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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un 19. 2016

일탈에 관한 작품

Thomas Mann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1. 현실에 지치고 힘들 때마다 우리는 일탈을 꿈꾼다. 나를 옥죄어 오는 현실이 갑갑하고, 해야 하는 온갖 의무들은 나를 압박한다. 그러다 덜컥,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불안함이 엄습한다. 어딘가 소속되어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쩌면 그러한 감각에 위무받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적 규약들- 법, 도덕, 상식-에 스스로를 옭아맨다. 이렇게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예술가들은 일견 불안함을 야기한다. 예속 없이 자유롭게 행동하는 예술가들은 흡사 바람과 같아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경과 불안함. 현실의 족쇄를 무시한 채 돌진하는 예술가의 전형적인 모습은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유명하다. 자신을 매료시키는 것을 위해서라면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그의 모습은 충만한 예술가의 영혼 그 자체이다.

 

Paul Gauguin - "Where Do We Come From, What We are, Where Are We Going", 1987
"아름다움이 마치 감촉할 수 있는 물건처럼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산들바람이며 신록의 나무들, 오색 영롱한 것들과도 내밀하게 마음을 통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신이 된 기분이랄까요" - 달과 6펜스


#2. '토마스 만'의 소설 <베네치아의 죽음> 또한 이러한 일탈적 면모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중 주인공 '아센바흐'는 사회적 권위를 가진 작가이며, 매우 이성적인 예술가로 소개된다. 그에게 있어 예술이란 물려받은 재능을 부지런하고 꾸준히 갈고닦는 것이다. 단단하고 정제된 글을 만들어 내던 이 노년의 작가는 어느 날 이국적인 모자를 쓴 행인을 보고는 여행에 대한 충동을 느낀다. 베네치아로 떠난 여행길에서 그는 '타치오'라는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하고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도시에서 노작가는 소년의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문장으로써 구현하고자 애쓰지만, 결국 병사하고 만다.


"여름을 그럭저럭 견뎌내고 생산적으로 만들려면 즉흥적인 삶, 빈둥거리는 생활, 먼 곳의 공기, 새로운 피의 수혈이 필요했다. (중략) 매력적인 남쪽의 어느 세계적인 휴가지에서 서너 주동안 낮잠을 즐기면서 말이다."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영화에서 타치오 역을 맡은 배우 'Björn Johan Andrésen' ; 후에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의 주인공 '오스칼'의 모티브가 된다.


#3. 도덕과 지성으로 무장한 채 평생을 이성의 세계만을 조명하던 늙은 작가는 타치오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된 순간, 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광기 어린 열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마치 스트릭랜드가 끓어오르는 창작욕을 이기지 못해 증권소 업무와 가족을 버린 것처럼, 아센바흐 역시 평생 쌓아온 사회적 권위와 작품에 대한 신념을 꺾어 버리고야 만다. 


“단지 아름다움만이 신적인 것이고 동시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란다. 아름다움이란 감각적인 인간이 걸어가는 길이며, 예술가가 정신을 향하여 걸어가는 길이란다. 그렇지만, 얘야, 이제 너는, 감각적인 것을 통과해 정신적인 것에 이르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 언젠가는 지혜와 진정한 품위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오히려 위험스러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길, 즉 필연적으로 인간을 잘못에 이르도록 하는 진실로 잘못된 길, 죄악의 길이라고 생각하느냐? (중략) 왜냐하면 열정이 우리를 고양시켜주며, 우리의 동경은 반드시 사랑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 그것이 우리의 즐거움인 동시에 치욕인 셈이지.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4. 아센바흐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베네치아는 '즉홍적이고, 빈둥거릴 수 있는 머나먼 곳'을 대표한다. 자신이 안주하던 세계가 아닌 '완전히 격리된 다른 세계'이다. 외려 작가는 베네치아를 환상적인 장소로 표현하지 않는다. 덥고 전염병이 나도는 곳. 짐들이 뒤섞이기 일쑤인 지저분한 여행지. 자격 미달의 뱃사공과 아첨하는 호텔 주인, 늙음을 감추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베네치아.

 이성적인 판단에 비추어 본다면 떠나는 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아센바흐는 베네치아를 떠나지 못한다. 타치오에 대한 아센바흐의 열정은 감각적이면서 위태롭다. 아름다음에 매료되어 자신의 죽음 - 지극히 현실적인-마저 잊어버리는 늙은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가갈 수 없는-하지만 매력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느끼게 된다. 이성과 감정-광기를 동반한-이라는 극단적인 두 세계가 충돌을 일으킬 때, 경계선에 매료된 예술가라는 존재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니체가 말했던 '아폴론적 세계'와 '디오니소스적 세계'사이에서 필연적으로 태어난다는 '인간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인간의 비극을 (아폴론적) 이데아를 통한 망각과 (디오니소스적) 도취를 통해 설명한다.


#5. 사족을 붙이자면, 이 작품은 성공적인 영화화로도 유명하다.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 배우 '비요른 안데르센'과 문체만큼이나 탐미적인 ost, 말러의 '아다지에토'가 그러하다. 그중 백미인 영화의 카메라 워크는 아센바흐의 시선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를 통해 나타나는 아센바흐의 시선에서는 예술적 열정뿐 아니라 농밀한 욕망이 강하게 표현된다. 늙은 아센바흐가 화면에 나타날 때는 일방적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다가도, 젊고 아름다운 타치오를 화면에 담을 때는 자신의 늙음마저 잊게 되는 주인공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러한 극적인 대조는 회색 빛의 칙칙하고 공허한 베네치아 -절대 낙원이 아닌-의 모습과 빛나고 생명력 넘치는 바다의 모습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영화의 OST : Gustav Mahler의 5번 교향곡 중 4악장 'Adagi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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