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定義)의 재정의(再定義) 4

16. 현재가 곧 미래는 아니다.

by 조종상
변방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인이 살았다. 어느 날, 그의 말(馬)이 까닭도 없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쳐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로하자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무슨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몇 달이 지난 후, 말이 오랑캐의 준마를 데리고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축하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무슨 화가 될는지 어찌 알겠소?”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말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사람들이 모두 이를 위로했다. 노인이 말했다. “이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어찌 알겠소?”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그 지역을 침략해오자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갔다. 이 싸움으로 변방 장정들 열에 아홉이 죽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온전치 못해 싸움에 나가지 않아 무사할 수 있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회남자』라는 중국 고서에 나온 이야기다. 새옹지마는 ‘변방 늙은이의 말(馬)’이라는 뜻으로,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되는 등 쉽게 예단할 수 없는 인생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고사성어다. 물론 우리 인생에 이런 일들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어떤 사안의 인과(因果)는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인생을 우리의 이성으로 쉽게 이해하고 재단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따라서 점을 잘 친다는 노인의 능력(?)은 무시하고, 이 고사에 대한 색다른 상상을 이어가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오로지 이 고사성어의 의미로만 이해한다면, 나는 이 고사성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지혜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고사(성어)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는 나쁜 일이 있을 때 희망을 생각함으로써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일에 대한 사람의 감정은 대체로 즉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이성이 개입할 일이 뭐 그리 많겠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상 신체의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반응이 곧바로 일어나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모든 일에는 이성이라는 체에 한 번 거르고 나서 대응해도 될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대처한다면 비록 좋지 않은 일일지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생기거니와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함으로써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좋은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 아님은 당연하다.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이 어떤 이유로든, 화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조심스럽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그 일에 대한 기쁨은 기쁨대로 누리고, 그 이후도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을 때, 계속해서 좋은 일이 이어질 가능성도 더 높아질 테고.


언제나 이성으로 감성을 제어하며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성이 감성에 지배당하지 않음이 바람직하다고 볼 때, 이런 삶의 자세는 분명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런 삶의 자세는 결과적으로 겸손을 불러온다. 요즘에야 겸손이 미덕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겸손은 언제나 미덕이다. 가끔 문화적 특성을 탓하며 겸손을 폄하하는 경우가 있는데 과연 그것이 적절한 평가일까? 겸손은 작위적으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또한 겸손의 표현일 수는 있다. 다만 겸손에 단계가 있다면 이는 낮은 단계의 겸손이라 할 수 있다. 더 높은 단계의 겸손, 또는 진정한 겸손은 ‘새옹지마’의 노인처럼 삶의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오묘한 인생의 섭리에 겸허히 고개 숙이는 일이다.




삶은 배움의 연속인 듯하다. 자신이 학습자의 자세를 잘 지켜 나가기만 한다면 배울 것투성이인 게 삶이다. 누군가의 또는 어떤 일의 좋은 면을 통해 배울 수도 있고 좋지 않은 면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달래 회자되는 말이 아니다. 물론 무엇이 배울 것이고 무엇이 버릴 것인지도 잘 분간해야 한다. 그래서 철학이 중요하다. 철학을 바르게 정립하고 그 철학을 바탕으로 바른 학습을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한 삶을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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