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읽은 것을 짧게 정리해 보자.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김엄지, 문학과지성사, 2015년 11월
'소설 문장 실습' 수업을 듣고 있는데 가르치는 선생님이 무슨 글을 쓰는지 궁금해서 읽어본 책. (조금 충격이었던 것은 수강생의 반 정도는 선생님 책을 거의 안 봤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많을 수도 있다) 맨 처음 실린 「돼지우리」로 등단했다고 하는데, 10년 전 작품이라고 하지만 지금 읽어도 굉장히 파격적인 작품인 것 같다. 「삼뻑의 즐거움」, 「영철이」, 「미래를 도모하는 방식 가운데」 같은 작품들을 보면 굉장히 한국 찐따 남성의 심리를 엄청나게 잘 묘사하셔서 감탄했고, 「기도와 식도」, 「어느 겨울날」 같은 작품을 보면 섬세하고 예민한 여성의 심리 묘사하셔서 여기서도 감탄했다. 「고산자로12길」, 「느시」에서는 아싸 직장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여기도 무덤덤하게 사는 직장인 남성 심리를 잘 표현했다. 소설 속 캐릭터들이 대체로 사회 속에서 겉돌고 있는 인물들이 많고, 서술에는 감정이 별로 실리지 않고 약간 타자처럼 관조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장면과 장면이 후루룩 지나가는데 읽히는 속도가 빠르다. 개인적으로는 여성 화자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감정이 약간 더 실려 있어서 그런지, 더 마음에 갔다.
『초보자의 삶』, 스와보미르 므로제크, 하늘고래, 2006년 3월
전에 '100일 글쓰기 곰사람 프로젝트' 수업 때 참고용으로 읽었던 글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아예 책을 샀다. 시중에서는 중고책 밖에 구할 수가 없어서 어찌어찌 구했다. 요즘 말로 초단편소설이라고 불러도 되는 엄청 짧은 단편을 모은 책. 므로제크의 글은 짧지만, 해학과 풍자가 압축되어 담겨 있어서 읽고 있으면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진짜 유머러스하고 끝내주는 글이다. 나도 이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창 커트 보네거트에 빠졌을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심너울, 안전가옥, 2020년 1월
얼마 전 서울국제도서전에 갔다가 안전가옥의 부스에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안전가옥이 처음 등장할 무렵부터 성장하는 모습을 천천히 보긴 했는데 그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라지만 정작 나는 책을 별로 안 읽는다). '대체 안전가옥이 왜 인기가 있는 것일까?' 알아보려면 일단 책을 읽어 봐야겠지. 그래서 안전가옥의 가장 인기 있는 쇼츠 시리즈 중에 1편을 골라서 읽기로 했다. 최근 등장한 소설가답게 SNS에 익숙한 요즘 독자들이 좋아할 법한 소재를 잘 고르는 것 같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에 판타지를 잘 버무려서 마치 단편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글재주가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제 4분의 1 정도 분량이 남았는데, 다 읽으면 괜히 아쉬울 것 같다.
『홈 스위트 홈 - 2023년 제4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최진영 외, 문학사상, 2023년 2월
도서관에서 요새 핫한 김기태의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검색했다가 대출 중이라길래(당연한가),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뭐라도 그냥 읽고 싶어서 김기태의 글이 실려 있는 2023년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대출했다(2024년도 작품집도 당연히 대출 중이었다). 그런데 대상작인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대상이니까 당연한가). 암에 걸린 화자가 옛 기억이거나 미래의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병원에서 남은 생을 사느니 자기가 꿈꾸는 집에서 죽고 싶다면서 폐가를 구입해 복원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큰 사건은 없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살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화자 자신의 꿈을 아름답게 담았다. 읽는데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필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뒤에 실린 수상 소감도 너무 멋있었다. 자선 대표작으로 실린 「유진」도 좋았다. 사실 얼마 전에 『구의 증명』이 화제였던 때가 있어서 안 그래도 읽어야지, 생각만 했는데, 이참에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뒤에 우수작으로 실린 김기태의 「세상 모든 바다」도 읽었다. 아이돌과 팬이 나오는 단편소설인데 요즘 사람들이 읽으면 좋아할 법한 소재를 소설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은 「롤링 선더 러브」를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 시류를 잘 캐치하는 작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