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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Oct 03. 2021

황석영 <철도원 삼대>

[내 마음대로 책읽기] 노동자들의 쓰디쓴 삶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해방 전부터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몇년까지의 이야기를 한다.  10 중에서 7권째부터는 지리산에 숨어든 빨치산의 이야기다. 지리산 구석 구석에 은신하며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들이  그리 강력한 사상을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일제 시대에 같은 조선인들로부터 당한 억압과 더불어 해방 이후에도 타이틀만 바뀐 같은 사람들로부터 당한  심한 억압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황석영의 장편 소설 <철도원 삼대>는 같은 시대적 배경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일제 시대에 영등포에서 철도 노동자로 살았던 이백만, 철도원 양성 학교에서 정식 교육을 받고 평양을 지나 중국까지 화물열차를 운행했던 아들 이일철, 해방 이후 좌익 노동 운동을 하다 월북한 아버지를 따라 평양에 가서 철도 기관사가 된 이일철의 아들 이지산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다. 하지만, 철도원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은 아니다. 작가는 일제의 억압 아래 살던 노동자들의 삶을 보여주며,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해방이 왔지만, 세상은 더 노동자들의 연합을 탄압하고 심지어는 살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이지산의 아들인 이진오는 현실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빨갱이 집안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일 수도 있다. 이진오는 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과 동료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굴뚝 생활을 했는데, 노사 합의가 되어서 굴뚝을 내려 왔지만, 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삶 그대로였다.


일제 시대 앞잡이 노릇을 하며, 이일철의 동생 이이철을 비롯해 많은 노동자들을 고문하며 죽음에 이르게 한 이일철의 보통학교 친구 최달영은, 해방 이후에 특진을 거듭하며 경찰서장에 이르는 대목에서는, 내가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세월이지만, 당시의 소시민들이 참으로 억울해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방은 되었지만, 일반 시민들의 삶은 더 처절해졌으니 말이다. 해방이 되고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제 청산이 되지 않은 세상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안타깝다.


황석영 작가의 다른 소설 <바리데기>에서와 비슷하게, <철도원 삼대>에서도 죽은 자와 대화 하는 장면이 참으로 많이 나온다. 굴뚝에서 농성 중이던 이진오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여성 노동자, 친구 등의 환상과 대화를 하며, 그들의 과거의 삶을 엿보는 장면을 자주 보여준다. 더군다나, 이백만의 어머니 주안댁은 자신의 며느리 신금이에게 수시로 나타나서 손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디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심지어는 떡도 만들어 놓는 일도 한다. 감옥에 갇혀 있던 이이철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준 이도 죽은 주안댁이었다. 환상 속에서 그랬다고 하기에는, 죽은 사람이 현세대에 너무 많이 개입하는게 아닌가 싶다. 소설 속이라서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제의 압제 아래에서 모진 고문을 겪으면서도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위험한 자리에는 가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현실적인, 그리고 조금은 타협적인 사람들, 그리고 일제를 등에 업고 완장 차며 동족의 등에 칼을 꼽으며 사는 사람들 중에 나는 어떤 사람들과 비슷할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 문득, 그런 세상에 산다는 상상 만으로 두렵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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