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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Nov 05. 2021

박완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내 마음대로 책읽기] 씁쓸한 현실의 이야기

1989년에 초반 발행된 책이니, 30년도 넘은 책이다. 요즘 다시 출판된 책들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소설 하나만을 담고 있지만, 옛날의 책은  소설과 더불어 중편 <서울 사람들> 단편 <저문 날의 삽화 2> 함께 묶었다.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중편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기  되기 때문에 장편 소설로도 불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이혼녀 문경과 아내와 사별을 하고 딸 하나를 키우는 대학 동창 혁주의 이야기이다. 학교 가정 교사인 문경은 혁주와의 재혼을 바라고 있었지만, 혁주의 어머니에게 문경은 며느리로서 가당치 않은 여자였다. 혁주 또한 우유부단한 구석이 있는데다 어머니 말에 동조를 하면서, 문경과의 결혼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곧 문경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된다. 혁주는 경제력 있는 여자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문경의 임신을 거짓으로 몰고,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혁주와 그의 어머니는 문경의 임신을 협박으로 받아들인다.


문경은 아들을 낳게 되고, 혁주도 재혼을 해서 딸 하나를 더 낳게 된다. 하지만, 혁주의 어머니는 집안의 대가 끊겼다는 것에 한탄을 하다가, 문경이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떻게 하든지 손자를 빼앗아 오려고 한다. 야비하고 비열하게 말이다. 이것 또한 TV 에서 보아오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읽어온 박완서 작가의 소설과는 결이 다른 소설이다. 수십권에 달하는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읽은 작가의 소설은 주로 작가의 경험에 기반을 둔 소설이거나, 작가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아들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매몰차게 대해 놓고선, 손자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다. 혁주의 어머니를 이해하기가 힘들다.


두번째 중편 소설인 <서울 사람들>은 아마도 70-80년대의 졸부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5남매를 키운 어머니는 막내 딸만은 대단한 집에 시집을 가기를 원했다. 큰 딸 혜진이 연애 결혼을 해서 사위를 탐탁치 않아 한 혜진의 부모는, 막내만큼은 중매쟁이를 통해 좋은 집안에 시집을 보내려고 했는다. 그리고 결국 의사 사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의사에게 시집 보내기 위해서는 집안 뿌리를 흔들만큼 엄청난 예단을 해야 하고, 열쇠 3개를 준비해야 될 수도 있다는 것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돈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씁쓸하다.


세번째 단편인 <저문 날의 삽화 2>도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듯 싶다. 운동권 남편을 둔 가연은 남편으로부터 폭압과 폭력을 받는다. 더군다나 가연의 남편은 처가집이 자신의 운동을 지원해야 된다는 소리도 거침없이 해댄다. 정치 권력자의 기득권을 내놓으라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의 아내를 종처럼, 어쩌면 종보다도 못한 존재로 대하는 가연의 남편은 상당히 이율배반적이다.


소설 자체는 재미 있는데, 마음은 무겁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엿보는 재미가 있을텐데, 이런 내용의 소설은, 설사 그것이 상당히 사실적이라고 하더라도, 씁쓸한 맛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 현실적이라서 그런가. 희망이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 이야기라서 그런가. 나도 이야기의 끝은 항상 해피엔딩 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나보다.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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