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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gmin Kim Feb 14. 2016

모순에 대해 이야기하다.

영화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2015>


내부자들 : 디 오리지널 Inside Men: The Original, 2015 / 감독 : 우민호 / 출연 :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외


오래전, 중국의 한 상인이 모든 것을 다 뚫어내는 창을 팔았다. 사람들은 그 창에 대해 감탄하며 창을 사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 상인이 창 다음으로 꺼내놓은 것은 방패였다. 그리고는 방패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 방패는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패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감탄했다. 그러다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상인에게 질문했다. "저 창은 모든 것을 뚫는 창이라고 했고, 이 방패는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라고 했는데 그 둘의 대결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상인은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제야 상인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아는 '모순'이라는 말의 기원이라고 알려진 예화다.


'모순'의 사전적 정의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내는 방패가 공존한다는 말처럼 슬프게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런 말이 안 되는 것들이 가득하다. 극단적으로 이를테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을 뽑았는데 우리는 왜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내부자들> 은 그런 우리 사회의 몇 가지 모순-이라고도 하고, '부조리'라고도 한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가 바로 '이강희'이다. 그는 잘 나가는 신문사의 논설주간이다. 그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를 고집하며 볼펜이 아니라 바짝 깎은 연필로 글을 쓴다. 그런 그의 고집을 보여주듯, 글을 써 내려가다가도 단어 하나에 고민하고 어떤 것이 더 바른 표현이고, 적당한 표현인지 고민하며 글을 쓰기를 멈춘다.그는 '말'과 '단어'가 가진 힘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고,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뉘앙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토대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과 '단어'가 가진 힘을 명확하게 아는 사람이고,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의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뉘앙스를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모순은 무엇인가? 바로 그가 원고지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방송에서 아나운서들이 잘못된 일본식 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듯, 논설주간이며 말의 힘을 알고 단어의 힘을 아는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는 일본어를 즐겨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비속어도 서슴없이 사용한다. 이러한 설정은 '이강희'라는 인물의 이중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모순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안상구'를 대하는 태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동생'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가 하는 행동들은 '안상구'를 공격하고, 그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모순적인 모습들은 '이강희'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유력한 대선후보 '장필우'의 앞뒤가 다른 행동도 모순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청렴결백함을 주장한다. 국민들은 그것을 믿기에 아마도 그가 유력한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체는 추악함의 결정체일 뿐이다.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청렴결백함을 주장한다. (...) 그러나 그의 실체는 추악함의 결정체일 뿐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모순으로 등장하는 것은 영화 속 '대중'으로 불리는 '우리'이다. 에필로그에서 감독은 '이강희'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던진다. "왜 악인들에 대한 우리의 증오는 쉽게 사그라드는가?" 그것이 가장 큰 모순이다. 부패와 부정은 영화 밖의 실제 세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부정과 부패에도 우리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드는가? 그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우리가 그들의 '죄'를 방관하기 때문이다. '이강희'의 말처럼 잠깐 씹을 거리, 잠깐 화낼 거리로 그치는가? 그것은 우리의 방관 때문이다. '대중'의 우매함을 그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악에 대해 방관하지 않고 응징하는 것. 그래서 그들이 다시 일어설 사회를 허락하지 않는 것.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영화 속 '대중'이자 현실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감독은 이 세상에 가득 찬 모순을 나열하고 보여주며 세상의 민낯을 공개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런 내부자들이 되지  못할지언정 이러한 세상을 그대로 두지 않고 세상의 모순을 없애는 주체가 되길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또한 그 더러운 악을 뿌리치고 세상의 '정의'를 위하여 분개하고 일어선 우리 사회의 '내부자들'에 대한 올바르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사회와 그들이 세상에서 소외받거나 다시 복수의 대상이 되어 핍박받는 사회가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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