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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Mar 06. 2022

낙화

쉼,

내가 어릴 적 이야기다.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졌다. 주웠다. 색이 참 고왔다. 그런데 떨어진 쪽에 금이갔다. 다쳤나 보다. 그날부터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나는 어릴 적에는 과일에도 생명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보다 조금은 더 선명한 확신을 했다. 하나 그것이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진 않았다. 생명의 나약함을 알려주었으며, 또 어떤 날은 생명이 무쓸모 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주변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 존재가 무엇이 되었든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 들진 않는다. 생명이라 함은 그만큼 약한 존재니깐. 우리는 어려서부터 약한 존재 강한 존재를 구별하며 살아갔으니깐. 그냥 매우 약한 생명이 조금 더 강한 무언가에게 먹힌 것이라고. 그날 나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감나무가 떨어져 간다. 이곳저곳에 멍이 든 채로 싸늘함 주검을 받아들이는 감들의 눈빛이 애처롭다. 감 하나를 주워 한 입 베어 문다. 너무나도 달았다. 감나무 위의 새도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저 애처로운 눈초리를 받을 뿐이었다. 누군가 단정지은 생명의 끈이 이제는 놓일 것인가. 긴 시간의 고통 속에서도 찰나가 달았기에, 나는 지금이 처음으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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