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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Jun 16. 2016

우리,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아이러니에 대한 잡생각



속해있는 독서모임인 트레바리 34에서는 최근에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을 읽었다. 꽤 여러 분들이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책 제목과 핑크핑크한 표지 때문에 지하철에서 꺼내기 부담스러웠다 + 페미니스트로 오해받을까 두려웠다 라는 내용을 독후감에 적어주셨다. 또 다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살인사건과 그 이후의 강남역 10번 출구에서의 추모 행사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들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때도 비슷한 의구심이 들었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혐오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반대 의사를 뚜렷하게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와는 선을 긋고 싶어하는 아이러니라니.


감히 추측해보자면, 첫번째 이유는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 때문이지 싶다. 그 이름을 달면은 거창한 활동에 나서야 할 것만 같고, 동시에 주변의 남성들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할 것 같다. 은근하고 온건하게 진행되어 온 여성혐오와 차별이기에 더욱 더 들고 일어나기 어려울테다. 또한 그 무게감이 주는 반작용 때문일것도 같다.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의 적들은 그들을 꼴페미, 페미나치로 몰아세우고 공격하기 일쑤였으니까. 최근의 여러 남초 커뮤니티와 포털 및 페이스북 댓글에서는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메갈이네 워마드네 어쩌구저쩌구 하며 쉽고 편하게 낙인찍고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보이더라.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전쟁터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드는 느낌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을, 또 내가 페미니스트요 선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캐나다 신임 총리 쥐스탱 트뤼도의 말처럼, 혐오에 맞서고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은 하늘이 하늘색이고 풀이 초록색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하니까. 부담과 무게감은 잠시 뒤로 해도 좋을 것 같다. 페미니즘이니 페미니스트니 하는 단어들이 대단히 무겁고 거창한 완장도 아니니까. 또한 혹 진행되고 있는 여러 운동의 방향성이 마음에 안들고 아쉽다고 해서 ‘나는 성차별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스트는 아니야’라는 식으로 고고하게 팔짱끼고 거리를 두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분히 외부에서 가해진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을 당당히 거부하고, 지녔던 불만과 아쉬움을 뜨거운 원동력으로 삼아 뛰어들고 함께 바꾸어나가는 것이 훨씬 더 멋있으니까. 


그리고 이러한 선언을 통해, 알게 모르게 가해지던 일상 속의 성차별을 미리 예방하고 더 적극적으로 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언한 당사자의 주변인들에게도 한번 더 스스로 숙고하고 조심하는 계기가 될테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작년 2월부터 시작된 #나는페미니스트다 선언에 이제서야 동참해본다. 비록 아직 공부도 부족하고 실수도 많을테지만, 배우고 익혀나갈테다. 지금은 2016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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