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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덕 Feb 26. 2019

빵과 커피 이야기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침을 느지막이 여유 있게 먹게 됩니다.

빵과 커피 그리고 계란 프라이 정도로 간단하고 부담 없게 뉴스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먹습니다.

아침시간의 여유가 참 좋습니다.

커피 내리는 소리와 향도 마음을 여유롭게 합니다.

냉장고에 뭔가 좀 있는 날은 소시지나 베이컨을 구어 곁들이기도 합니다.

해외출장을 가면 호텔에서 먹던 American breakfast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빵과 커피를 먹기 시작했을까?


지금은 아메리칸 블랙퍼스트가 되던 브런치가 되던 빵과 커피를 밥처럼 먹습니다.

이게 언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까?


빵과 커피는 구한말 문호가 개방되며 선교사들이나 서양 외교관들이 들여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들이 먹기 위해서지요.

조선에 서양식 빵이 등장한 것은 1885년 러시아의 외교관인 "손탁"에 의해서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고종황제는 정치적인 이유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손탁을 신뢰했고 지금의 중구 정동에 왕실의 땅과 집을 하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손탁 빈관"인데 손탁은 이곳에 모여드는 손님들에게 빵과 커피를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손탁 빈관"은 1902년 "손탁호텔"로 확장되면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빵과 커피 그리고 간단한 쿠키를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커피는 선교사인 아젠펠러의 기록에 의하면 손탁호텔보다 먼저 지어진 "대불호텔"에서 먼저 판매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처음으로 빵을 먹어본 우리나라 사람들은 빵을 지금의 건빵의 의미인 "면포"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부드럽고 단맛의 카스텔라를 "눈처럼 희 떡"이란 의미로 雪餻(설고)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나라의 빵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건빵이나 단팥빵, 다마고라고 불리는 계란빵이 인기를 끌었고 일본 제과점을 통해 일부 부유층에서

빵을 사 먹기 시작했습니다.


빵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설탕 그리고 우유


빵의 주재료는 밀가루와 설탕, 우유와 계란입니다.

설탕은 이인로의 "파한집(破閑集)에 처음으로 언급되는데 역사학자들은 삼국시대에 후추와 함께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설탕이 제조되고 유통된 것은 일본인들에 의해서입니다.

일본의 설탕회사인 대일본제당은 1922년에 평양에 조선제당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생산설비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원당을 확보하지 못해 생산을 해보지 못한 채 문을 닫았고 일본에서 수입된 완제품 설탕이 극소수의 부유층을 상대로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의 생산은 1919년 만주제분주식회사가 평양과 진남포에 공장을 세우고 제분을 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밀가루의 수요가 증가되면서 1931년에 용산에 풍국제분이 생겼으며 1935년에는 일본제분(주)이 인천에(현 대한제분), 그리고 같은 해 제등제분(현 삼화제분)인천 공장 등이 설립되어 밀가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도 인천에 밀가루와 설탕공장이 많은 것은 물류의 편리성 때문입니다.

설탕과 밀가루가 국내에서 생산되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제과업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 생겼던 제과업체 중 1934년 용산에 문을 연 풍국제과는 오리온의 전신이며 영강제과는 해태제과로 아직도 우리나라 제과산업의 중심에 서있습니다.


우유 또한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일본에 의해서 경성우유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우유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으며 180ml짜리 유리병에 넣어 독점 판매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유리병에 두꺼운 종이로 뚜껑을 씌운 배달 우유를 마셨던 기억이 납니다.

국민학교 때는 삼각형으로 된 비닐포장의 우유를 급식으로 받아먹기도 했습니다.

경성우유협동조합은 1945년에 서울우유협동조합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우리나라 우유산업의 모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스턴트 커피의 양산


본격적인 커피의 대중화는 6.25 전쟁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미군부대 PX에서 흘러나온 인스턴트 커피가 음성적으로 유통되다가 1970년이 돼서야 미주산업(MJC커피)과 동서식품(맥스웰하우스 커피)에서 생산 판매되어 본격적인 커피시장이 형성되었고 대중화되었습니다.

커피는 설탕과 함께 TV나 냉장고, 골프채 등에 부과되던 특별소비세 부과대상 품목이었으나 2000년에 특별소비세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동서식품에서 개발한 커피믹스(일명 봉다리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다방커피의 맛과 편리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2012년을 정점으로 년간 1조 2000억 원의 매출이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커피믹스의 시장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하여 2018년에는 7,000억 원대까지 매출이 감소되었는데 이는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의 확대와 디저트 음료 시장이 급속히 커피믹스의 시장을 잠식했고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홈카페 형태가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식품은 특히 가공식품은 식민지하에서나 전쟁을 통하여 유입되고 전파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트렌드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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