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덕 Feb 20. 2020

서른 살 피터팬의 생일과 스테이크

제 아들은 자폐입니다.

지난 주말 서른 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피터팬입니다.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단순함이 그대로입니다.


아들은 스테이크를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생일이 오기 한두 달 전부터 손으로 꼽으며 스테이크 먹으러 갈 날을 기다립니다.

아들과 함께 스테이크를 먹으며 그의 얼굴에 환하게 번지는 기쁨과 행복을 보았습니다.

스테이크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해하는 깨끗한 영혼을 보았습니다.

네 살 무렵

아이가 자폐임을 알았고 몹시 절망하고 힘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하는 원망도 컸습니다.

온종일 붙어 보살펴야 하는 아내의 고통은 훨씬 더 컸겠지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식당이나 백화점 같은 곳을 가면 갑자기 돌출 행동을 해서 난처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솔직히 많이 부끄러워서 한동안 되도록이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저의 이빨 하나가 충치가 심해서 발치를 했습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이고 씹는데 별 지장이 없어서 의사에게 그대로 놔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임플란트 가격이 엄청 비싸기도 했고요.

그때 의사의 말이 당장은 괜찮겠지만 임플란트를 안 하면 옆에 있는 이빨들이 빈 곳으로 쏠려서 더 큰 문제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고 온 가족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도 있는데 가족여행도 못 가고, 외식도 못하는 폐쇄적인 생활을 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왔습니다.

그 후로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틈만 나면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우나도 함께 가고 식당에도 마트에도 그리고 야구장에도 데리고 다녔습니다.

정말 난처하고 눈총을 받는 일이 많았지만 아이는 나름대로 조금씩 조금씩 사회와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식당에서 순서를 기다릴 줄도 알고 돌출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운 일이 글로 쓸 수 없을 만큼 많았지만 특수학교에서 초, 중, 고 과정을 마치고 2년제 전문과정도 무사히 수료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복지시설에서 적지만 월급도 받으며 제빵기술도 배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아들의 미래가 큰 걱정이긴 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아니 걱정이란 것 자체를 모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거짓말을 한 번도 안 한 아이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나쁜 짓을 한 번도 안 한 아이입니다.


식당을 나오며 내년 생일에도 스테이크를 먹자며 새끼손가락을 내밉니다.

그럼요,

그래야지요 그깟게 뭐 그리 힘든 일이겠어요.

저토록 행복해하는데요.

매거진의 이전글 전염병이 돌 땐 잘 먹어야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