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을 하다가..

by 이종덕

아침에 면도를 하려다가 내 얼굴을 보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 추접하게 쉬어버렸습니다. 자세히 보니 수염도 쉬었습니다.

수염이야 깎아버리면 그만이지만...

얼굴에 생기라곤 찾아볼 길이 없고 너무 초췌해 보여 염색을 했습니다.


설명서가 깨알 같은 글씨로 너무 복잡해서, 주의 사항이 너무 많아서 어렵게 어렵게 일을 끝냈습니다.
막상 하고 나니 설명서를 볼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두 가지 약품을 섞어서 머리에 골고루 바르고 10분 기다렸다가 샴푸를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염색뿐 만이 아닙니다. 필요 이상으로 간단한 일을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도 생각도..

그냥 하면 되는데 망설이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일어나지 않을 일도 근심하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당겨서 걱정을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을 "호모 도큐 멘티 쿠스"라고 한답니다....
생존 욕구와 안전욕구에 대한 과민 반응이 설명서 등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일종에 정신병인 셈이지요..

날이 갈수록 쫌생이, 잔소리쟁이, 또라이가 되어 갑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나중에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경멸했던 영감탱이의 모습으로...


어쨌든 염색하고 면도하고 머리를 감고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스킨 바르고 보습로션도 듬뿍 발랐습니다.

푸석 푸석했던 얼굴이 그나마 좀 나아졌습니다.

깊게 파인 주름은 어쩔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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