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긴 감사의 글
나는 잠이 많은 편이다. 아침잠도 많고 낮잠도 좋아하고, 밤에도 - 당연히 - 잘 잔다. 앉은 채로, 책상에 엎드려서, 어딘가에 기대서도 잘 수 있다. 서너 잔의 커피나 눈부신 햇살에도 개의치 않고 자는 건 내 장점 아닌 장점이었다. 덕분에 기나긴 밤을 깬 눈으로 흘려보낸 요 몇 달은 내 삶에서 꽤나 생경한 경험이었다. 큼큼한 커피 내음, 어스름한 바깥 불빛, 조용히 돌아가는 컴퓨터 팬 소리. 내일의 정상적인 일상을 담보로 잡고서야 누리는 밤은 고요하다. 적막한 밤,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지우며 보냈다.
낮에 바삐 살며 쟁여둔 사고들은 밤이면 저마다의 속내를 드러낸다. 야심한 시간, 무수히 스쳐가던 그것들을 무어라 이름 지어야 할까. 고민이라 칭하기엔 명확한 한탄이나 불행은 없었다. 잡념이라 치부하기에는 자못 무겁고 심각하기도 했다. 균질한 특징이 있다기보다는 그저 너무 많았던, 울창한 원시림 속 넝쿨마냥 위아래 방향성도 없이 얽히고설킨 상념(想念)들. 머리에도 주전자 뚜껑처럼 김샐 구멍이 있으면 좋으련만. 해소도 배출도 요원한 상념들에 허우적대고 있으면, 어느새 침대에 들 시간을 놓치는 일이 허다했다.
그렇다고 상념들을 제대로 갈무리했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또 아니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은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내 안의 엔트로피는 줄이고 읽어주는 사람들의 엔탈피를 높이기 위해서!” 제법 공대생다운 답이었다. 그렇게나 두드리던 한밤의 키보드는 정녕 저 말에 충실했을까. 가득한 엔트로피를 몇 차례의 키보드 두드림으로 다잡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애꿎게 쓰인 글자에 다시 백스페이스 키를 눌러대는 소리만 방을 채우곤 했다.
밤에 두드린 글은 대개 Bottom-Up으로 생각이 쌓인다. 수면 위로 떠오른 잡다한 무언가를 하얀 창에 마구잡이로 타이핑하는 작업. 그러면서 내심 상념이 정리되기를, 나아가 마주한 문제가 기적처럼 해결되기를 고대한다. 궁구하는 답이 주어질 확률이 낮다는 데서, 밤의 글쓰기는 일종의 제의(祭儀)와 흡사해진다. 신에게 물은 질문의 해답을 바라며 간절히 거북 등껍질을 달구던 고대인처럼, 문자화된 자신의 사고를 낯설다는 듯 지긋이 모니터를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안에 있었으되, 바깥으로 던져진 글자들은 낯설고 옹졸하기 그지없다. 아직 나 말고는 어느 누가 보지도 않았는데도, 내 글을 읽는 것은 아리다. 여자친구인 S는 내게 큰 고민이 있을 때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라고 권한 적이 있다. 주전자의 작은 구멍처럼, 안에서만 버거운 것들을 조금은 밖으로 솎아낼 수 있지 않을까. 속내를 적은 글귀 하나가 이리도 부끄러운데 남들에게 터놓고 말하는 것은 어떠할까. 나는 여전히 이리도 버겁다.
그럴 때면 나오는 핑계는 늘 익숙함에서 출발한다. 속마음을 주변 사람에게 자주 말하지 않던 나의 과거는 관성이 되어 핑계를 자아낸다. 내용물이 들락날락한 적이 없어 너무도 작아진 호리병의 주둥이 같달까. 관성으로 엮인 작은 주둥이는 늘 비겁한 고민을 낳는다. '익숙하지도 않은데 내용물을 남에게 따라주다가는 상대방의 잔이 넘칠지도 몰라.' '친구의 옷을 적셔서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몰라.'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고 실망만 할지도 몰라.'
이런 음침한 사람이라서 당신은 언젠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질려하지는 않을까. 예전엔 그저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겉멋을 부리다 보니 나를 숨긴 거였는데, 이젠 그저 감추는 것이 익숙해진 건 아닐까. 생채기가 나면 드러내지 않고 홀로 끙끙 앓은 후에야, 과거가 된 딱쟁이만 머쓱해하며 남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이건 그간의 긴 침묵의 이유이자 변명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미뤄두고 참아둔 어떤 것들은, 두려움에 섞여 공유되지 못한 채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던 이유다. 긴 긴 밤을 지새운 이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고전 영화 속 상투적인 대사처럼 일상은 거대한 파도처럼 돌아온다. 일상이 지닌 거대한 복원력 앞에선 어느새 지새우던 밤의 시간마저 과거가 된다. 전전긍긍하던 상념이 소강함과 동시에 나 홀로 지내던 은밀한 제의도 끝난다. 밤의 글쓰기 덕에 엔트로피가 떨어졌을까. 오히려 그간 묵혀둔 감정들은 일상과 함께 그제야 한껏 기지개를 켜지는 않나. 늦은 응답만큼이나 각자의 몫을 챙기겠다는 듯 터져 나오는 감정들. 짜릿함, 외로움, 즐거움, 미안함, 회한, 두근거림, 불안, 질투, 욕망, 애틋함 등이 두서없이 몰아친다. 주변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분별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여유도 함께 돌아온다.
일상에 복귀하고 발견하는 건, 그간 내게 마음을 써준 사람들의 여러 흔적들이다. 문자 한 통, 전화 한 번, 짧은 안부 인사, 음악이나 영화 추천, 웃긴 짤방, 이모티콘 등등. 흔들리는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무심한 듯 챙겨준 당신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린다. 꽤나 늦었지만, 내가 받은 이 감동과 위로를 잊지 않고 싶다. 그리고 언젠간 내 마음 더듬이도 당신들만큼 충분히 멋지고 길어지기를. 어림짐작만으로 너무 티 나지 않게 은혜를 갚을 수 있기를. 긴 긴 밤을 버티고 나서야 긴 긴 감사의 글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