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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은채아빠 Nov 22. 2021

스미노 요루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내 마음대로 책읽기] 너무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는

10 청소년도 아닌, 40 중년 초기(?) 남자가 이런 소설을 읽으면 남들이   수도 있겠지만, 상관 없다. 사람의 감정이란 나이를 먹을 수록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해 지는 것일테니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제목에 혹해서 도서관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무작정 뽑아 들었고, 청소년 로맨스 책인  같은데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물론 검색을 통해서 이미 베스트 셀러인데다가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다기에, 조금은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다.


18살, 고등학교 2학년의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자 주인공 사쿠라와 남자 주인공 하루키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책 마지막에 등장한다)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췌장의 질병을 가지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쿠라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는 밝은 여학생이다. 독서를 좋아하며 남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로서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하루키는 소심한 외톨이형 은둔자라고도 볼 수 있다. 그 둘은 사쿠라가 일기처럼 기록한 "공병일기"가 하루키에게 우연히 읽히게 되고, 하루키는 죽기 전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고 싶어한 사쿠라의 병을 유일하게 알게 된 친구가 된다. 4개월 동안 기차를 타기도 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사쿠라가 입원한 병원에 문병을 가며 긴 대화를 나누고,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융화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사쿠라도 하루키도 서로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된다.


사쿠라는 췌장의 병으로 죽지는 않지만, 어쨌든 죽게 되고, 하루키는 "공병일기"를 통해서 사쿠라의 진심을 알게 되고, 사쿠라의 어머니 앞에서 처음으로 펑펑 울게 된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소심하고 타인과의 관계에 서툴기만 한 하루키가 말이다. 하루키는 사쿠라로 인해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가며 소설은 끝나게 된다.


소설을 읽고 나서,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이 났다. 아주 많이 확장된 일본판 <소나기>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아닐까 말이다. 사쿠라와 하루키는 사쿠라의 죽음 이후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너의 발뒤꿈치를 닮고 싶다"는 말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괴상하게 들리면서도, 그 말이 서로를 향한 진심임을, 서로를 향한 사랑임을 드러낸다. 마치 <소나기>에서 자신이 입은 옷을 함께 묻어 달라고 말한 소녀의 말을 전해 들은 소년이 소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외향적인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내성적인 사람은 대중 속에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전자와 같은 사람만 세상에 있다면, 혹은 후자와 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결국 세상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며,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위 "틀리다"라는 말보다 "다르다"라는 말이  옳은 말이듯이 말이다. 아이들에게도  책을 읽으라고 영어로 번역된 책을 빌렸다. 아들이든 딸이든  책을 읽고 나와 대화의 자리에 나오면  좋겠다.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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