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진 Aug 03. 2022

그의 그림자가 드리운 밤

불명(不明)


  나는 무엇을 담보로 시간을 잃어가는 걸까. 저마다 너무나도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얻는 것이 없으니 시간도 빠르게만 가는 것 같다. 공평하게 나눠진 시간을 나는 누구에게 이토록 착취당하는 것일까. 그는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인물이지 않을까. 상상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는 존재.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너무나 다르지만 분명 똑같은 형태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오롯이 그의 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그의 그림자는 선명했다. 그리고 그만큼 탁했다. 그에게 조금의 변화가 온다면 분명 따라 변하겠지만. 왜인지 그림자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탁한 그림자는 사람의 존재와는 무관한 또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의 그림자는 당장이라도 독립적인 행동을 취할 것 같이 탁하였으며, 이는 우주 그 이상의 어둠이었다.

  고마웠을 거라는 것도. 가끔은 그림자와 완전히 대조되어 밝게 빛이 났더라도.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눌 땐 발끝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발끝 시선이 따라간 그 끝에는 무엇보다 선명한 그의 그림자가 보인다. 당신은 빛이 났기에 더욱 어두웠다. 나는 그런 모습이 굉장히 불안해 보였다. 사라질 리 없는 그 검은 꼬리가 아직도 나의 뒷걸음을 따라온다.

  기억은 차고 넘치고 시간을 이용해 추억으로 바꿔놓는다면, 나는 얼마큼의 시간을 사용해야 할까. 지나갔던 것들은 고개를 돌린다. 약속은 나를 배신한다. 그림자는 밤에도 여전히 어둡다.

매거진의 이전글 명확해진 답이 바꾸어 놓은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