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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Feb 21. 2022

형태

쉼,

  형태. 그것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마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정확한 형태는 없다고.


  모든 시작적 사물에는 형태란 게 존재하는데, 그중엔 내 주변의 사람들도 포함될 것이고, 모든 생명에 존재할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고,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변해가는 것이 형태이기 때문이다. 형태란, 지금의 순간에도 변해가는 것이다.


  아끼던 유리컵이 깨졌다. 형태가 변했다. 깨진 조각조각하며 이것을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만약 저마다의 형태라는 게 존재한다면 나 또한 저 유리컵처럼 깨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형태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모되어 언젠가는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내가 언젠가 사라질 것을 염두한다면 정말 형태라는 게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사실은 강한 부정을 하고 싶었다. 형태라는 건 모두에게 정해진 것이다. 나는 애써 부정하려고 했다. 절대 바뀌지 않는 불변의 형체. 깨져버린 조각들이 모여서 빚어진 하나의 생명. 나는 움직이지 못했고, 변하는 것은 변형이 아니라는 짧은 뉘우침. 영원한 약속, 영원하지 못했던 계절, 그리고 지금의 하늘이. 또 빛 사이로 넘실거리는 그림자는 변할 수 없는 형태. 모든 사실을 애써 강하게 부정하고 싶다.


  늘 그래 왔을 것처럼, 모두 내려놓자. 어차피 나는 또 그렇게 빚어질 것이다. 깨지길 수백 번, 나는 또다시 똑같은 형태를 이룰 것이다. 토해낸 내 한 조각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똑같은 형태를 이룰 것이다. 그조차도 불안한 겁쟁이 같은 그림자. 모두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도리어 빚어진 또 하나의 하루가 굳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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