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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Mar 09. 2022

달무리

쉼,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일지도 모른다. 나는 당신이 알려주고 싶었던 모든 것들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만남. 그 역시도 행운이다. 의미 없는 행동에도 웃음으로 대답하던 그립던 인자함이 내겐 행운이다. 살면서 단 몇 번을 보았어도 그것조차 행운이다. 나는 수십 번의 행복 속에 살았어도 불행했다. 그것을 알아가는데 건너간 시간들이 너무나도 길었다. 오늘 밤은 당신의 짙은 미소가 너무나도 보고 싶다.


  언젠가 당신의 손바닥 속에 내 얼굴이 묻혔을 때에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 속에서 살고 있었을 거다. 지금 난 당신이 살아가는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아직 한참은 멀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보여준 주름진 미소가 이제는 타인에게 헤프게 보여주고 있으니깐. 그로서 나는 이곳이 당신의 세계임을 확신한다. 어렸고 그렇기에 철없고, 행복했고 우울했던 지난날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나는 정확히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면 나는 더욱더 깊이 들어가겠지. 걸어도 걸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당신을 등 뒤에 두어서겠지. 어두운 산 중턱 날짐승의 설화가 이제야 사실임을 알았다. 어두운 길에 내 발자국 하나하나 비추어 주던 당신이 그립다.


  당신이 뒤에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기만 기다리며 천천히 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뚜렷하게 내 등 뒤에 서있던 당신을 기억하니깐. 어쩌면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저 앞 멀리멀리 떠나간 당신을 나는 무슨 수로 잡을 수 있을까. 그래도 발걸음은 쉬지 말아야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깐 천천히 걸어야지. 제자리에 멈추어도 앞이 캄캄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 어깨 위에 올라올 당신의 손바닥을 그리워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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