 일치의 보편적인 철학적 진리가 특정의 한 역사적 개인안에서 실현된 것임.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적 실현으로서의 정신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나타내는 부활을 위한 무대를 제공한다.

영향

포이에르바하- 하나님은 자기소외의 상태에 있는 인간일뿐.

맑스- 헤겔적 정신주의배격, 인간의 자기소외를 사회,경제적으로 설명

헤겔은 기독교신앙을 합리화하기 위한 유일한 길로 철학적 형태의 변형을 시도했음.

그러나 헤겔에 의해 기독교가 철학으로 변형됨으로써 선지자들과, 사도들, 교부들의 초월적 하나님은 내재적 세계정신, 곧 인간 역사 안에서 자신을 실현하는 절대정신이 되어버린다.

이 세상이 없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다. - 하나님은 이 세계를 필요로 함.

만유재신론- 하나님과 세계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나 동시에 구별되는 실재라고 보는 모든 견해 - 을 낳게됨.

전적으로 자족적 하나님을 지칭하는 유신론과 이 세계와 밀접한 하나님을 지칭하는 범신론의 중도노선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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